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38화 - 조국의 적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38화 - 조국의 적 -

개성공단 2020. 5. 18. 19:45

감옥 벨라의 대문을 앞에 두고, 베스타리누가 나를 향해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무리 말을 쥐어짜도 형용할 수 없는 여러개의 감정이, 

그녀 표정에 혼합 되어있는 듯했다.


그녀는 솔직하고 우직한 성격이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나와있는 모양이었다.


"당신이 일대일 배경을 벌이다니, 제정신이 아니에요

이것은 생명을 스스로 진흙에 버리는 행위에요

거기다 몸에 상처가 아직 머물지 않았잖아요"

 

그녀이 입이 이제서야 할 말을 찾아 그리 말했다.  

음색은 불만과 분노가 뒤섞인 듯 하다.


잔소리 같군

지휘관 스스로 적의 눈 앞에 목숨을 바쳐 시간을 벌자는 것이니

격려의 한 두가지 말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을까


그 행위가 좋고, 나쁘고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뭐, 목숨을 진흙탕에 처박는 건 이미 익숙해진 것이였다.
안심해줬으면 좋겠든데 말야


베스타리누는 그 이후로도 몇번인가 말을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듯 했다.
아마도, 무언가를 내뱉는다고 진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이상의 말을 계속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원군을 계속 기다리고 싶긴 했지만


"이제 피는 멈췄어, 그 정도면 내게 충분해"

 

짙은 녹색의 군복에서 눈을 털어내면서, 가

볍게 피가 번진 곳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상처 자체는 아직 분명히 있었지만, 피는 더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 기이함은 섬뜩했지만, 동시에 든든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말이다


차가운 공기가, 콧구멍에 들어왔다. 

 목구멍이 작게 울리며.  가볍게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말로는 충분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명확히 체력은 부족했다

신체 대부분이 상실되버린 듯한 감촉이 있었다.

 

과연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현재, 조금의 여유조차 내게 없었다 

아니, 여유가 없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언제나 이상으로 모든 것이 부족했다

 


나는 베스타리누와,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말하듯이 입을 열었다.


"이건 전쟁이야, 베스타리누

상처가 생겼으니 나을때까지 적에게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겠어?

어떤 때든 적이 있다면, 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용병 공주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말을 이었다

베스타리누는 입술을 으스러뜨리며, 마치 나를 노려보듯이

발꿈치를 치켜들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랭기 때문인지 흐릿했다

 

"죽는다면 원망하겠습니다

언니랑 같이 말이죠, 그야말로 평생 동안"

 

묘하게, 열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그런건 좀 하지 말아달라고, 카리아와 피에르트 만으로도 죽겠는데 말야

 

베스타리누의 그런 협박에 가까운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뒤를 향해 가볍게 팔을 흔들어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 그녀라면 내가 없어도 뒷일은 잘 해내줄 것이다.  

나보다도 훨씬 능숙하고 우수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귀족으로서의 교육을 받아온 탓인지. 

군사일의 통솔자라는 면에서 

베스타리누는 용병의 우두머리 정도로 두기엔
아까울 정도의 행동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비록 내가 적장에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알아서 잘 통솔해 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허리춤에 걸친 보라색의 보검이,  울음소리를 내듯이 진동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감옥의 대문이, 삐걱이면서 조금 그 입을 벌렸다.

시야 끝, 눈으로 온통 뒤덮인 새하얀 곳 속에, 그 여자가 있었디


말에서 내려와 이쪽을 기다리며 대치하고 있는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당당한 영웅의 모습 그 자체.
녹색을 기조로 한 마법 갑옷이, 눈이 훤히 비쳤다다.


그래, 저 자는 영락없는 영웅이야

과거 그녀가 있었기에 갈라이스트 왕국은 숨통을 조금 이을 수 있었다

 

발레리 브리트니스, 과거 마인만 죽였던 여자

마인밖에 죽이지 못했던 여자.


가능하다면, 적대하고 싶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대하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상대였다.
생각할 것도 없이, 전장에서의 경험도 그 기량도, 모든 것이 나를 웃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패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나와 나를 믿는 자에 대한 모욕이다

그렇게 극복해 온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행위다


아아, 그것만은 싫어

 

그 말을, 가슴 속에서 깨물었다

 

 

 

 

 

 

*

 

 

 

 

 

 

 

그 단판 대결에,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없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거기에 선 시점에서

그것이 신호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루기스는 보검을 빼자

발레리는 마법갑옷에서 살을 찌르는 듯한 눈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초록색의 마법갑옷이

하얀 눈의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동시에, 명확한 살의와 그것을 행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서 

무기가 휘둘러졌다.


