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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39화 - 궁지는 곧 좋은 기회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39화 - 궁지는 곧 좋은 기회 -

개성공단 2020. 5. 18. 21:25

보검의 칼날이 발레리의 목 끝을 튕겨나갈 때까지의

눈 깜짝할 사이, 영웅을 죽이는 자의 이름이 떠오른 보검이 반짝이며

칼날을 들이밀 때까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숨을 삼키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극소의 공백에, 그것은 해방되어졌다


바람을 단절하는 소리가 울리고, 그

것들을 내팽겨치고 쇳덩어리 같은 중압이 내 허리뼈를 덮쳤다.
시야 밖, 오른쪽의 사각에서 그것이 왔다.


뼈가 부서지는 정도가 아닌 

몸뚱이 그 자체가 위아래로 분리되버릴 듯한, 그 일섬과 충격


뭐야 이건, 나는 지금 무엇에 공격을 받은 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아니 발레리가 무슨 짓을 하긴 한건가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이 일순간에 뇌속에서 솟아나고, 

그렇게 사라져 갔다.
차례대로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의 소용돌이가 

나에게 사고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상황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오른손에서 주는 기세 그대로 본능에 따라 뛰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기에

보검의 끝은 마법 갑옷의 끝을 스치는 데 그치고

나의 체구는 그대로 허공에 내던져버렸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나는 자신이 발레리에게 걷어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레리가 왼쪽 다리를 높이 들며 시선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젠장할, 난 그녀석의 팔을 튕겨. 태세를 무너뜨렸어야 했을텐데

대체 왜 실수를 해버린거지?

 

내가 무슨 헤르트도 아니고... 이런 짓은 놈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야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나의 신체는 딱딱한 지면으로 내던져졌다.
있는대로 쌓인 눈 따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치 철판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고
꽤나 오랫동안, 허공에 내던져진 것 같다.


수초 사이, 신체는 혼란한 생각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뭐가 일어난건지, 사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그것이 왔다


위액이 역류하고, 신체의 내부가 파괴되 피가 목구멍을 통해 차올랐다.
전신의 뼈가 비명을 지르고, 

근육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갈기갈기 찢겨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비정상적인 신체도 지금의 충격에는 버티지 못한 것인지 

아물었을 상처가 연이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악이다. 상황이 좋지않다. 빨리, 놈에게서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네놈, 저주받은 자인가

그래서 몸이 꽤 튼튼했던 것이로군"


일어서자 허리가 파열되듯이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해냈다. 

나는 신체를 비틀거리며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대치 상황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듣는 발레리의 목소리다.


그런 상대를 어디까지나 내려다보는 듯한 목소리는, 지독하게 거슬렸다.


"미안하지만 내 성질은 오래 전부터 변하지 않았어,

안목이 너무 없는거 아냐?"

 

저주받은 자. 때로는 이단자, 축복을 받은자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의 변천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


정령과 요정 그리고 마, 대성교가 인정하지 않는 것들에게 축복받은 자

주술에 매료된 인간을 두고 부르는 말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악취미란 말을 쓰는 것은 대성교인들 뿐이겠지만

 

나는 전혀 못 쓰게 된 팔을 축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보검만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에 간신히 감각만은 남아 있었지만, 검을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지면에 내던져졌을 때, 팔꿈치부터 충돌한 것 같았다. 

팔 자체가 올라갈 것 같지 않았다.

 

자, 나는 궁지에 몰렸다. 

이제 어떻게 놈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칠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내 안에 넘쳐 흘렸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해야 할까, 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눈 송이가 쏟아지는 가운데 눈을 움직였다

그리고 발레리와 한 걸음, 시간을 맞추었다

 

어떻게든, 단 한순간이 필요해. 발레리의 시선을 돌려야만 한다고


"...그러고 보니, 내가 내 편을 다치게 했다고 그러던데

짐작 가는데가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그게 누구야?"

 

입을 열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햤다. 

