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47화 - 유일한 종족 - 본문
- 유일한 종족
은발이 사르르 무너졌다
카리아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린 은실은
비단결 같은 요염함으로 허공에 흔들렸다
카리아에 밀리듯 루기스는 몸을 뺐다
눈을 부릅뜬 카리아의 시선이 똑바로 루기스의 눈을 태우고 있었다
입술을 가볍게 비죽거리며 카리아가 속삭였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그래, 네가 말한대로 나는 네놈의 방패다, 당연하지
하지만 너는 그 방패에서 어디론가 떨어져 있으려고 하잖아
그러면서 무슨 방패... 아... 이것도 몇 번째 문답이구나
생각해보니, 넌 내가 쫓으면 도망가고, 잡혔다고 생각하면 또 달아나버리지"
루기스의 눈동자가 굳어지면서 움직임을 멈춘 것을
카리아는 가까이서 반갑게 보고 있었다
아마 이 자리를 어떻게 모면할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때뿐, 그의 가슴 속에는 자기 일밖에 없다
오직 나만 보고 있는 거야
그것을 생각하면 황홀한 감정이 카리아를 엄습했다
끝없는 욕망이 가슴에서 토해내어 가냘픈 이성의 테가 빠질 것 같았다
"카리아, 잠깐... 너 대체 뭘..."
"루기스"
그녀는 가슴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뺨을 느슨하게 만들면서 루기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끼웠다
그리고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의 목소리는 듣고 싶은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듣고 나면 언제나처럼 나는 그것에 말려들 것이라고 카리아는 생각했다
카리아는 자신이 의외로 무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래라면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을 나약함이
지금의 칼카리아의 표정에는 배어 있었다
그래서 카리아는 루기스에게 자유로운 말을 주지 않고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을 그냥 물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정중하게
그러면서도 힘차게 루기스의 얼굴을 잡고 있었다
"나는 네놈의 방패, 그래, 하지만 넌 내게 뭐지?"
루기스의 표정에 동요가 보였다
표연한 데가 많은 그에게는 드문 일이였다
말을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두근거림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카리아는 느꼈다
그것은 고양이기도 하고 겁이기도 했다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 이상일까, 아니면 크게 빗나간 무엇일까
카리아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리에서 계속 루기스를 쳐다보았다
만일 이것으로 마치 기대에 어긋나는 말을 듣는다면...
카리아는 눈동자를 미려하게 흔들었다.
그 때는... 거인의 피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어
모든 재화를, 원하는 것을, 탐욕스럽게 빼앗는 것이 거인이라는 것
빼앗아 버리는거야... 얼마나 맛있을까?
그녀의 피가 외쳤다
아니, 그것은 이미 피의 외침도 아무것도 아니며
본래 카리아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단지 강조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지금, 카리아는 억지로 제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약간의 흔들림이나 느슨함으로
자신 속의 불안감이 빠져 나갈 것 같진 않았다
루기스의 미움은 싫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더 싫다
그것이 거짓없는 카리아의 속마음일 것이다
루기스는 몇 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동료이면서, 아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나?"
그 말에 카리아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가늘어졌다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뻤다, 하지만 말이다
그만 감정이 표정에 나타날 것 같은 것을 억누르고
카리아는 루기스의 윤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 편... 루기스
그럼에도 난 아직도 네 옆에 서 있기에 부족한건가?
아니면 아직도 소꿉친구라는 작자를 잊지 못하는 거야?"
알류에노
루기스의 소꿉친구이자, 대성교의 성녀. 그리고 그의 연인
그녀에 대해서 최초로 루기스의 입으로 들은 것도
확실히 이 가루아말리아였다고 카리아는 생각하고 있었다
루기스의 뺨을 움켜쥔 손끝에서 빠른 혈류가 느껴졌다
그것만으로 내 말이 얼마나 연인의 마음을 꿰뚫었는지
아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부글부글, 카리아의 가슴속이 검붉은 진흙으로 물들었다
심지어 그녀에게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오기 까지 했다
"...아, 사람을 금방 잊어버릴 만큼, 매정하진 않아서 말이야"
루기스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카리아는 눈을 치켜떴다
알류에노, 그렇게 불리는 존재가 너무나도 얄미웠기 때문이였다
놈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것만으로
그의 마음을 여기까지 빼앗아 간 것이였다
이제 카리아도 짧지 않은 기간을 함께 보냈고
생명의 위기마저 공유했는데도 루기스의 마음은 다른데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래서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신의 주술 같지 않은가
카리아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가 진동하며 딱딱 울릴 것 같았고
손끝에 뜻밖의 힘이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어슴푸레한 것이 카리아의 마음을 덮어갔다
애정과 모정과 그리고 확실한 적의가
카리아의 가슴을 휘젓고 다녔다
그것은 심장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카리아는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루기스와 알류에노의 관계성에 대해서였다
두 사람은 소꿉친구이고
그 어린 시절의 찬란한 추억 때문에 루기스는 알류에노를 잊지 못한다
그야말로 병아리가 한 번 본 것을 어미새로 단정짓듯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다시 한번 같은 일을 해버리면 좋지 않을까
그야말로 거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의 손을 잡아끌어야지
영광과 모든 것을 그에게 주겠어
카리아는 루기스의 얼굴을 잡은 채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동요한 듯한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리아는 이것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밉살스러운지 뺨을 물결쳤다
그러다 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머릿속에 떠올린 대사를 입 밖으로 흘렸다
"나는 네놈의 방패다
그렇게 동료인 이상 그저 곁에 있을 순 없어
네놈의 속셈이 어떻든 말이야"
그러면서 카리아는 매끄럽게 말을 이어갔다
루기스가 눈동자를 둥글게 말아
속눈썹을 튕겨낸 것이 카리아에게는 보였다
"하지만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면, 조금 양보하도록 하지
물론 너도 대신 하나 양보하도록 하거라"
사실 카리아는 루기스가 다른 행동을 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전력으로서, 동일하게 머무르기보다는
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루기스 다운 말이야
어쨌든 지금 이곳에는 피아라트 라 볼고그라드도
핀 엘디스 그리고 성녀 마티아도 없다
지금까지 루기스가 그 힘을 믿고 의지한 존재는
이제 카리아밖에 없다는 것이였다
카리아의 심장이 짜릿한 저림을 일으켰다
그래, 지금 루기스에겐 자신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다
그리고 갈루아말리아라는 전쟁터는 루기스 혼자에게는 너무나 넓다
그래서 카리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루기스가 다른 행동을 원할 것도
자신이 강요하면 루기스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일도...
그리하여 이쪽이 양보를 한다면...
"알았어, 하나 양보하면, 너도 양보해주는 거지?"
루기스가 분명히 그렇게 대답할 거라고
카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루기스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싫은 여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싫은 여자가 될 수 있어
입술 끝을 깨물고 피를 흘리며 카리아는 입을 열었다
붉은 피가 하얀 피부에 잘 비쳤다
카리아가 이제 루기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자신과 같은 종족이 되는 것
카리아는 스스럼없이 루기스에게 피를 머금었다
그야말로 녹아들듯이...
그러는 와중에 카리아는 마음속으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아, 루기스... 나만이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어...
피에르트도 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카리아는 어쩌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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