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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69화 - 남북으로 나뉘어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69화 - 남북으로 나뉘어 -

개성공단 2021. 4. 26. 06:15





병자와 위병만을 도시에 남겨두고 재편된 문장교군이
갈루아말리아 성벽 앞에 줄지어 섰다
수는 갈루아말리아의 지원병들을 더해도 대략 3천

수도 장비도 충분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은 언제나 사치
사치를 바랄 수 없는 신분이라면
수중에 있는 지폐로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전쟁도 인생도 그런 것이였다

말의 발걸이에 발을 딛고
내 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어
여기서 기다린다는 건 나쁜 선택이 아냐"




여기서 벌써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되돌릴 수 없다고
그렇게 눈 아래에 있는 레우에게 전했다
하얀 머리카락이 출렁이고 선혈 같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상냥한 듯, 그러면서도 허무한 미소를 레우는 지었다
보석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전혀 인상이 다른 것은 그녀의 성품이자 선량함 때문일 것이다




"아닙니다, 루기스 님
피에르트님이 납치 되셨는데 혼자 기다리는 짓은 못하겠어요"




하얀 입김이 그녀 입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꽤 옷을 껴입혀 준 결과
담요에서 얼굴이 삐져 나온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 추운 것 같았다

보석 아가토스는 톱니바퀴 라브르와 싸운 뒤 잠이 들었다
모아둔 마력이 고갈돼서인지
아니면 레우가 마인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그녀는 단지 연약한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쟁터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유분수지

원래대로라면 레우는 갈루아말리아에 두고 가야 하겠지만




"힘이 되고 싶지 않다는 그런 핑계가 아니에요, 루기스 님"





아무리 설득해도, 완강히 레우는 꺾이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신앙을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그것이 레우의 신앙이고, 전부였다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레우의 신앙에는 전혀 동조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도 바쳐 구한다... 존귀할 지경이야
역사 속의 성인이라도 분명 박수를 쳐줄 걸?

하지만 눈 앞에서 한 소녀가
정말로 그것을 이루려 하고 있을 때
칭찬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인간 따위는 자신을 위해서 살면 돼
자기 혼자만 충분히 만족하고 살 수 있다면 상등하지 않은가
너는 왜 그러지 않는 거지?


하지만 지금의 레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신앙을 정면으로 베어 버릴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산 결과
자신 속에 신앙 밖에 남지 않았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신앙마저 빼앗아 간다면 나중엔 무엇이 남을까

모포를 도롱이벌레처럼 된 레우를 말에 고정시키며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발굽이 옆에서 눈을 차는 것이 보였다




"이게 정말 보석 아가토스라고?"




목소리 쪽을 돌아보니
마안마수 도하스라가 말에 눕듯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짐승이기 때문에 말과의 궁합은 좋을지 몰라도 그 모습은 좀...
이 녀석 의외로 불성실한 성격일지도 모르겠군

도하스라는 커다란 마안을 깜빡이며 쌍각을 들어보았다




"제가 아는 보석이라고 하면
몸뚱이 하나 찌르는 냉혹함으로
자기 혼자 모든게 끝나는 여자였는데 말야"





도하스라는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보며 의아스러운 듯 입술을 열었다
자신이 들은 아가토스의 행동이 아무래도 기억에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 점의 위화감에 관해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예전에 본 보석 아가토스는
결코 누군가에게 관용심을 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모질고
다른 사람을 물건으로만 보는 듯한
마인다운 재해 그 자체

그녀의 변모에는, 무엇이 관련되고 있는 것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레우의 존재 자체일까
도하스라의 말에 쭈뼛쭈뼛하며 레우가 입을 열었다



"…아가토스가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 일어나 있었어?"




잠이 든 것이 아니라 깊이 들어간 것 뿐이었다
오히려 의외로 건강한 것 같았다
걱정해서 손해만 봤군

도하스라가 레우를 통해
아가토스와 옛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무렵
진군 준비가 됐다고 전령병이 날아들었다

문득 고개를 들면 볼버트군의 위용도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도 4만 명 남짓한 수를 가진
일군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은 한마디로 압권이였다

만약 정말로 정면에서 이것과 부딪쳤더라면
나는 오늘 이 날에 있어서 목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든 군세를 이끄는 사나이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가 조용히 말을 몰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아울러 말을 달리게 하자
마스티기오스는 쾌활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젯밤 즐거웠소, 루기스 공
가끔은 어김없이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도 나쁘지 않군"


"아, 나도 말이야, 장군
그런데 정말 뭐가 없었네, 피에르트 얘기 뿐이였어"




마스티기오스는 다시 한번 함박웃음을 짓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중에 어깨를 움츠리고 응했다
정말로 단 한마디의 정치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제 말한대로 이제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볼버트 왕조의 도읍으로 침공할 것이오, 서로 무사하길 빌지"




성벽 도시 갈루아말리아에서 볼바트 왕조의 수도까지는
보통의 군으로 대략 한 달 정도 소요된다
눈 속이라면 좀 더 걸릴지도...?

그 사이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군이 다닐 만한 것은 두 가지

군이 달리도록 만든 대로와 상인들이 마차를 몰기 위한 가도
전자를 볼버트군이, 후자를 우리 문장교군이 달린다는 것이었다

군을 나누는 데는
군의 편성 내용이 달라 행군속도를 맞추기 어렵거나
혹여 마인의 습격을 당했을 때 전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요점은 한 번 죽인 패거리들이 행군하면서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게 급한 대로 모든 것이 유화될 리도 없다
일단 필요한 선택지였기에 고른 것이였다





"가도는 조금 돌아가게 될 것이오
합류지점에는 우리가 먼저 도착하겠지만, 너무 늦지 마시오
우리가 먼저 대마와 마인을 쳐부술지도 모르니까, 루기스 공"




나는 마스티기오스의 말없는 말투에 뺨을 느슨하게 하며 대꾸했다




"상관없어, 미리 술과 음식만 차려준다면 그걸로 됐지"




마스티기오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일린과 하인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군을 이끄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런 험담을 하고 다니리라고는 생각지 않겠지

말이 끝나자 마상에서 마스티기오스가 주먹을 내밀었다
오래된 인사말이었지만, 나도주먹을 마주쳤다
역시 쾌활하게 마스티기오스가 웃었다



"그럼, 수도에서 만납시다, 우리의 내일을 위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가서 보면 죽이고 죽일 뿐인데"




이젠 더 이상 되돌릴 순 없다
마인과 대마의 부류에 견뎌낼 만한 시간은 끝났다
남은 것은 칼날을 치켜들고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앞은 과거의 여정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은 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나도 모르게 눈꺼풀을 감았다
알류에노를, 눈꺼풀 뒤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사할까?
알류에노는 아르티아에게 그녀의 체구를 빼앗기고 영혼은 억압받고 있다
그것은 결코, 그녀의 무사함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초조가 폐 주위를 어루만졌다
빨리, 더 빨리... 알류에노를 되찾아야지
그렇지않으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의미는 없어져버릴거야



예전의 여정에서, 그녀야말로 나의 전부이며. 버팀목이었다
틀림없이 그녀는 나를 구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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