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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80화 - 황금의 포효와 신화시대의 숨결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1장 순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80화 - 황금의 포효와 신화시대의 숨결 -

개성공단 2020. 5. 7. 20:09

그것은 흰 화장을 억지로 산맥에 바른 듯한 풍경이였다

본래 웅장하게 그 몸을 드러내고 있어야 할 산들이

이제는 완전히 흰색으로 덮여있었다

 

알류에노는 금발을 흩날리며, 공중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하게 먼 하늘은 한숨이라도 쉬듯

띄엄띄엄 눈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이 하늘에서 흩날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데

본질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징 그 자체라니

왠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름다운 것에는 피부를 찌르는 가시가 있는 것이라고 자주 말하지만

그것은 너무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눈송이가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른다

 

알류에노는 장갑을 낀 손바닥으로 흘러내린 눈 한조각을 건져 올렸다

그것은 일순간 손아귀에서 그 모습을 간직하려 했지만

곧 녹아서 물이 되어 버렷다

 

"피곤하십니까, 가희의 성녀님?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눈이 있으면

마차를 몰고 올 수 없으니까요"

 

문득 눈을 잡기 위해 다리를 멈춘 알류에노를 보고

통행하던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내뱉었다

한없이 경박한 듯한 말투와 행동에 

알류에노는 무심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당 기사 가르라스 가르간티아

게다가 저는 가희라고 불리는 신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알류에노 님이 좋으신가요,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는 가르라스를 보고

알류에노 주위의 다른 성당 기사들이 표정을 얼어붙였다

 

확실히 알류에노의 정확한 지위는 성녀 후보일 뿐

가희의 성녀라는 이름은 임시로 주어진 것이였다

그러므로 성당 기사인 가르라스가 그녀에게 일반적으로 불렀다고 해서

그 부분에 문제는 있을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다...

 

가희의 성녀 알류에노

황금의 머리칼과 눈을 반짝이며 시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이제 성녀나 다름없는 일로써, 사제와 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당 기사가 섬기는 교황 휘하 또한 그 인식은 변하지 않았..

아니, 오히려 교황이랴말로 그녀를 성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1인자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알류에노가 성녀로 참석하는 것도 시간문제요

앞으로는 신이 준비하는 시련이라든가

순례의 여정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이야기일 뿐이였다

 

그래서 호위로 동행을 허락받은 성당 기사들 중

다수도 알류에노를 성녀처럼 대우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르라스 가르간티아만은, 별도였다

 

실력은 성당 기사 제일이면서, 가장 성당 기사답지 않은 남자

창을 가진 맹수

 

그런 멸칭을 받고 있는 그라서일까

말투는 한없이 경박하고 성녀에 대해서조차 경의의 파편도 보이지 않았다

가르라스가 입을 열 때마다

주위의 성당 기사들은 표정을 굳히고는, 항상 긴장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중에는, 이것을 계기로

평상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르라스에게

성녀가 짜증을 내지 않을까, 라고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가르라스가 아무리 경박스러운 말을 해도

알류에노는 어딘가 명량함조차 엿볼 수 있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당신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이군요, 네 그렇게 하세요"

 

가볍게 한숨을 쉬긴 하지만, 혐오감은 보이지 않았다

 

듣건데 가르라스 가르간티아와 성녀는

아직 성녀가 수녀로 불리는 처지였을 때부터의 친분이라 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할 것이다

 

장차 성녀될 자와 친하다

성당 기사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인연을 얻으려고

알류에노에게 스스로 말을 걸려는 기사는 켤고 없었다

누구나 성녀의 솔직한 종복으로서의 행동을 철처히 하고 있을 뿐

 

이유는 단순한 것이다

대성교에게 성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니까

 

성녀란 감히 신에게 다가가

사람으로부터 그 존재를 몇 걸음 알아내는 자

신화시대의 기적과 성당 기사들이 품는 외경을

강렬하게 변질시키고 있었다

 

알류에노는 신의 계시를 따라 순례를 계속하며

그 몸짓과 마력, 아니 존재 자체가 조금씩 변모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도저히 마을 처녀와 같은 존재감은 아니였다

 

호위하는 성당 기사들은 나날의 우연한 접촉 속에서

그것을 실감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알류에노의 눈동자 속...

평소에도 그런 건 아니였지만

가끔 그 황금빛에 포착되면, 그들은 심한 공포감을 느끼 곤 했다

 

마치, 아득히 상위의 존재로부터, 직접 응시받고 있는 듯한 공포...

