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2화 - 성녀가 믿는 자 - 본문
건네받은 양피지를 신중히 열어보며,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는 의아한듯이 입꼬리를 낮췄다.
내용을 읽기전에 시선이 스르르 양피지 전체를 지나갔다.
글쎄, 하고 무심코 입술을 열며 마티아는 말했다.
"글씨체가 어찌, 안과 닮았군요"
꼼꼼할 정도로 정돈된 문자. 그
렇다고 전체적으로 읽기 힘든 것도 아니였다.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봐왔던 측근 라르그도 안의 글씨체 그대로였다.
감탄한 듯 마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똥말똥 양피지 전체를 바라보았다.
드물게 루기스가 자신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왔다고 들었을 때부터,
마티아의 가슴 속엔 약간의 기대감과 불안,
그리고 호기심이 들러붙어 있었다.
어차피 신경 써서 쓴 답장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가 자신을 위해 펜을 움직였다는 것은
정말 기쁘고 멋진 일이다.
그녀도 모르게, 마티아의 뺨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루기스니까 어딘가 거친 말들로 적혀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씨라는 것은 의외로 인품에 비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마티아는 긴 속눈썹을 움직였다.
"...예, 제가 대필을 했습니다"
루기스님은 아직 완쾌라곤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곁에서 안이, 조금 말을 더듬듯이 그리 말했다.
꽤나 말을 고민한듯 그 목소리는 늘 매끄럽지 못하다.
그런 건 빨리 말해줘야... 아니, 차라리 아무 래도 듣지 않는 편이 좋았다
뺨을 살짝 붉게 물들고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마티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잘 생각해보면,
안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자가 그녀 외에 많이 있을리가 없다.
게다가 분명 그는 빈곤한 출신이었다고 들었었다.
그렇다면 문자라는 것과는 그리 연이 닿을 일이 없었겠지.
손편지를 쓴 적이 아에 없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마티아는 문득, 눈초리를 올렸다.
그런가, 나는 그가 쓰는 글씨체 하나 몰랐던 것인가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마티아는 가슴 속에 떨어트렸다.
이젠 사실상 짧다곤 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했고,
조금은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글자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이나 출신지조차 잘 몰랐다.
성장과정도 어렴풋이 들은게 전부다.
마티아는 비웃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태로 잘도 그의 관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외쳤다는 게 놀라웠다
우스운 것도 정도가 있다.
알고 있는 거라고 하면, 고작해야 그의 몸짓 뿐이지 않은가.
이래선, 안됀다. 부족함에도 정도가 있다.
그렇고말고. 관리라고 한다면, 그
야말로 그에 대해서라면 손에 잡힐 정도로 간단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글자도, 좋아하는 것도, 전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양피지에 있는 글자를 읽던 마티아의 눈이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말똥말똥한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그 모양을 보신 것인가, 라고, 안은 생각했다
"마지막 서명만은 루기스 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뭐... 본인의 증명이랄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안이 말하는대로,
확실히 편지 벌산인의 이름을 기록하는 부분만,
눈에 띄게 다른 글씨체의 글자가 적혀있었다.
흐트러진 글자다.
아마도 힘이 들어갔던 거겠지,
손의 힘을 증명하는듯한 잉크로 진하게, 루기스라고, 서명이 되어있다.
마티아는 잠시동안 그 서명을 보면서, 눈을 가볍게 감았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손 안에서 양피지를 둥글게 말아갔다.
마티아가 눈을 감은채, 몇초가 지났다.
적혀져있던 내용이 머리를 빙빙 지나가며
자 그럼 어떻게 응해야할까 하고 사색에 잠기기 시작했다.
"내용만 읽는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입니다만..."
공기마저 찌르는 듯한 예리함으로, 마티아는 눈매를 가늘게 만들었다.
양피지에 새겨져 있던 말의 나열은
문장교에 명확한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받아들이기 어렵고 진지하게 상대해줄 만한 것이 아니였다.
평소의 마티아였다면, 그저 흘려넘겼을 망언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루기스 였겠죠, 안?"
