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2화 - 이미 지나간 배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2화 - 이미 지나간 배 -

개성공단 2020. 4. 29. 04:52

대성교 진지 안에서 리처드가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유쾌하고, 어딘가 즐거운 듯 했다

 

검은 칼을 허리에 매달고, 천막으로 활기차게 행동하는 그 모습은

주위 병사들의 눈을 빼앗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이 유쾌하다는 것은 병사에게 나쁜 일은 아니였다

누구나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을 거라고 서로 소문을 주고받으며

어쩌면 오늘 밤에는 술이 올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리처드와 반대로

그 뒤에 붙어있는 부관 네이마르가 초조함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얼마 안되는 인간 뿐이였다

 

"대대장님 몰래 의무병을 부를테니, 안정을 취하고 계십시오"

 

네이마르는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군과의 회담 중에, 조금이지만 지휘관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 것이 주위에 알려졌다간, 병사의 사기는 내려갈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네이마르는 속눈썹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리처드는 그녀의 그 말에, 볼을 무너뜨리며 가볍게 말했다

 

"그냥 찰과상이야, 괜찮아"

 

그것은 사실이였다

어깻죽지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긴 했지만, 큰 상처는 아니였다

그저 전장에 있어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찰과상

리처드에게 있어선 아무것도 아니였기에

의무병을 부르는 것은 그저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리처드의 그 말에 부관 네이마르는 말을 거두지 않고

입술에서 앞니를 내밀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안 됩니다. 대성교 장수가 구교도의 정체 모를 장수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기에 영향을 미칠겁니다"

 

네이마르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은 영락없는 분노 그 자체였다

그녀의 어조는 평소보다 더 가시 돋친 듯 열띤 어조를 띠고 있었다

 

리처드는 그래, 하고 한숨을 섞인 말을 돌려주며

딱딱하다며 고개를 이리저리 저였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인지, 어딘가 끙끙 대는 리처드였지만

하지만 그는 입에서 유쾌한 소리가 나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땅에서 기어다니기만 하던 흙투성이가

지금은 분명한 적이 되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니...

그것도 영웅이란 거창한 직함을 덧붙여서 말야

 

유쾌하군

 

인생이란 상투적인 연극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뜻밖의 일이 이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새가 물 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물고기가 하늘을 거처로 삼는 것 같은 경이한 일이...

 

솔직히 말하면, 문장교의 콧등을 꺾어서 군사를 때려눕히는 일은

리처드에게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같았지만

 

이미 그런 생각은 집어 치운지 오래였다

훌륭하군, 이 정도로 가슴이 뛰다니, 정말 오래간만이야

그야말로 모험자로서 각지를 행진하고 있던

그 때로 돌아온 것 같았다

 

"대대장님,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수 적으로 우리가 매우 우세하니, 내일 대공세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의무병이 붕대를 다 감았을 무렵

네이마르는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부탁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거절당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듯

자신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처드는 병사가 갖고 온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목을 울리듯이 하고 말했다

 

"안돼, 지금은 쓸데없는 전투도 삼가라고, 병사들에게 전해라"

 

네이마르는 리처드의 그 말에, 눈썹을 경련하듯이 움직였다

 

설마 상처를 입고 구교를 상대로 겁을 먹은건가

 

그녀는 그런 말을 입술에서 내뱉으려고 했지만

바로 어금니를 악물고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것은 상관에 대해 예의를 표했다던가 그런 이유가 아닌

그저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 이였다

 

그저 서민이라면 몰라도, 자신은 귀하고 귀한 존재

그런 약함 따위는 당장이라도 집어 치웠어야 했지만

 

상대는 바로 리처드

 

네이마르는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그에 대해 암묵적인 공포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가 매우 실용주의이며, 겁 없는 성격인 걸 깨닫고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닌 것 만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구교와 싸우지 않는 것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네이마르는 생각했다

 

물론, 실은 단지 교활하기만 한 인간이고

용감함이라고는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일지도 모르겠지만...

 

네이마르의 날카로운 시선이 리처드를 찔렀다

그의 진의를 꿰뚫어보려는 듯 말이다

 

"뭐야, 그 시선은?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나가봐"

 

네이마르는 즐거운 듯 목 놓아 웃는 리처드를 향해

말없이 눈길을 돌려버렸다

진의를 말할 때까지, 여기서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였다

 

리처드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들었다

 

"지금 녀석들은 꽤 기세등등하게 굴고 있어

저것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다간, 피해를 키울 뿐이야

그렇다면 차라리 발밑을 무너뜨리는 방책을 써야겠어"

 

게다가, 하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리처드는 머리 속으로 생각을 돌리며

한 가지의 염려를 떠올리고 있었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전장에는 이렇다 할 인간이 태어나는 일이 있다

대군을 물리치고, 궁지를 삼켜가며, 만개의 화살을 맞아도 꿈적도 않는

...거의 상상에 가까운 말이지만, 가끔은 있었던 것이다

 

리처드는 루기스와 마주한 그때

무언가가 태어나는 듯한 소리를 귓속에서 들었다

오랫동안 그를 지탱하고 있던 그의 뇌가 종을 울리는 듯 했다

 

리처드는 싸운다면 피해가 크다고 했지

결코 싸워서 진다고는 말하지 않았었다

 

그래, 비록 그 꼬맹이가 뭔가가 되어 있다고 해도

내가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여하튼, 그 놈에게 수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전쟁의 이치라는 것을 가르친 적은 없었어

 

그러니 여기서 가르챠주는 거야

그것을 위해 만전을 다해서, 녀석의 목을 베어버리자

 

"필로스에게 회담 날짜를 정해놓도록 하라!"

 

리처드의 눈동자가 노회한 광채를 띠며 반짝였다

 

 

 

 

*

 

 

 

 

역사상 숱한 전투를 제외하고

대성교와 문장교가 서로 어금니를 겨룬 전역은

딱 한 번 있었다

한 때 대종교의 하나였던 문장교가, 그 쇠퇴를 결정지었던

5왕국 전쟁

 

그 전투로 대성교는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문장교는 그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 정도로 추락해버렸다

 

적어도 지난 세계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되었고

문장은 비참한 시체를 드러내고, 대성은 영화를 구가했다

 

하지만 지금 역사의 문장교는 다시 물레를 들어

대성교에게 어금니를 내밀었다

닻은 이미 올라갔고, 배는 거친 파도 속을 저으며 나아갔다

 

자치도시 필로스, 그리고 서니오 평야를 무대로 한

일찍이 탄성조차 내지 못했던 전역이

역사 속에 그 모습을 다시 새기려 하고 있었다

 

 

 

 

제8장 악덕 왕국 편 완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