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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3화 - 추락하는 마성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3화 - 추락하는 마성 -

개성공단 2021. 5. 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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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버릴 것 같은 멸망의 맛
브릴리간트는 그것을 혀로 차면서 무너져가는 시야를 느끼고 있었다
지면이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해 가까이 다가왔다

심장은 다시 없어지고 몸은 죽을 때를 알았으며 지금 두 날개는 사라졌다

이제 브릴리간트는 대마로서의 위광을 잃고 오직 썩을 때를 기다릴 뿐
추락할 때가 바로 여기에 와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이것이 최후라는 것인가...



아르티아에게 심장을 빼앗겼을 때조차
느끼지 못했던 상실이 브릴리간트의 체구를 저리게 했다
지금 여기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늘에 사는 용이 대지의 끝까지 정벌하는 신화

브릴리간트의 존재는 바로 그 재현으로
용족은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기다렸다
때로 꺼려하면서도 여전히 이름을 입에 올렸다

우리의 왕, 천성룡 브릴리간트



그리고 지금 베핌스 산에서 그 위용이 무너져 갔다
아니, 거인왕 프리슬라트처럼, 아르티아 전쟁 때
본래 무너져야 할 체구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다만 용 만이 미처 끝을 몰랐을 뿐
그리고 한 남자의 모습을 잡으면서 끝은 왔다

하늘에서 용이 떨어졌다
거구가 베핌스 산의 한 모퉁이를 무너뜨려
그 양 날개에서 사지에 이르기까지를 추락시키고 있었다

이에 신화의 시대는 쓰러졌다




브릴리간트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
두 눈을 그저 움직이기만 할 정도였다

비참했다
겨우 체구를 되찾는가 했더니 이런 꼴일 줄이야
일찍이 하늘의 모든 것을 정복한 위광 같은 것은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인가?
브릴리간트는 감정을 띄우지 않고 하나만을 생각했다

예전 시대에도 자기를 죽이려고 생각하는 녀석은 있었다
아르티아처럼, 거인이나 정령, 톱니바퀴 무리처럼

기왕이면 신화의 시대에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조금은 더 지성 있는 몸으로 만났을 텐데

브릴리간트는 턱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체구 모두가 썩어 가는 중에 하늘을 향한다
이제는 손끝조차 닿지 않는 허공

그리고 용의 포효가 하늘을 울렸다



하늘과 자신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고 브릴리간트는 최후의 포효를 올렸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듯, 세계에 아로새기듯 용은 짖었다

그리고 브릴리간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 체구에 마력은 남지 않았고 심장조차 없었다
더 이상 살아 있을 수는 없었다

단지 최후, 그 시야에
한 남자가 비친 기분이 브릴리간트에게는 들었다





 ◇◆◇◆





괜히 큰 소리 친 것만은 아니였군

보석 아가토스는 희미해져 가는 브릴리간트의 원전에 눈살을 찌푸렸다

브릴리간트는 그 성질상 본래 불사
하지만 그 괴물을 그 남자는 죽여 보였다
이해하자마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아가토스가 느꼈다

처음엔 그냥 미친 놈인줄 알았건만, 의외로 꽤 하는 것 아닌가
지금쯤 그 남자를 칭찬해도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가토스는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마력을 계속 조작하는 피에르트를 향해 말을 걸었다




"됐어, 피에르트, 끝났나 봐 ,놀라울 따름이야
넌 남자를 보는 눈이 괜찮은가 보구나, 콩깍지가 낀 거라 생각했는데 말야
물론 너도 열심히 했어, 그러니까 일단 그 손 좀 멈춰"


"으....응!?"




피에르트는 몽롱한 의식으로 아가토스에 응했다
아주 그렇지는 않지만, 무사한 모습은 아니였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브릴리간트의 몸속에서 오로지 혈관처럼 펼쳐지는
마력을 혼자서 계속 조작하고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때로는 마력을 튕기게 하고, 때로는 마력을 폭주시키는 식으로

심장이 된 피에르트였기에 이룰 수 있는 업적이였다
그녀 덕분에, 브릴리간트의 체구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마력의 움직임을 억지로 멈추거나 앞당기는 셈이니
당연히 피에르트 또한 무사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정신이 타들어갈 정도의 부하가 그 몸에는 걸렸을 것이다
숨을 몰아쉬고 눈동자를 적시는 피에르트에게 아가토스가 말했다





"이제 그만 휴식을 취하고, 수면을 하도록 해
이제 이 세계는 무너져 버릴 거야, 다음에 일어나면 밖이겠지
브릴리간트가 죽은 이상, 원전도 다시 잠자리에 들 거야
그렇다면 이 세계는 없었던 것이 되겠지
자, 피에르트 그만 이제 쉬어"



그것은 기묘하게 힘이 담긴 말이라고 피에르트에게 생각되었다
다만 그녀는 이제 의식을 연결하는 것이 한계였다
말을 하는 것조차 힘을 들이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무사해서.... 아가토스.... 다음에 또...."




