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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63화 - 용기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63화 - 용기 -

개성공단 2021. 4. 26. 02:07




볼버트군 천막 안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는 그 어느때보다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찡그린 콧날에 주름을 찡그렸다
전령병은 부장의 그 모습에 움찔했다
그는 무심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도록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전령병들도 에일린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입으로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이였다

모든 것을 듣고 한 박자를 놓은 뒤 에일린이 말했다



"……철수?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린 겁니까!!"




에일린의 예리한 손끝이 아무렇게나 허공을 맴돌았다
말투가 아직 냉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표정과
침착하지 못한 몸짓이 그냐의 속마음을 역력히 드러냈다

결국 이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였다

에일린을 오래전부터 따라다니던 고참병들은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수하고 냉정 침착하지만
이때다 할 때에 마무리가 되지 않게 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으레 그녀는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전령병이 에일린의 시선에
뭔가라도 당한 듯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네? 그... 마도장군 각하의 명령으로..."

"거짓말이겠죠, 당신의 전령은 틀린 겁니다"





에일린은 냉담하게 그 말을 하고, 눈을 빛냈다
그녀 혼자만의 발성으로 천막 안쪽이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천막 밖의 병사들도 그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자연히 목소리는 잦아들고 어느새 주위는 무음이 됐다

전령병은 순간 에일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알 수 없었다

거짓말이고 뭐고
전령병이 말을 받아든 것은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 본인의 것
그는 마도장군 본인의 말투까지 떠올릴 정도였다

장군은 철수하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에일린 부장에게도 그 준비를 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잘못이 없는 진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슬플게도, 전령병의 역할은
에일린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지 설득하는 일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부장인 에일린이 전령의 내용을 잘못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상관인 마스티기오스밖에 없었다



비록 부장이지만 군을 거느리고 전쟁터에 있는 왕
보고를 곧이곧대로 하는 것도 거짓으로 하는 것도
그녀 마음으로 결정되는 것이였다

그렇게 공만 쌓으면
상관의 명을 거스르되 죄는 잃게 마련이니 말이다

에일린의 마음은 이미 오래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공성전을 계속하겠습니다
저도 곧 전쟁터에 참가하도록 하죠
잠깐 휴식 후 재돌격, 이번엔 함락시키도록 합시다"




이제 그녀의 시야에 비치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위를 열기에 감염시켜
주저없이 죽음으로 활보하게 만드는 에일린의 감염 마법
그러나 지금, 마치 에일린 본인조차도 그 열에 쏘인 것처럼
전장에의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건 라키아도르가의 야망을 위해서
그리고 볼버트 왕조의 오랜 숙원을 위해서...

지금 여기서 도시국가군의 중심지인
갈루아말리아를 차지한다면 동방의 세력에 불과했던
볼버트 왕조는 대륙의 패자로 그 몸을 하늘 높이 약진시킬 것이다

부동의 지위를 쌓아 온
갈라이스트 왕국을 물리칠 기회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낸다면 라키아도르의 이름은 불멸의 것이 될 것이다



에일린은 뺨을 기대에 차게 만들며 엷게 웃었다
감염 마법이 내뿜는 열기가 그녀의 사고와 체구를 잠식해 갔다




"자 서진을 계속 하도록 하죠
영광은 이미 얼굴을 드러낸 법이나 마찬가지니까요"





 ◇◆◇◆






수비대장의 비명에 가까운 호통소리
부상당한 병사의 오열
피와 철의 냄새
다가오는 패배라는 문자의 기색

그게 여기, 갈루아말리아 후문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적군의 공격이 잠시 중단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이 귀와 시야로 파고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광경일 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게 헤이스에게는 신기했다

헤이스라고 당연히 다치지 않은 건 아니였다
여러 차례 적병이 성문을 오르려 할 때 받은
옆구리의 상처가 욱신욱신 아팠다

의무관을 볼 틈은 없었다
헤이스보다 중상병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은 곧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였다

헤이스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입안을 깨물었는지 피맛이 났다
혀는 저려서 잘 안 움직이고 말이다




"겁쟁이 소년병"



몇 번째인지 모르는 것을, 고참병인 지즈가 말했다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줄 알았는데
조금 사거리를 벗어나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았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핏방울를 맞으며 기묘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 때문에 헤이스는 순간 그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무서워요, 정말 도망치고 싶을 정도에요"




그런 말이 가볍게 튀어나온 것에 헤이스는 깜짝 놀랐다
인간이란 의외로 일이 잘되면 솔직해지는 습성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적군의 공격이 멈춘 것에 마음이 흐려진 것일까

어쨌든 행군 중 느꼈던 강렬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불가사의한 침착성만이 헤이스에게 있었다

지즈는 순간 눈을 내리깔면서도 헤이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헤이스, 역시 나도 그래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공포와 대면했을 때 결정되는 법이야
눈을 내리 깔지마, 무섭지 않다고 허세를 부리는 거야"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지즈에
헤이스는 절로 웃어 버릴 것만 같았다
지즈가 이렇게도 진지한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까지 헤이스는 알지 못했다

이 죽음의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그런 일면을 볼 수 있었던 것에
원인은 모르지만, 이상한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런 헤이스의 얼굴을 보고 여전히 지즈는 똑바로 눈을 보고 말했다
그 표정도 말투도 역시 진지했다
지즈는 그를 더 이상 소년병이라 부르지 않았다




"두려움을 알고도, 도망치지 않으니 가치가 있는 거야
헤이스, 그것을 사람은 바로 용기라 불러"




이때에 이르러 헤이스는
지즈가 언외에 무언가를 알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 교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즈는 속임수에는 약한 사람이였으니 말이다

그 표정이나 분위기가 여느 때와 확연히 달랐다
경박함은 사라지고 신묘함만 남아 있었다

병사들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면 그것은 곧 죽음...



"지즈씨, 저도 가겠어요"



헤이스의 그것은 당돌한 말이었다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시치미를 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스는 노골적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멀뚱멀뚱 떴다
역시 그는 속임수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니깐

두세 마디로 지즈는 그 자리를 얼버무려 넘기려 했지만
헤이스는 왠지 물러설 마음이 나지 않았다
혈기를 부리는 것도 아닌, 지즈가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딘가 필요한 일일 것이ㄷ

지즈는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비대장에게 이야기를 해놨어
예비대와 함께 성문을 나와 적군에게 역습할거야
저놈들을 봐, 휴식 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진도 치고 말이야, 우리가 나설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적병도, 마법수병도 그 몸을 쉬게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돌격을 감행하면 다소나마 피해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다치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적병이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유혹이겠지

물론 죽음이란 항상 마주보고 있는 것이니
죽는다고 해도, 좋은 돌격이 될 수 있겠지

무서워... 헤이스는 몸을 떨며 숨을 흘렸다
심장이 배 위치까지 내려간 기분이였다

헤이스는 몇 차례 깊게 숨을 쉬고 나서 말했다




"그럼, 가시죠 지즈씨
무섭다고는 해도, 저는 병사니까요"





일그러진 미소를 뺨에 띠고 헤이스는 일어섰다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앉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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