마티아의 말은, 긴장된 시선을 푸는 듯한 그런 분위기를 따르고 있었다.
안은 조그맣게 턱을 당기고 고개를 끄덕이며, 틀림없이 그렇다고 대답했.
마티아는 안에게 응답하듯이, 속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소중히 말아진 양피지를 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럼 안. 해야할 일은 이미 알고 있겠죠.
지령서를 적겠습니다, 곧바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도록
병사들과 각국의 협력자들에게 전령을 보내세요"
등을 보인 채, 마티아는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허공에서 춤추었다.
반면, 안은 마티아의 언동에 적지않게 놀라며 말을 삼켰다.
설마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라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였다
확실히, 영웅님의 말이라면 아무리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할 지라도,
성녀는 진지하게 들어주겠지. 안도 그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고,
딱히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요청 전부를 그대로 입에 담으며 수용해버리다니,
예상을 한참 벗어났던 것이였다
안이 알기로는, 마티아라는 성녀는 이성과 타산을 중시하는 인간이며,
감정을 따르는 인간이 아니다.
때때로 루기스를 앞에두고 감정을 크게 들어내는 일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국적인 판단을 무너뜨리는 일은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순간적으로, 안의 복부 근처에 차가운 저림이 엄습해왔다
그것이 목구멍을 향해 쿵 하고, 올라오는 감촉이 있었다.
의심이라 할 정도의 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제로 억눌러버리기엔, 흘러 넘치는 감정.
지금까지도 몇번인가 느껴오긴 했지만...
설마 성녀 마티아는 영웅님에 대한
모정 때문에, 맹목적인 심지에라도 빠져버린 것인가.
안은 가지고 있던 다른 양피지를 가슴팍에 짓누르 듯 하고 침을 삼켰다.
어렴풋한 감각이 머릿속을 덮고 있었다. 안의 작은 눈꺼풀이 깜박거렸다.
"안, 잠이라도 자는 건가요?"
그런 안의 의식을 강제로 되돌린 것은, 다름아닌 성녀 마티아의 말이었다.
안은 아차하며 마티아에게 대답했다.
항상 유연한 대응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그녀가,
어찌된 일인지 오늘 이 시간만큼은
심각하게 횡설무설하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안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마티아는 입술을 달싹인다.
마티아 치고는 드물게, 타산이 담기지 않은 상냥한 표정...
"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저고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령 무엇에 빠지더라도, 저는 저니까요. 그리 말하면서,
마티아는 말을 이어 나갔다.
"저 하나로 끝날 일이라면 몰라도.
백성들과 병사들이 관련된 일에 있어서,
정에 치우쳐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진 않을 것입니다.
성녀가 되던 날, 저는 그렇게 맹세했으니까요."
그것은 분명 성녀가 아니였다,
마티아라는 한 인간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실의 목소리였다.
조금의 거짓도 꾸밈도 없는, 맹세의 말.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전혀 말이 막히는 기색이 없었다.
대본이라도 읽는 듯 마티아는 말했다.
"그래서, 이건 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다만 루기스라는 인간을 믿고 해서 하는 소리 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문장교의 길을 개척하고, 유성처럼 길을 이끌어주었다.
그 행동에서, 그 승리로, 그 무지막지하다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솜씨로...
물론 반드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흘러간 것은 아니였다.
충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행동도 있었고
너무나도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단
순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먹구름 속에 뛰어든 것도,
무질서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였다.
확고한 의지와,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따라서, 이 편지 내용 또한
얼핏 보기엔 터무니 없는 것이였지만,
그곳에 희미하게 읽히는 의도 같은 것만은 있었다.
설명이 꽤나 부족한 것은, 그 답다고 하면 답다고 할 수 있지만.
아니, 자신이라면 알 수 있다는 신뢰일까.
만약 그렇다면 기쁜 일이다.
마티아는 뺨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신뢰....
저는 그를 신뢰합니다
편지 내용이 모두 참이라고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겁니다
네, 확실한 타산을 가지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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