그것만을 뽑는 것이 고작이었다
너무나 무거운 눈꺼풀이 감겨
그 자리에 피에르트는 쓰러졌다
지금까지 서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아가토스는 그 몸을 가볍게 가다듬어 주며 눈꺼풀을 쓰다듬었다





"……그래, 나중에 또 봐.... 피에르트"







다시 한 번 아가토스는 숨을 내쉬었다.

피에르트 이것으로 그만이지만
자신에게는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다
피폐해진 몸을 비틀면서 아가토스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지는 어둠에 시선을 기댔다

이 어둠은 공허, 브릴리간트의 원전 그 자체

동시에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찬탈자이기도 했다
이 어둠 속에 스스로 뛰어들면 언젠가는 그 열을 모두 빼앗기고
브릴리간트와 동일화 될 것이다

만약 심장인 피에르트를 찾지 못했다면
아가토스도 머지않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한순간 아가토스는 잠들어 가는 피에르트를 보았다.

그리고 산뜻하게 발길을 돌렸다
시선은 고요한 어둠을 향하고 있었다





"피에르트,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성이야
걱정 따위 할 상대는 아니라고, 무사해서 다행이라니 말야
정말 바보 같군, 어떻게 너란 족속들은 자신보다 남 걱정을 할 수 있지?
나는 죽을 때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거야"



그리고 약간의 보석들만 데리고 아가토스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온몸에서 열이 사라지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라가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아가토스에게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밖에 아가토스에게 없었다

피에르트는 일시적이나마 용의 심장이었지만 자아를 되찾았
그렇다면 브릴리간트와 소멸을 같이 한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빼앗아간 레우는 별도였다
그녀는 그 영혼을 완전히 브릴리간트의 소유하에 두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브리간트가 소멸함과 동시에
그녀의 영혼 또한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것이다

지금밖에 없다
지금이라면, 브릴리간트의 구속력도 약해져 있다
마인일체가 원전으로 들어갈 여지는 있다고 아가토스는 믿었다

공허의 가운데, 곁의 보석이 금이 가 부서졌다
그때마다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아가토스는 느꼈다

아직 갈 길은 먼데 말이다





 ◇◆◇◆





레우는 기침을 하면서, 이상한 영혼의 감촉을 느꼈다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온몸에 독충이 기어다니는 것 같은 섬뜩한 통증만 있었다

아파... 아파... 아파...

내게 몸이 있는지도 더 이상 모르겠지만
있다고 가정하면, 배와 팔이 너무나도 아팠다

이게 아픈 건지 뜨거운 건지 차가운 건지, 그것조차 모르게 되었다

문득 기억조차 모호해지는데도, 레우는 생각했다.



이런 일을 겪을 바였다면, 진작에 죽어야 했을지도 몰라

삶이란 지속적인 고통의 연쇄
살아 있는 이상 반드시 불쾌한 것도 고통도 겪게 마련이다
그러니 한 걸음, 또 한 걸음 필사적으로 계속 발버둥쳐야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이라고 하는 한 순간에
그저 생을 버리는 것이 편하지 않겠는가

남을 위해 살라는 어머니의 저주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있어서 좋았던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 그건 아니야



순간 레우는 멍한 생각 속에서 한 광경을 떠올렸다

지고의 보석
누구에게도 그늘지게 할 수 없고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던 그녀

그녀와 함께 있던 그날 만큼은 즐거웠다
틀림없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며 그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날들도 빛난 것 같았다
그 어떤 삶보다 훨씬 더 말이다

마른 눈물조차 흘러내릴 것 같은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바보야? 죽기 전까지도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낯선 빨간색의 머리를 한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레우는 그것이 아가토스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가졌으니까





"아가 토스...?"




입술이 더듬거리며 그 이름을 불렀다
왜 그녀가 여기 있는지 레우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여기가 어딘지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때? 나 아름답지?
지고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어서 너의 눈에 내 아름다움을 새기도록 해
자, 이런 곳에 언제까지나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지, 어서 일어나"







아, 이 독특한 말투와 장황한 말투는 틀림없이 그녀다
레우는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체구를 세웠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온몸이
지금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오히려 컨디션이 좋을 정도였다

그래서 벌떡 일어섰다
가벼운 발걸음 때문인지 바로 앞에 불빛까지 보였다






"아가토스 어서 가요, 분명 모두가 기다려 줄거에요"





자신 답지 않게 그런 말조차 입술에서 새어나왔고
왜 아가토스의 모습이 보이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가토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안 갈거야, 너 혼자 가"





레우가 어이없는 목소리를 낼 틈도 없이 아가토스는 말을 이었다
무엇이 우스운지 그녀는 볼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여신이 아니야
사람을 구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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