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55화 - 성녀와 여왕 - 본문
천막 밖에 병사들이 울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랭기가 들어서서 그런지, 나무들은 생기가 빼앗긴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하고 가련하게 느껴졌다
모두 슬픈 시대를 다시 맞아서 그런지,
푸른 나무들의 모습은 당분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루기스가 돌아온 것 같아요"
주위의 병사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을 듣고 나서
성녀 마티아는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음색은 묘하게 신경 쓰는 목소리 같았다
마티아가 마중이라도 갈까요? 라고 말하자
그 말을 묵살하듯 그녀의 바로 앞에 있던 벽안이 빛났다
"아직 얘기가 안 끝났습니다. 성녀 마티아"
가자리아의 여왕 핀 엘디스는 다듬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펴면서 말했다
그 어조만큼은 무척 친숙했지만 형형한 빛을 내는 눈동자가
쉬운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마티아가 가볍게 허리를 띄워도
엘디스는 어느 것이라도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마티아는 동맹국 통치자의 말을 함부로 할 순 없었기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거운 쇠사들이 감겨드는 듯할 정도의 공기가
천막 안을 뒤덮고 있었다
그 무게는 천막 밖에서 호위하는 문장교와 가자리아의 두 병사에게도
전해질 정도로, 누구나가 이 두 사람의 회담에 침을 삼키고 있었다
부하나 사신을 통해서가 아닌
문장교와 공중정원 가자리아의 정점이 둘이서 말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병사가 가친 검과 갑옷보다 훨씬 무거운 말이였다
그 내용은 정치인가, 아니면 이번 전투에 대해선가
"이 자리에서 더 이상의 결론은 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마티아의 딱딱하고 뾰족한 목소리가 천막을 쳤다
그 모습은 할 말은 이미 다했다고 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엘디스는 아직 말을 다하지 못했다고, 입술을 움직였다
"저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엘디스는 그렇게 서론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유를 가진 것이 아닌
마치 씁쓸한 것을 토해내고 잇는 것 같았다
"가자리아의, 아니 나의 기사 루기스를
이제 돌려받고 싶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것만으로 가자리아와 문장교의 오랜 우호관계를 약속하고 있었다고
엘디스의 벽안이 크게 펼쳐져 있는 것을
마티아는 알 수 있었다
그 말투로는 마치 루기스를 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지금의 괸계를 깰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마티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여러번 이를 갈고 있었다
엘프라는 종족은 인간보다 훨씬 마에 가깝고
그 수명도 셀 수 없을 정도를 가지고 잇다
인간의 일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짧다고 말하는 엘프들
그들이 긴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수백년을 가리킨다
솔직히 말하면, 마티아에게 그 약속은 미칠 것 같은 매력을 가졌다
가자리아라는 국가가 문장교에
몇 안되는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상대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엘프라는 종족이 고유한 국가를 가진 존재라는게, 무엇보다 컸다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 용병도시 베르페인
그들 거대도시와 주변마을을 세력 하에 두고도
문장교도는 아직 나라라는 것을 갖지 못했다
단 하나의 불평으로 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런 갸날픈 존재인 것이다
그런 냉정한 타산이, 마티아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이제 곧 한랭기가 올 것이다
우리들이 삶을 구가할 수 있는, 햇빛의 시대는 잠들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군사를 움직이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 루기스를 어느 쪽의 세력에 짜넣을 것인지
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엘디스는 여왕다운 힘을 시선에 포함시키며 말했다
마티아의 손끝이 뛰었다
엘디스의 말은 영락없이 옳다
지금의 루기스는 어디까지나 허공에 뜬 존재다
그는 문장교의 황금, 자신의 영웅이자
공중정원의 가자리아에 속한 기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문장교와 가자리아가 동맹을 이뤄서
군을 겹치고 있는 순간만큼은 상관 없을 것이다
병사끼리의 교류도 깊어지고, 종족의 울타리도 존재가 희미하게
해주는 시기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랭기의 시대가 된다면
대성교가 군을 거두었듯이, 마티아나 엘디스라고해도
세력을 유지하면서도 병사를 물러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자신들이 눈에 파묻혀서
목숨을 빼앗기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마수의 피해도 지금 이상으로 많아지겠지
그럼 그때 루기스를 어디에 둬야 하는가
그것이 이번 회담의 요충지였다
문장교의 본거지인 갈루아마리아인가
아니면 공중정원 가자리아인가
요컨대 그를 언제까지나 허공에 띄운 채로 놔둘 순 없다.
마티아는 엘디스의 말에 몇 번 눈을 깜박이며, 말을 다듬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대답은 뻔했다. 그 외의 해답은 없을 것이다
한 순간 그렇게 해도 될까, 가슴 한 구석이 쑤셨지만
더 이상 어쩔 수는 없겠지
문장교는 지식과 이성을 숭배하는 것
그럼 이미 답은 나있던 것이다
"핀 엘디스, 당신 말을 반박할 수는 없겠군요
불안의 씨앗을 빨리 제거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대답을 듣고자 한다면, 내 대답은 다름 없습니다"
마티아는 눈동자에 신앙의 광기조차 비추며 말했다
"문장교의 성녀로서 발언하겠습니다
루기스는 황금이며, 문장교의 영웅임에 틀림없는 존재입니다
그 밖의 결론은 없습니다"
신앙과 이성, 그리고 지성과 정서
마티아는 그 모든 것을 담은 목소리로 천막 안을 울렸다
그 밖의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듯이 말이다
엘디스는 그 소리를 듣고는, 뭔가 유쾌한 듯 뺨을 쿡쿡 찔렀다
벽안은 아무래도 웃는 것 같지 않지만...
"그럼 저도 공중정원 가자리아의 여왕
핀으로서 발언하겠습니다
루기스는 가자리아의, 그리고 저의 기사입니다
그 입장이 무너지는 일은 영원히 있을 수 없습니다"
천막 속에 틀어박혀 있던 중압 같은 공기가 열로 변모했다
양쪽의 의지가 모두 타오르며, 무서운 불길 같은 것이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주위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한 소리가 들렸다
"기록관 라이쇼를 부르고
지금 당장 기록피지를 가져오도록 해라!"
마티아 또한 이에 동조하듯 말했다
"네, 모든 말에 거짓은 없을 것입니다
꼭 기록으로 남겨 주세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무겁고 한 없이 단단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녀들의 뺨은 요염한 미소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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