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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7화 - 특이한 그림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7화 - 특이한 그림자 -

개성공단 2020. 5. 1. 18:05

왼쪽 어깨, 할아범에게 도려냈던 상처를

신중하게 손가락으로 갖다대었다

 

닿은 순간에 있었던 것은, 약간의 저림과 육체에서 나는 열

단지, 그것 뿐, 통증은 물론 핏방울 조차 없었다

 

천막 속에 한숨이 울러퍼졌다

 

리처드 퍼밀리스, 나의 스승이 휘두른 혼신의 강격은

분명 어깨의 살을 찢고 뼈도 끊어냈을 것이였다

그 영혼도 부술지 모르는 통렬하기까지 한 충격을

분명 이 몸은 받았을 터였다

 

그런때 지금은 어떠한가

나의 왼쪽 어깨에 난 것은 열상 등이 아니라

살이 묻혀 혈맥이 굳어진 상처 뿐

거무튀튀한 피의 흔적 만이, 그 상처가 새로운 것이란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천막 속 의자에 걸터 앉으며, 입을 열고

가슴속에 품어 넣었을, 씹는 담배를 필사적으로 찾고 잇었다

 

뭐야 이 상황은

 

이런 특이한 형상은 마법과 이형이 넘쳐나던 지난 여행에서도 조차

볼 수 없었다

마력에 의한 신체 치유도 아닌, 정령의 가호와도 별개인

마치 몸 자체가 결합이라도 하기 시작한 것처럼

살과 살을 맞대고 있었다

 

몸이 튼튼하다느니, 상처가 빨리 낫는다는 얘기는 결코 아닌

마치, 그래 용병도시 베르페인에서 본

그 정체불명의 괴물이 재생을 하는 듯한 모습이였다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 폐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기세를 몰아, 씹는 담배를 입술에 물리고

얼굴을 위로 향하게 했다

천막의 지저분한 천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결론이 나지 않는 머리를 여러번 꽁꽁 싸맸는 그 순간

 

"들어갈 께,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내가 시시한 생각을 계속 떠올렸을 무렵

그런 소리가 천막 속을 관통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거만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특히,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단 한 명...

 

순간적으로 어깨의 상처를 옷으로 가리고

나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입술을 흔들었다

 

"설마 내가 거절하겠어?

그랬다간 목 언저리에 칼끝이 들이댈수도 있는데 말야"

 

나는 마른 미소를 뺨에 억지로 짓듯이 말했다

얼굴을 정면으로 돌려놓으면 허공에 어른거리듯

아름다운 은색의 실이 시야에 비쳤다

 

허리에 차고 있는 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검과

대면한 인간 모두에게 겁을 주는 날카로운 은색 눈동자

천막에 입구에 서 있던 것은

나의 예상대로, 카리아 버드닉이였다

 

카리아는 자못 불복하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는 뭔가 잘못된 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카리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던 것 같다

 

"네놈, 나를 맹수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냐"

 

너? 내가 너를 맹수로 칭하고 있느냐고?

어... 어떻게 보면 그런거 같긴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그대로 꺼냈다간

카리아는 분명 나에게 검을 휘두르고 말겠지

 

나는 말없이 조그맣게 고개를 흔들며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고 말했다

 

"일단 오라고 해서 미안해, 술은 이것 밖에 없어

새 술을 원하면, 시켜 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 알맹이가 상당히 줄어든

술병을 카리아에게 던졌다

 

특별히 카리아라고 해서 내 천막에 술을 마시러 온 것도 아니겠지만

누가 찾아와서 술 한잔 내놓지 않는 것은 실례일 것이다

물론, 나 같은 하층 출신 인간들의 상식이지만...

 

카리아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이 눈꺼풀을 깜박이며

그래도 입술을 술병에 붙이고는 목을 축였다

변함없이, 술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카리아말곤 없었다

당연히 이 시대에 이르러서의 일이지만..

 

카리아는 작은 입술을 적신 채, 양해도 없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도시 필로스 건이다

안이 말하는 데, 머지않아 답변이 올거라고 했다"

 

말과 동시에 투명하게 보이는 은빛 눈이 나를 응시했다

 

카리아가 말하는 것은, 문장교가 자치도시 필로스에게 보낸

협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서신일 것이다

 

과연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대문을 열고 머리를 숙일 것인지

아니면 도시를 자신의 관으로 삼아, 불타오르게 할 것인지

그러한 일을 상대에게 선택하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다

 

꽤 심한 내용일지는 알고 있었지만

대인협상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자랑하는 안이

이런식으로 대놓고 할 줄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카리아는 한 마디, 한 마디 곱씹듯이 말했다

 

"일단 뭐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제 어떻게 구르는가, 하는 것은 신밖에 모르겠지"

 

만약 자치도시 필로스가 문장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면

...라고 카리아는 그렇게 덧붙이며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는 나를 어떻게 사용할 작정이냐

네 입으로 들어두고 싶다"

 

사용? 너를? 무슨 소리야?

나는 카리아의 그 말에 일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히 말해, 동경의 대상조차 있던 카리아를

내가 수갑처럼 사용한다고 하는 감각은 아무래도 위화감이 생긴다

맞지 않는 장갑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애초에 카리아는 그 성품으로 보아

누구를 섬기듯 하는 소인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누구를 순순히 섬겼다는 등의 이야기는

솔직히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카리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베르페인의 결투, 그 결과를 준수하려는 것일까

그건 뭐랄까, 자신의 긍지를 끝까지 관철해 나가는

카리아인것 같다고 말하면 맞겠지만

 

몇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서, 

씹는 담배를 조금 물고 있다가.

말을 조심스레 골라서 말했다

 

"뭐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 기사님을 싸게 쓸 생각은 없어"

 

그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말

카리아라는 인간은 다른 사람 밑에서 지시를 하는 인간이 아니다

특히 전쟁터에 있어서는 주군이라는 지위를 주어야

걸맞는 사람인 것이다

 

누구나 그 모습에 매료되어 눈을 빼앗기고

그 등에 의지하여 이끌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전장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것이였다

 

이번 전역에 있어서도, 일부 병사들에게는

카리아를 숭상하는 듯한 말을 들었다

전장녀라든지, 전장의 마녀라든지 말이다

대개 병정이라는 것은 정신의 동요를 막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고 싶어 하기에, 카리아 또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카리아는 틀림없는 영웅의 한 종류

과거부터 그것은 변하지 않았고

카리아는 한 가지의 성분에 편중되어 있지만

그녀가 보유한 재주만은 진짜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담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너는 내 손에서 떨어져서 움직여 주면 돼

너는 내 손에 들어가는 인간이 아니잖아, 카리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와장창'

 

술병이 순식간에 부서지는 소리가

천막 속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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