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0화 - 한랭나비 - 본문
"친애하는 루기스..."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의 편지는, 그 한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안은 작은 입술을 열면서, 발랄하게 익숙한 어조로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역시 그녀는 그 쪽의 훈련은 익숙해진 거겠지.
편지에 기술된 아름다운 문구는 도저히 나에겐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안의 말투로 전해지니 꽤나 쉽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채,
그 양피지 두 장에 이르는 편지의 내용을 마지막까지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가볍게 머릿속에서 곱씹는다. 요컨대 하고 싶은 말은...
"요약하면, 상처가 아물어 가는 대로
즉시 갈루아마리아로 돌아오라는, 성녀 마티아의 전언입니다, 영웅님"
안은 뺨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낯간지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면서,
영웅님은 여전하시네요, 하고 안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나는 입아귀를 가볍게 올리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침대 천이 들썩였다.
"너도 여전히 수고를 어깨에 등지고 있구나, 안
뭐, 이쪽도 몸 안에 쇠를 넣은 만큼 무리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쉬게 해달라고, 마티아한테 전해줘"
붕대가 감긴 몸을 누운 채, 말했다.
신체는 가볍게 자세를 비튼 것만으로도, 뼈 자체를 후벼파는 듯한
고통과 함께 오열을 흘렸다.
아무래도, 뼈 주변에서 물어뜯는 듯한 통증이 솟아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다.
난 그 영웅 헤르트 스탠리의 백검을, 그대로 몸으로 들이받았으니까.
본래라면 이미 저세상에 가있어도 충분했다.
지금 여기서 내 심장이 아직 뛰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때, 그 자리에서 난 그를 죽이고,
그리고 그에게 죽임당했다고. 분명 그리 직감했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인생이라는 녀석은
딱 잘라서 해피 엔딩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다.
내게 있어선 시원시원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었다만
아니, 하고 입술을 일그러뜨렀다
분명 한 때 내가 동경했던 존재에게, 이 손이 닿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 전부에 결말 지은 것은 아니다.
시선 너머로, 일찍이 낯익은 소꿉친구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프리슬란트의 대신전이 그 몸을 가루가 되어 파괴되어가는 와중에
사라져버린 그 황금의 모습이 말이다
"알겠습니다
루기스님께 큰 일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큰 손실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길, 하지만 빠른 귀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드님이나 세레알님도 무척 쓸쓸해 보이셨으니까요, 라고 안은 말하면서 양피지를 둘둘 말아 머리맡에 놓았다.
아니, 그걸 두고 가도 내가 읽을 일은 없지만.
게다가 양피지 따위란 것은 나 같은 녀석에겐 전혀 익숙하지 않고,
취급하기도 어려운 물건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순 없겠지
그런 식으로 고민하는, 굳은 표정을 본 것인지.
안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참 좋은 성격을 하고 있구만.
이녀석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리 말하면서 가볍게 미간을 찌푸려 보이자, 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실례를 보이고 말았군요
하지만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영웅님, 프리슬란트의 대신전이 부서졌다고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었으니까요"
입가를 손으로 감싸면서도 그럼에도 눈동자에 희색과 같은 것을 보이며
안은 말했다.
안의 말을 듣고, 동의를 표하듯이 끄덕였다.
당연하겠지. 직접 보고 있었던 나조차
아직 그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문이 막힐 정도니까
내가 이 정도인데, 어떻게 귀로 전해들은 말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그 날, 무엇이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은, 카리아가 검붉은색의 검, 거인의 이능을 이용해서
아르티우스를 한 걸음 물러나게 했다는 것 정도....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 뿐이였다
그리고 신전이 무너진 후, 설산에서 굴려내려와 정신을 차렸을 땐
자치도시 피로스의 영주 저택, 그 한방에 누워있었다.
전신에 기억에 없는 찰과상이 몇개나 새겨져있던 것을 보건대,
아마도 산을 뛰어 내리는 와중,
자신도 모르게 바위면이나 나뭇가지에 살을 찔렸던 거겠지.
그런 것을 의식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군.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아닌,
카리아, 그리고 피에르트와 엘디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모두가 만신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도시 필로스에 있어서 며칠 동안은 누구 하나 깨어나지 못했다고
주둔하고 있던 문장교 병사에게서 들었다.
지금도, 모두 그 몸을 충분히 휴식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자치도시, 아니 괴뢰도시 필로스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들과 최저한의 문장교 병사 뿐이었다.
문장교의 성녀인 마티아는
본거지인 갈루아마리아에 그 몸을 귀환해야만 했고,
브루더나 베스타리누도 치료를 위해 그녀와 동행하고 있었다.
가자리아의 엘프들 또한 본격적인 한랭기 때문에 귀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탓인지, 이 피로스라는 도시는 꽤나 조용해져 있었다.
눈이 소리를 집어삼키고, 그대로 떠나버린 듯이 말이다
참으로, 기분 나쁜 고요함이었다.
난 지금 이 정적이란 녀석이 도저히 좋아질 것 같지가 않았다.
정적이란 녀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고의 뚜껑을 열어,
쓸데없는 망념을 사람에게 품게하는 꺼림칙한 손톱과 같은 것이다.
가슴을 애태우며 끊임없이 쫓았던 동경을 이 손에 넣은 것.
과거로부터 계속 원해왔던 소꿉친구의 손을 잡을 수 없었던 일.
그런, 셀 수 없이 많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뒤엉켜, 몸 곳곳을 쓸어갔다.
