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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4화 - 섬뜩한 평온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4화 - 섬뜩한 평온 -

개성공단 2020. 4. 29. 10:18

이 지방에는 산줄기가 적은 탓인지 바람이 묘하게 건조했다

목에 천이 달라붙는 듯한 감촉을 럼주를 부어서 억지로 제거했다

 

"필로스의 대답은 없고, 대성교도 움직이지 않는군

순전히 평온 그 자체로구나"

 

나는 의자에 주저 앉은 채, 서니오 평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일절 이물질이 없었고

단지 키가 큰 화초만이 편안한 듯 지내고 잇을 뿐이였다

 

물론 천막 속에서 엿보는 정도로 별로 상황이 보일리 없엇다

허락만 맡는다면, 말을 달려서 척후라도 행할 텐데

지난 세계에서 내가 자주 맡던 임무였다

 

"루기스가 평온하다면, 평온한 거겠지"

 

눈 앞에서 엘디스가 연한 푸른 머리카락을 뺨에 댄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엘디스 나름의 비야냥거림일 것이다

 

문장교와 대성교의 전장은 조용히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니오 평야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진을 친 채

서로 시선을 얽은 채 어느 쪽도 움직이려 하지 않앗다

물론 약간의 몸싸움이나 파수꾼끼리의 접촉은 있겠지만

적어도 대세를 결정지는 싸움은 서로 벌이려고 하지 않았다

 

나와 리처드 할아범의 회담 후, 끝없이 기분 나쁜 평온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문장교...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평온이였다

 

시간이 점점 지체될 수록, 대성교에는 원군이 달려갈 가능성이 높아졌고

우리는 그런 기대를 거의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둔을 오래할수록 식량은 물론 사기는 낮아지려 하고 있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은 열광 속에서 하는 것이였다

 

전쟁의 열로 자신의 뇌수를 녹이고

생명에게 가격표를 붙이는 것을 긍정하는 행위를

사람들은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 열이 식으면, 더 이상 병사의 손발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찌를 수 있다고 생각한 창은 몹시 갸날퍼 보였고

손발은 차가워진 나머지 굳어서 움직이지 않으려 햇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흔히 있는 일이였다

갑자기 물결이 물러가듯이 열이 빼앗겨 버리는 감촉...

 

한 두번 본게 아니였지만, 몇번 맛봐도 좋은 것이 아니였다

 

사람이란 머리 속안에 있는 숨은 열량에 따라

사람의 목도 쉽게 비틀 수 있고

반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도 있었다

 

그러니 정적이니 정체니 하는 것을

전쟁터에서 삼켜 버리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였고

열세라면 특히 더더더욱 안좋았다

 

물론, 이 정체와 정적의 의미 정도는 나로서도 이해하고 있었다

양 진영 모두, 자치도시 필로스의 행선지를 판별하고 있는 거였다

 

서니오 평야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자치도시 필로스의 존재는

전역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결코 눈을 뗄 수 없었다

만약 필로스가 적군과 손을 굳게 잡아버리면

전쟁 도중에 옆구리를 물어뜯길 수도 있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적이 되든 아군이 되든 그 동향을 판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쪽이든 필로스의 동향이 명확해질 때까지

양 진영 모두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나고 가슴이 타는 느낌이 나는 것이였다

상대는 그 리처드 할아범, 이 고요속에서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지도....

 

그렇다면 차라리 그 가슴 속을 들으러 가볼까

 

물론 여기서 전역의 막을 울리자는 것이 아닌

그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돌이라도 던져볼까 하자는 것이였다

 

그런 생각이 생각의 가장자리에 이르고

그리고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이였다

 

"루기스"

 

엘디스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엎드려 있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 귓속을 맴도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머리 속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 였다

 

"그런 짓은 절대 용서 못해요"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끼쳤다

엘디스의 벽안은 나의 흉중을 간파했다는 듯이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용서하지 않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행동도 옮기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손가락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엘디스에게 금지되어야 하는 것인가

 

며확환 회의와 동요를 표정에 떠올리며

말없이 엘디스의 말을 기다렸다

 

"또 단독으로 움직이려고 했지? 가자리아 내전 때처럼"

 

그런 엘디스의 어조에는 약간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그런 말투 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엘디스의 말은 그대로 나의 심정을 알아맞히고 있었다

나는 내가 비뚤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알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잇는 것이였나?

 

엘디스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장에서는 대다수의 부대로 다니는 것보다

소수로 움직이는 것이 위험이 적은 경우도 있다

개다가, 무작정 혼자서 움직이려는 것이 아닌, 

나에게도 다소간은 의지할 곳이 있었다

 

그런 내용의 말을 가벼운 어조로 흘렸다

그렇게 엘디스에게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래? 그럼 그 의지하는 것엔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거야?"

 

아무래도 내 생각은 상당히 빗나간 건가

 

엘디스는 그 말과 동시에 벽안을 상당히 일그러드렸다

노려보는 것을 그대로 눌러서 뭉개버릴까 하는, 사나운 감정이

그 둔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난 세계에서 조차 본 적이 없는 눈동자

흉포한 것만이 아니라,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이쪽을 씹어부수려고 하는 그런 사나운 감정이였다

 

순간, 천막 속의 공기가 완전히 죽어가며

가슴 속에 묘한 감정이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 흔들렸다기 보단, 생물으로서 본능이 외치는 듯 했다

저것은 위험하다고 ...라며 말이다

 

나는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입술을 열었다

말을 잘못하면 목이 떨어져 버릴 것같은 긴장감이

혀를 경련시키고 있었다

 

"물론이지, 하지만 엘디스, 넌 공중정원, 엘프의 여왕이자..."

 

그러니 데리고 다닐 수 없는 처지란게 있잖아

...라고 하려던 내 말을 엘디스가 중간에 가로막았다

 

"그리고 넌 내 기사야, 입장을 얘기하려면 그게 먼저 아닐까, 루기스?"

 

과연 왜 갑자기 엘디스의 천막에 초대되었는지

그 진의가 지금에 이르러서 겨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컨대 엘프의 여왕인 엘디스는 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기 위한 것이였다

 

더구나 그 불만은 상당히 뿌리 깊게 있는 듯 한 건가

그녀의 말투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작은 입술이 타원을 그리며, 목소리를 울렷다

 

"루기스, 이것만은 말해두지,

나는 말이야 귀를 마음대로 만져진 기분이야

그 회담에서 호위를 맡은 자가, 내 기사가 아닌

다른 인간이였다는 것 말이지..."

 

오죽하면 내 병사가 못 미더웠던 걸까

말을 이어가는 엘디스의 목소리는 고드름보다 차가움을 띠었다

 

대체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엘프에게 있어서 귀를 마음대로 만져진 기분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적어도 얕은 분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생각을 머리 끝까지 돌리면서 어떻게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잘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입술을 열었다가 닫는 행위를 여러 번 반복했다

 

엘디스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살짝 뺨을 으스러뜨렸다

눈에는 역시 어딘가 영맹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표정만은 느슨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엘디스는 천천히 눈을 가까이 돌리면서 말을 흘렸다

꽃의 꿀 같은 달콤한 냄새가 콧구멍을 후비는 듯 했다

 

"네가 나를 의지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상관은 없다

그땐 나도 여왕이든 개인이든, 어떠한 힘도

휘두르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어

아니면, 나에게 지금이라도 의지하고 싶은거야?

지금 확실히 말해주지 않겠어?"

 

엘디스의 목소리가 내 귀에서 여러번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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