마치 스스로의 운곽이나 존재가 애매해져버리는 듯한 오열...

그리고 마치 정신이 억지로 벗겨지고 있는듯한 광기...

 

그것은 틀림없이 신비의 현현이였고

알류에노라는 소녀가 신의 한 끝을 잡고 잇다는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은 대성교 신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며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너무 멀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만은 틀림없다

 

그 주위 모든 것을 삼키는 존재감을 한 번 가까이서 기억해 버리면

심장은 공황의 두근거림을 치고, 감정은 남다른 공포에 흽싸인다

일찍이 신에게 너무 다가갔던 자는 

그대로 빛에 삼켜진 나머지 눈과 전신이 불타 버렸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류에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는

가르라스 가르간티아, 그리고 또 한 사람 뿐이다

 

또 한 명, 그것은 가르라스 가르간티아의 동행자라는 형태로

이 여로에 들러리역할을 허락받은 인간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의 명사이며, 

정당한 복수자라는 두 번째 이름을 부여 받은

외눈박이 검사, 이름은 헤르트 스탠리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전설상의 기록뿐이지만

머지않아 모습 정도는 보이겠군요"

 

그렇게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헤르트의 말에

알류에노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의 황금 눈동자가 헤르트라는 청년을 포착했다

 

알류에노는 헤르트 스탠리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이 없다

 

알고 있는 것이라면, 유일신 아르티우스가 그를 호위로 택한 것

그리고 악덕한 자 루기스와 대면하여 직접 칼날을 거두고

생존한 몇 안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의 왼쪽 눈이 빛을 영원히 잃은 것은,

그때 루기스에게 당한 상처가 원인이였다고...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헤르트가 가슴에 품고 있는 악덕한 자에 대한 적개심은

누구보다도 강하며, 외눈이여도 무기 솜씨는 두 배로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서민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번은 악덕에 패해, 피의 바닥에 엎드렸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검을 손에 쥐고,

정당한 복수자로서 길을 걷는 그런 줄거리를...

 

사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알류에노는 헤르트 스탠리가 항상 적의를 불태우는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루기스에 대한 적개심일까, 아니면 복수심일까

어쨌든 넘칠 정도의 정서를 보여주는 그런 인간이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알류에노는 일순간 그의 싸늘함에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헤르트 스탠리의 눈동자에 있는 것은

적개심이나 복수심 따위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한 열을 안고 있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은 악덕의 주인, 루기스를 만났다던데, 그는 어떤 인간이였나요?"

 

헤르트 스탠리는 알류에노의 더듬는 듯한 질문에

순간적으로 입술을 다물다가, 원가 말을 다듬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 황금의 눈동자는 알류에노의 질문 따위는 일절 상정하지 않고

오히려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는 듯한 모습이였다

 

차분히 몇 초 사이를 두고, 헤르트는 말했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눈이 부시게 강한 사람이였습니다"

 

알류에노는 그 말을 듣고, 강하게 눈을 흘겼다

그의 말은 원수라거나 적의를 품는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였다

주변 성당 기사들도 가르라스를 빼고는, 표정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분명 너도나도 헤르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적에게까지 경의를 표하는 것은 고귀한 행위이지만

그것을 문장교도에 대입해서까지 행하는 인간은 드물었다

게다가 상대는 하필이면 대악으로까지 칭해진 자

아무래도 헤르트가 말한 말에는 미심쩍은 것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누구도 성녀와의 대화엔 끼어들지 하려 않았다

 

그런 가운데, 알류에노는

단지 하나의 확신만을 가슴에 떠올렸다

 

헤르트 스탠리라는 자는 루기스에게 앙심은 품지 않았다

다만, 다른 번거로운 감정을 안고 있는 거 같군

 

알류에노는 입술에서 살짝 뭔가 좋지 않은 것이

새어나올뻔 했던 것을 이내 꿀꺽 삼켰다

뺨에는 선을 그은 듯, 아름다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귓가에서 가르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이는 군, 저거야

거인의 잠자리였다던가?

생각보다 멀쩡하군"

 

눈 사이로 오래되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찍이 유일신 아르티우스가 거인의 목을 비틀어

무한한 잠에 빠뜨렸다고, 그렇게 구전되는 장소

신화의 시대가 아직도 숨결을 남긴 것 같은 그런 고비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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