어떻게든 오른손을 보검에 가져갔다.
겉모습만이라도 정상적인 모습을 가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뭐, 아마도 의미는 없을 거다. 

발레리는 틀림없는 역전의 용사다.
나의 상태 따위 진작에 꿰뚫어 봤음에 틀림없었다.  

그야말로,  어쩌면 일대일 승부를 하기 전부터.

 

그래서 도발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대로 머리가 박살났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사도라고 종종 들은 적으니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레리는 일순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


"리처드 퍼밀리스, 네놈이 잘 아는 사람이겠지

어째서 그를 배신한거지? 그것도 구교도들의 손을 잡고..."

 

익숙한 이름을 듣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가운 공기가 입안에 들어왔다.


발레리의 그 말에는, 틀림없는 열기가 담겨져있었다. 

결투의 한창 도중에서도 냉철하게 행동하던 여자가
그 말을 내뱉을 때만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할아범은 대체 저 여자랑 무슨 일이 있던거야?

할아범과 비교하면 한참 벌어진 나이일 텐데

아니, 내 스승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으련만

그래도 솔직히 알고는 싶군


하지만 뭐, 어떠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할아범의 존재가, 이 여자의 영혼을 움직여 준 것이라면
감사 한 마디로는 끝낼 수가 없을 것 같군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거의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내뱉을 때마다,  목이 찢어진 것처럼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상을 약속한 사이다

함께 조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이다, 대답해라, 왜 그를 배반했나"

 

말하는 어조는 냉정함 그 자체. 말의 색도 강철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역시나, 이 여자의 역린은 그거였군

 

발레리 브리트니스라는 인간은 완벽하다

예전의 헤르트 스탠리에 가까운 빛조차 보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영웅이고, 메스꺼운 고결함도 있었기에

아마도 본래 파고들 틈은 전혀 없는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  딱 한가지 역린을 보이고 있었다. 

그 위대한 용조차, 건드리면 감정에 사로잡혀 광분할 것 같은 것이.
발레리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인간일지라도 감정에 휩쓸린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였.


"남들이 득디 거북한 말투는 그만둬

누가 배신했다는 거야?

나는 내가 편하기 좋은 대로 할아범을 이용했고

할아범도 마찬가지, 똑같이 서로 이용해 먹었을 뿐이라고

나와 할아범은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입 안에서 말을 쥐어짜내며, 말했다.

 

"야, 발레리

너 설마, 할아범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건가?

가련한 녀석, 동정심이 떠오를 지경이야"

 

순간적으로 노기가 뺨을 때렸다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충분히 느껴질만큼의 바닥이 보이지 않은 분노...
이것이 똑바로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틀림없다. 

평범한 자에겐 지닐 수 없을 정도의 열량이 그곳에 있었다 

발레리의 눈이 부릅떠져, 그녀의 송곳니가 예리함을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눈은 이제, 살의 밖에 담겨져있지 않았다. 

마수가 가진 흉폭한 의지에도 필적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의지를 가지고 발레리는 말했다.


"편히 죽이진 않겠다, 대악이여"

 

녹색이 눈 속을 달렸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주먹은 분명 나를 찌를 것이다

그것을 숨길 여력도, 받아들일 수 있는 흉내도, 내겐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방심하지 않고 주위에도 신경을 쓰던 발레리는
지금 이 순간 나 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아아, 이 순간만을 갖고 싶었다

그렇고말고, 나는 대악이다

그러니 여기서 쓸데없는 기사도를 따라 할 의미도 없었다


등 뒤로 쓰러질 듯한 기색이 닥쳐왔다

시야의 끝에서 마법의 극광이 달리고 있었다


하늘을 관통하라, 불꽃의 뱀이여, 세상을 녹이고 원수를 뼈도 남기지 말아라


세계를 일그러뜨리면서 불꽃을 소용돌이치는 뱀이

발레리를 향해 턱을 연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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