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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6화 - 어려운 전후 처리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6화 - 어려운 전후 처리 -

개성공단 2021. 5. 4. 22:10





볼버트 왕조, 수도 공방전
인류와 마군과의 전역으로부터 2주일이 지났다

대마 브리간트가 눈을 뜨고
독극물 쥬네르바와 톱니바퀴 라브르의 협공으로
한 번쯤 잃어버린 수도는 지금 다시 인류의 수중에 돌아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될 수는 없었다



수도의 대부분은 전역에 의해 파손되어 부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고
많은 귀족 마법사나 관리들이 처형되어
수도는 더 이상 행정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쥬네르바와 킬의 손에 의해 불태워진 마을은
복구되기는커녕 피해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군주는 마성에 의해 처형된 채
어린 공자 자리 계승 의식조차 치르지 않았다

볼버트 왕조는 이제 국가로서의 체면을 지키는 데 급급한 상태였다
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루기스 공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나?"




그런 상황에서도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버릇처럼 그렇게 물었다
그의 눈 밑에는 커다란 다크서클이 만들어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는 상관과 마찬가지로 
다크서클을 역력히 눈 밑에 떠올리며 말했다




"……네...네에... 아직 잠든 채라고
곁을 지키는 기사한테 들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에일린도 순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눈꺼풀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부탁하겠다"




부탁이란 것은 명령이 아니라
마스티기오스의 개인적 청탁이라는 뜻이었다

에일린은 몇 번인지 모르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양피지를 훑어보았다
순간 잉크가 뚝 떨어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이젠 한계였다, 벌써 며칠 째 잠들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본래 있어야 할 행정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였다
어쩌면 마성들은 이를 노리고 처형을 거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본래 군인인 마스티기오스와 에일린까지 정치사에 얽혔다

이럴 때만 해도
전혀 정치에 관한 지식이 없는 하인드가 에일린은 부러웠다




"각하, 계승식 예정일은 현재 상태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원래는 루기스 공이 얼굴을 내밀어 주었으면 하지만
현 상황으로선 어쩔 수 없군, 그가 깨어나길 빌지"




계승식, 마성을 물리쳤음을 선언하고 축하하는 것이며
왕위의 계승도 함께 행하는 것이였다

원래 사악한 용 브릴리간트를 베어 죽인
영웅 또한 그 자리에서 얼굴을 보일 터인데 잠든 채였다면 할 수 없다

시민들은 끝맺기를 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성에 수도가 함락된 그날
권력이 공백지대가 된 그날부터
하나의 단락을 맞은 내일을 바라는 것이였다
그 일정을 늦추면 혼란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니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또 새롭고 찬란한 나날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용을 죽인 영웅을 원하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그 자리에 영웅이 없다면 조금 귀찮은 일이였다

이는 체면 얘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면이였다

루기스라는 영웅은 어느 국가에 속하는 자인가



문장교 영웅이라야 하지만 그래도 국가를 섬겼다는 기록은 없다
가능하다면 혼인관계도 성립시키고 싶었다

뭐 이것은 에일린과 같은, 마스티기오스 파벌의 사람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볼버트 왕조에 속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볼버트에서 대마를 토별한 자였다
그렇다면 볼버트의 구세주로 추앙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에일린은 졸린 눈을 비비며 한 손으로 부하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루기스의 상황을 확인해 보라고 일러 넣었다




"만일 변화가 있었다면
각화와 나... 음... 하인드에게만 연락을 하도록"





 ◇◆◇◆





침대 속, 따뜻한 감촉에 싸여 입술을 일그러뜨럈디
머리맡과 가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지만 담배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할, 어딘가에 버려진 건 아니겠지
깨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니까 나도 얼떨떨했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얼마 동안 마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하니
기억의 혼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조금씩 떠올리긴 했지만 아직도 기억은 불완전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카리아... 생각난게 있는데"


"뭐야, 너 생각나는 것이 더 있는 것이냐?"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를 보는 카리아를 향해 말했다.




"기억이 잘못됬다면 미안하지만... 혹시 네가 나를 속인 것은 아니겠지?"


"흐음…... 아니야, 네 기억이 잘못되었구나, 다시 떠올리거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미간에 손가락을 얹고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 시야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라브르에게 마인으로 취급되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 지독한 꼴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도 나 자신의 일면이라고 하면 그렇겠지만
별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의 하나, 역시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니, 잠깐만 카리아...! 너 언제부터 내 여자로...?"


"아니라고? 네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피에르트"



카리아는 그 예리한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내 입을 다물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 터무니없이 자신감이 넘치고
고상한 행동은 분명 카리아가 맞는데 말이다



나는 카리아와 함께 시선을 침대에 걸터앉은 피아라트로 옮겼다
그 아름다운 검은 머리가 침대에 퍼지며 출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졸린 듯하다가도 하품을 섞어가며 입을 열었다



"어머 루기스, 나하고 한 행동 기억 안나?"





님들 제발...

순간적으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두 눈꺼풀을 강하게 감았다
목이 강렬한 갈증을 호소하며
폐 주변이 짜이는 통증을 느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정말 일을 저질렀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마인으로 전락했던 시절의 기억이 완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니였다
차라리 일부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어

카리아와 피에르트, 엘디스 등에 대한
경의와 동경을 잊어버렸을 것이고
예전의 기억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내가 무엇인가를 저질렀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없는 것이 아닐까?

등줄기에 굵은 식은땀이 더듬어 갔다
내 호흡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뭐가 느낌이 안 좋은데...?




"둘 다 지금 뭐라는 거야? 나의 루기스가 뭘 했다고?"




그런 나의 의식을 붙잡아 둔 것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엘디스의 목소리였다
정확하게는,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어렴풋이나마 환상의 모습으로 내 곁에 나타나 있었다
푸른 눈이 크게 부릅뜨며 카리아와 피에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엘디스가 자력으로
갈라이스트로부터 동방의 볼버트 왕조까지
환영을 날려왔다는 것은 아니였다

내가 목에 걸고 있는 이 것은
엘디스가 스스로 만들어 낸 엘프라는 종족을 나타내는
조각이 들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솔직히 별 뜻은 알지 못했다
전문적인 부분은 피에르트에게만 알려졌으니 말이다



단지 이렇게 멀리서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이 자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뭐 어떤 마법이든 뭐든
갈라이스트 왕도에 있어야 할 엘디스와
원격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편했다




"엘디스, 언제부터 루기스가 네 것이 됬지?"

"그럼 아니란 말이야? 카리아, 너 정말 싫어지려 하내
인간은 정말이지 누군가의 눈을 피해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단 말야
아, 안심해도 돼 루기스, 네가 돌아올 자리는 내가 굳게 지키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지금 당장 돌아와줘도 괜찮아, 오히려 내가 좋지"



엘디스는 늘 그렇듯 늠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지만
눈빛만큼은 기묘할 정도로 험상궂었다

뭐지? 이들이 이렇게 험악한 사이였을까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있었던가?

마인이었던 시절 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물을 혀에 머금었던 시기였다

뭔가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리아 님, 피에르트 님, 계십니까!!"




아마도 방 안에 있는 시종의 목소리였다
카리아가 표정을 찡그린 채 무슨 일이냐고 되물자
그는 순간 겁에 질린 듯하다가도 이내 답해나갔다





"갈라이스트, 문장교 연합군이 지금 수도를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눈꺼풀 뒤로 성녀 마티아와
공주 필로스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뺨을 일그러뜨렸다

도대체 뭣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들은 뭣 때문에... 대체... 엉겁결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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