그것은 정적이 계속 되는 한, 끝없이 이어질 의식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안이 전령으로서 방문해주었던 일은 무척 환영하고 싶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지루하지 않았고,
이상한 생각 또한 들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게 이 도시 필로스에 있어서 나는 꽤나 악명을 울린 듯했고,
문장교의 병사 중에서도 쉽게 내 방에 방문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 와중 카리아, 피에르트에 에르디스가 요양중이라고 하니,
내 방의 문을 두드리는 자는 극소수 뿐이였던 것이다
안과의 잡담이 끝마침 되었을, 무렵.
평소처럼 방 문이 울린다. 꼼꼼함이 느껴지는 노크 소리였다.
잠시 이쪽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지만,
곧이어 자동으로 문이 열리며, 방문자를 맞아들였다.
"들어갈께요, 이제 슬슬 붕대를 바꿀 시간이까요, 루기스 브리간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외안경에 백색눈을 한 여성, 자치도시 필로스의 통치자였던 필로스 트레이트.
로조에 관한 사건이 끝나고 한동안은 의식을 잃은 채로 있었지만,
지금은 벌써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 예전과 같이 통치자로서 의자에 앉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민들은 불안한 상황이었고,
그녀 스스로 통치자로서의 마음고생을 시킬 만큼 완치되지 않았다.
그런고로 지금 그녀는 종종 통치자로서 지식을 문장교에게 자문해주면서도,
나와 똑같이 요양이란 명목으로 영주 저택에서 지내고 있었다.
물론, 문장교의 영향 아래에서 감시를 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말이다
뭐든 간에,
그녀는 정적과 시간이 충분히 남아도는 나에겐
몇 안되는 대화 상대 중 하나였다.
그녀는 아마도 안이 나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듣지 못한 거겠지.
방에 들어온 순간, 그 백안이 크게 움직인 것이 보였다.
동시에, 안도 몸을 뒤로 돌아 일순 말문이 막힌다.
묘한 침묵이, 나를 포함한 삼자간에 흐르고 있었다.
"항상 미안하내, 모처럼이면 와인 하나라도 가지고 오면 좋겠는데"
어쩌다보니 생겨난 침묵이 답답해서, 가볍게 농담삼아 그리 말했다.
조금은 굳어진 분위기란 녀석이 풀어질 것을 기도하며...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을 뒤로하고
안과 필로스 트레이트 두사람은 입술을 앙다문 채로 있다.
하얀색 눈이 한순간 이쪽을 바라본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한이 서린 눈빛이 거기에 떠올라 있었다.
뭐야, 대체 이 시선은, 내가 뭘 잘못 했다는 거야?
내 곤혹스러움을 무시하고,
필로스는 답답할 정도의 속도로 안에게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말에 담긴 것은,
꽤나 복잡한 감정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내가 그에게 목숨을 건져진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조금은 태도로 사의를 표해야 겠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피로스 트레이트는 말을 이어갔다.
안과 나란히 소파에 앉은 채, 그녀는 무척이나 있기 불편한 듯했다.
여전하다고나 할까, 뭐랄까.
필로스 트레이트는 어디까지나 완고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번에 그녀가 로조에게 실각당한 것도,
그런 점을 찔려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로스 트레이트의 말을 듣고,
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보며 입을 연다.
"영웅님의 행적에 태클을 걸진 않겠지만
이제는 좀 자제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루기스 님"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이 다음에 진지하게 안과 대화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뒤엉킨 실타래처럼 되버리기 전에 말이다
무심코 가슴속의 밑바박에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숨이기 보단, 미소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였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시끌벅적함이란 녀석이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렇고말고, 정적 따위랑 비교하면, 이쪽이 훨씬 좋다.
다소 걸리는 점은 있어도, 그저 고민으로 고통받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몇마디를, 안, 그리고 필로스 트레이트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필로스 트레이트의 표정은 어딘가 굳은 채로 있었지만.
뭐 조금은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거라고 할 수 있겠으려나?
그리고 마침,
베개 근처에 그대로 두었던 술병을 어떻게든 손에 잡히지 않을까
아픈 몸을 기울 일 때였다.
문득, 시야에 창문이 비쳤다.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소리를 흡수하는 눈덩이가
펑펑 쏟아지고 세상은 하얗게 도배되있다.
마치 인간과 엘프가 물들인 세상을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만드려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본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눈덩이의 틈에. 하얀 나비와 같은 것이, 보였다. 눈을, 부릅뜬다.
그것은 눈 사이사이를 깜박깜빡 휘날리며,
그리고 어느샌가 하얀 덩어리 속으로 사라져간다.
하지만 결코 눈 그 자체는 아니였다
목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귀에 울려퍼진다. 전신의 신경이 곤두서고,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의식이 반응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삐걱거리는 전신을 억누르듯이 하고 창밖을 보았다.
나비의 모습은 이제 없다.
하지만, 방금전에 이 눈에 비친 것은 분명, 지난 세계에서 보았던 이물
지난 세계, 대재해가 찾아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였던 한랭나비의 모습이였다
머릿속이 나에게 말을 발하고 있었다
일찍이 인류 모두에게 채찍질한 대재해가, 지금 여기에 오고 있다고...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3장 대재해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3화 - 밀약자의 교제 - (0) | 2020.05.13 |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2화 - 성녀가 믿는 자 - (0) | 2020.05.13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1화 - 영웅의 마음 - (0) | 2020.05.12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9화 - 갈라이스트의 영웅 호걸들 - (0) | 2020.05.12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8화 - 위대한 폭풍과 마수떼 - (0) | 2020.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