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4화 - 그것은 사랑이라 부르는 것 - 본문
"아가토스... 무엇을 하려는 거야?"
감정을 떨쳐버린 레우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그녀는 보석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있으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그녀
반짝임이 끊이지 않는 진홍빛 머리카락에, 거드름을 숨기지 않는 눈동자
사지의 손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완벽했다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미의 화신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아가토스는 어둠 속에서 그저 서 있었다
곁에 있는데도 그녀는 왠지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마치 앞으로 정말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뭐하는 거야 너? 어서 가! 인간의 짧고 자그마한 생에에 뒤돌아볼 여유가 어딨어?
너희들은 언제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거야
과거에 빠져드는 것은 나 같은 오래 사는 자의 특권이라고"
아가토스가 말을 돌리려는 것은 뻔했다
그것은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레우조차도 알아챌 정도였다
아마도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것은 나 아니면 그녀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여기에 남으려고 하고 있었다
레우의 등을 짓무르는 듯한 오한이 엄습했다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아가토스, 안 돼요! 당신이 여기 있는다면, 저도 여기에 남겠어요!"
그것은 고함인지, 간청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해결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쥐어짜내 말하고 있는 것이였다
애초에 완벽한 그녀가 이런 형편없는 나를 대신한다는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레우의 말 마디마디에서 새어나오는 감정에 아가토스는 순간 눈을 내리깔았다
레우의 절박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아가토스는 고요한 눈처럼 잔잔했다
목소리를 하나하나 가다듬어 타이르듯 아가토스는 말했다
"안 돼, 너만은 살릴 거야
이건 내 마음대로 결정한 거니까, 반항은 용서하지 않아
게다가 말이야 레우, 이건 언젠가 오게 되 있는 일이였어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을 넣는 것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아
조만간 너나 나나 둘 중 하나가 끝나야 했던 것이였어"
"그럼 제가 사라지겠어요, 당신을 위해서...!"
레우, 하고 아가토스는 그 말을 가로챘다
차마 말하지 못하게 굳이 강하게 말한 것 같았다
입을 다문 채 서로의 시선이 얽혔다
여느 때 같으면 이렇게 되면 레우는 물러가겠지만
오늘만큼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헤어지지 않겠다는 것뿐이였다
고집이 센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가토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뺨에는 옅은 미소가 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적어도 마지막엔 자듯이 죽고 싶다고 원했었지?"
하지만 그건 올바른 말이 아니야, 하고 아가토스는 입술을 물결쳤다
그리고 마치 매달리듯 하는 레우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넌 착각하고 있어, 죽고 싶다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거야
너는 계속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야
"아가...토스……"
레우는 자신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유는 분명치 않았다, 지고의 보석이 스스로에게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까
러나 생각하는 바는 하나다
아가토스와 떠나고 싶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을지도...
그러나 당신과 있던 것만으로도 전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레우, 잘 들어"
아가토스의 말에, 순간 레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여기서 들어야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터질 것만 같은 심장과 혈액 소리를 들으며
레우는 아가토스의 입술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네 몸은 네 꺼야, 그러니까 너 한테 다시 돌려주는 것 뿐이야
레우, 내가 너에게 한 가지를 부탁할께, 네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줘"
아가토스는 레우에게 보여주듯 미소를 지었다
눈동자는 빛나고 뺨은 흰색이 두드러지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쾌활한 미소
레우는, 자신 속에 무엇인가가 쏟아진 것을 알았다
뜨거워, 너무 뜨거워...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순간에 이해했다
"부디 행복하게 살아줘"
이것은 아가토스의 원전
마인의 존재 의의
아가토스 그 자체가 자신에게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리고 원전을 잃은 존재는 이제 소멸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 외치고 싶은 말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레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가토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굵은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가토스는 입을 딱 벌리고 말했다
"제발 행복하게 살아줘!
너를 불행하게 했던 기억은 모두 다 잊고 말이야
절대로! 무조건! 행복하게 살아야 해!"
그러면서 아가토스는 레우를 뿌리쳤다
레우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듣고 나면 반드시 망설임을 남길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 애의 울상이었던 시점에서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아가토스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전혀 나 답지 않은 짓을 해버렸군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는 지고한 보석이
누군가에게 몸을 내줄 뿐 아니라 원전도 물려주다니
과거의 내가 보면 눈꼬리를 치켜올려 매도할 것이다
지고의 보석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몸은 더이상 지탱할 수 없을 거야
두 개의 영혼이 계속 들어간 몸은 마인으로서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마모되어 있다레우를 살리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자기 중 일부는
그녀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도 있고
어쩌면 조금은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가토스는 사라져가는 영혼과 자아 속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
다시 한번 자신의 다리로 땅에 내려서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김없이 수긍할 것이다
지고의 보석은 그것만을 바라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아가토스는 생각했다
나는 나 이외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렸다
오직 단명을 사는 그들, 그렇게 몸부림치는 그녀의 아름다움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내 마음대로 한 짓이야
이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언젠가 나 이상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건 시시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사랑을 안 보석은 그 때문에 잃기를 바랬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지극한 방자함이었다
군가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약해지게 하는가
아가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느슨하게 했다
레우는 나를 미워할까, 아니면 매도할까
이렇게 최저로 헤어지는 방식
그것도 억지로 마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반드시 좋게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좋았다
보석이 누군가를 위해 힘쓴다는 건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나의 사랑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결국 그것뿐이다
"그렇지만 그 놈처럼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브릴리간트, 너는 뺏겨서 죽지만,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거거든"
깔깔, 소녀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아가토스는 말했다
자신의 없어져 가는 신체가, 그 시야에 보였다
이제 나는 세상에서 없어진다
그 실감이 치밀어 올라 그녀는 웃었다
"자 브릴리간트, 같이 떠나자
신화의 시대는 끝났어, 우리의 차례는 이제 끝이란 말이야
다음엔 그들의 시대와 세계가 남아 있을 뿐이지
그런 곳에 계속 남으려 하다니, 너무 추악하지 않냐?"
세상은 언제나 거만하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 결과로 잃는 것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였다
하지만 지금 이때 만큼은 조금만 감사해도 될 것 같군
아가토스는 마지막 미소를 흘리며 입술을 물결쳤다.
"잘가, 레우
너는 나보다, 아니... 세상보다 아름다워
그걸 알게 된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야"
사랑을 안 마인은 입을 맞추듯 그렇게 말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최고의 보석은 마지막까지 찬란하게 빛났다.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6장 동방 원정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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