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0화 - 가슴의 두려움과 마인의 말 - 본문
눈을 모아, 막사 창틀의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를 덮는 정령술의 얇은 천이 모양을 바꾸었다
그 안에 무리지어 있던 것은 백 가지의 마성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인간이였다
인간의 모습은 도저히 병사나 용병같은 종류가 아닌
아마도 그냥 마을 사람들... 주변 마을에서 유괴해온 것일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은 아직도 얼굴에서 두려움을 떨치지 않고 있었다
이 왕도에 원래부터 있던 인간이라면 저런 얼굴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보다 더 뿌리 깊은, 경계심을 얼굴에 떠올리고 있었다
마성 모두에게 인간은 식량이자 노예
분명 놈들은 새로운 인간을 신선한 도구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마성들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밉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도 이젠 굳어졌다
진흙 같은 소리도 잠잠해졌으니, 그 이유는 단 하나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늘 하던대로 하도록"
마인 통제자 드래그만
전율의 구현이라도 한 남성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이를 억지로 악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가 덜덜 떨며, 큰 소리를 낼 것 같았다
용병도시 베르페인, 괴뢰도시 필로스
거기서 짐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인에 가까운 존재와도 칼을 맞췄었다
그때도 두려움을 일으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였다
지금 가슴속에 있는 것은 분명한 겁
이상한 긴장과 흥분이 있었다
눈꺼풀이 바쁘게 깜박이면서 침이 목으로 굴러내려갔다
이마가 땀에 젖는 것과 동시에 저절로 한 손에 보검이 들려왔다
죽일 것인가... 아니, 저거 죽일 수 있긴 한건가?
마인은 긴 귀에 손을 얹고
가볍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게 수확인가?
내가 말하는 건 어떻게 됬나, 찾았나?"
인간 무리와 긁어모은 금품을 보며 드래그만이 말했다
아마 영주관사라도 뒤져보고 왔을 것이다
단지 촌락을 몇개 뒤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만한
촛대와 은접시까지 여러 개의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분명 비싸보이는 것이였지만
마인이 원할 만한 것 같진 않아보였다
애초에 놈들이 원하는 것이 뭐지? 사람의 혈육인가?
상황을 살핀 채, 시선을 가늘게 했다
가슴이 매우 뜨거웠고, 기도에 숨을 그저 내뿜는 기분이였다
그러던 차에 문득 세 사람의 동정을 살폈다
혹시나 마찬가지로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눈을 크게 찡그리니
카리아, 피에르트, 엘디스
세 사람 모두 긴장을 품고 잇었다
두려움에 가까운 것도 느껴졌다
하지만 결코 두려움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모두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이를 세게 깨물고 있었다
참으로 강인한 얘들이군
모두 예전에 봤던 그 얼굴보다 더 건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애태우고 선망했던 영웅들...
그 빛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가
엘디스 등 탑에 있을 때만 해도
아직도 약점으로 보일 수 있는 정신성을 지녔을 텐데
이제는 마인을 눈앞에 두고 행동 하나 하나
여왕이 되었기에, 더 이상 나약함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였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한 생각이 가슴속에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이것을 앞에두고
이렇게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락없는 흉악한 마를 두고 어찌 겁을 내지 않는 것일까
영웅된 자의 자질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게는 그것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감정을 달래듯, 세 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게 한 번 들이마시고, 호흡을 멈췄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그저 마인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심함도, 한심함도 모두 삼킨채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고 속에서 일찍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생각했다
*
마인님
드래그만은 그런 호칭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태초의 무렵에도, 그런 말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별로 신경 쓰진 않았지만, 아직도 마라는 단어가 존칭이였다니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마수와 마족에게 눈짓을 하면서
그들이 주변에서 획득해온 것들을 가볍게 손에 넣었다
은식기, 금은으로 만들어진 화폐
무엇을 본딴 조각, 순간 반지에 시선을 멈췄지만
그것 모두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다
베르그에 눈짓을 해, 원하는 대로 분배하라고 그렇게 전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금은 세공은 마수나 마족 사이에서도 탐내곤 했다
자신을 가꾸어, 보다 강자임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드래그만은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오히려 잘된 일로 치부했다
살기 위해서만 산다면, 한낱 짐승과 다를 게 없다
금품이든 사리사욕이든 삶 이외의 것을 위해 살기 때문에
인생이란 빛나는 거라고, 드래그만은 믿었다
통제자라고 불림에도 불구하고
욕망도 감정도 강고한 자아조차도, 드래그만에겐 긍정의 대상이였다
온갖 종류의 꼭대기에 서 있는 마라는 존재는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고까지 생각했다
그의 그 너그러움이 마인 이외에 널리 퍼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것은 시간이 좀 더 걸릴듯 합니다
어쨌든 마족에게는 금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말입니다"
베르그가 발굽을 나직이 울리며 말했다
그 말에 드래그만이 미소를 지었다
하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루 빨리 갖고 싶은 것은
주인 제브릴리스로부터 물려받아 인간을 괴롭혔던 마구
이전 시대, 아르티아에게 빼앗겨 버렸던, 자신의 오명 그 자체
과거의 청산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밤낮없이 찾아 헤매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하에게 이걸 강요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마구에는 저주가 내려져있다
시대가 흘러도, 장소가 바뀌어도, 저주는 변질되지 않았다
반드시 최후에는 자기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리하지마라, 베르그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편히 하도록 하라"
베르그는 문득 드래그만의 느슨한 미소를 보고
이런 얼굴도 짓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베르그도 덩달아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통제자님
저희들은 어릴적부터 마인님을 화나게하면 몸이 날아간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발굽도 작게 만들고 다닐 정도죠"
그러면서 베르그는 발굽을 가볍게 튕겨 보았다
드래그만은 그의 농담에 작게 이를 드러내고, 소리내어 웃었다
주위의 마수와 마족들로부터도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신의 상관이라는 자가
어떤 성격인지를 그들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였다
드래그만은 주위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틀림없이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다
인류의 영웅 아르티아의 숨결이 깊은 동시에
정령신 제브릴리스 께서 잠든 이 시대에 말이다
마성의 번영은 이제 먼 과거의 것, 우리는 이미 망국의 백성이구나"
그는 뜨거운 눈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인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되찾으러 가는 것이다
최저의 신분에서 최고의 지위를 얻자
우리들 뒤로 수많은 행복이 따라올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새로 쓸 것이다!"
조용하면서도 드센 목소리
마수도 마족도 그의 연설에 깊게 호응했다
그러다가 한 마족이 인간들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노예가 좋은가, 아님 가축으로 할 것인가
식량으로 할 것인가... 그런 뜻이였다
드래그만은 인간들의 눈을 주의깊게 보더니
"음... 아직 눈이 살아있군
식량으로 돌리는게 좋겠군, 부탁하겠내 베르그"
담담한 말투로, 목숨을 앗아간다는가 하는 의식은 없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고 있다는 그런 말투였다
인간들에게서 오열 같은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자신들의 생명이 마에 쥐어져
그렇게 없어진다는 등,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절규를 지르며 해체되는 인간을 수 없이 바왔기 때문이였다
마족의 손이 인간들의 머리를 향했다
그 순간
빛의 일섬이 마족의 손을 튕겨냈다
흰 머리카락이 막사 안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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