번견 발레리가 휘두르는 것은 철검이 아니였다. 

그것 하나만으론 다수의 마물을 상대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사가 특기로 삼는 마상창도 아니고

전쟁도끼나, 수리검 같은 것도 아니였다
그것들은 마물의 무리를 앞에두고 서, 너무 약했다.


물론, 필요하면 그녀는 그것들을 얼마든지 다룰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발레리가 다루는 것은 단 하나. 

마법 갑옷 그 자체. 

따라서 그녀가 휘두르는 것은, 자신의 신체

 

본래는 갑옷은 무구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갑주에 불구했다.
하지만 그 마법갑옷에 있어선 모든 것의 예외라고 들은 바 있었다.


나 역시 자세히는 모르지만,  

수많은 무기보다 우월하고, 수많은 방어구를 능가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건 전해들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그 투박하기 짝이 없는 무장으로 그

녀가 무엇을 해왔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즉 마수의 머리에서 등뼈에 이르기까지의 전부를, 

철저히 박살내 죽여온 것이다.
그저 한결같이, 저 마법 갑옷으로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리고 지금, 

그 우직한 살의와 무위가 발레리의 오른 주먹에 실려, 

내 목숨 그 자체를 파쇄하려는 듯이 접근하고 있었다.


등줄기를 넘실거리는 듯한 두려움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차라리 칼을 들이대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동시켜 발목을 돌리며 보검을 그 궤도에 맞췄다.
그것은 발레리의 주먹을 튕겨내며, 그대로 놈의 목덜미를 참획하기 위한 일격

보랏빛이 을긋블긋 선을 그리며, 녹색 갑옷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려야 할 궤적은 명확히 눈 속에 보였다. 

눈 앞에서, 보검과 마법갑옷이 접합했다.


동시에 공간에 큰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틀림없는 힘과 힘의 충돌음


눈 위에 불꽃이 튀고, 눈 속을 화려하게 칠해갔다. 

그것이, 몇 번 이어지고.


보검은 적의 주먹을 완전히 튕겨내지 못했다. 

아니,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파고 드는 것도 전혀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목덜미가 전율을 일으켰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이다.  

나는 태세를 새로 정비하듯이, 순간적으로 검끝을 물렸다.
그리고 상대를 차올리는 듯한 기세로 배후로 도약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발레리는 허리를 회전시켜 

두번째 공격을 방출할 준비가 끝나있었다.
그녀는 조금 몸을 물린 나를 향해, 폭풍을 휘몰아치듯이 몸을 움직였다

 

순간 하늘이 폭발했다

볼살 끝이 벗겨지고, 피와 살이 눈 위를 덮고 있엇다

이가 저린 것처럼 경련했고, 한 걸음만 더 주먹이 어긋나 있었으면

그 찢져져 나간 볼살은 물론이고, 나의 머리 그 자체가 날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무사함을 안도할 틈조차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발레리는 그러한 유예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인 듯 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세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거리를 벌릴 만한 여유는 도저히 없었고
공격을 받아들일 태세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발레리의 오른쪽 주먹은 명확하게 나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발레리의 움직임은 모든 것이 교묘하고, 신속했다. 

모든 것이 헛숨을 들이킬 정도의 세련미로 넘쳐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대로 그저 휘둘러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


다시금 깨달았다  

신체적으로도, 기량적으로도 장기전은 도저히 바랄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곧 나는 패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일격으로 승부를 가릴 수 밖에 없다

나의 승기는 1초도 안되는 시간에 결정 날 것이다


뭐, 그 정도면 충분히 지나친 시간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겨드랑이를 조여서 양팔을 당겼다.
그러고는 보검자루를 들고 

옆구리로 발레리의 오른 주먹을 있는 힘껏 튕겨냈다.


동시에, 전신의 살이란 살이 절규를 지르며 튀어올랐다.
뼈가, 전장의 열기에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 상관없어 

발레이의 주먹을 튕길 수만 있다면

내 온몸이 부서진다 한들,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적일거야.


이젠 감각조차 상실된 손끝에 힘을 실으며, 

혼신의 힘을 보검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일체의 호흡없이 보검을 휘둘렀다.


마법갑옷이라곤 하나 갑옷인 이상 반드시 이음매가 있다.
그것은 목덜미를 잇는 접합부 이기 때문에, 반드시 견고한 것이 될 순 없다

결국 상대의 유일한 약점은, 목덜미 라는 것이다


그 순간,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죽어라, 조국의 적"

 

귀에 바람 부는 소리가 끼어들고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