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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7화 - 역사에 남을 인물평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7화 - 역사에 남을 인물평 -

개성공단 2021. 5. 4. 22:25





"마군을 쫓고 있다면, 우군 아닌가?"


"하지만 우리 사신을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문서 하나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회를 틈탄 침략일 수도 있습니다
방위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부관 에일린의 보고에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는 입술을 굳게 다지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세게 두드렸다

수도에 육박하는 갈라이스트 및 문장교 연합군 2만
국내는 안정되어, 장비도 보급도 충실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숙련도도 높을 것이다.

마군과의 전쟁으로 다할 수 없는
격전을 치른 뒤의 볼버트군에게는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였다
위용을 자랑하던 정예 마법장갑병의 부대는 대부분 와해됐고
마법수병도 대부분 사라진 뒤였다

이제는 군 체면이 안 서고
영토를 건너오는 연합군을 척후하는 시늉만 낼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라고 한다면 그렇다
갈라이스트들이 이를 노리고 있다면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였다

모두가 차분하게 굳어진 얼굴로 입술을 비뚤거리며, 때때로 말을 흘려갔다

이들은 원래가 중직에 있었거나
마군 지배 시절을 살아온 자들
모두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수는 없겠지
약해졌다고는 해도, 갈라이스트는 대륙의 패자
게다가 우리는 더 약해져버렸어"




노파의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듯이 말하는 것은
그녀 나름의 버릇일 것이다
다른 면면도 의견은 다르지 않았다

만약 연합군이 정말로 전쟁을 한다면
선택 가능한 것은 문을 열고 항복이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농성전을 펼친 것이냐
그러나 볼버트에 더 이상 농성을 할 만한 체력은 없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너무 피폐해 있었으니 말이다

마스티기오스는 무거운 공기를 삼키며 말했다




"카리아 공을 사자로 보낼 수 밖에 없겠군요
그녀는 갈라이스트에서도, 문장교에서도 영향력이 있다 들었습니다
전쟁은 안 될 것이고, 적어도 조건이 좋은 화의를 맺어야 겠죠"




타국의 인간에게 의지해야 하다니, 정말 한심하다
그러기에 마스티기오스는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 자리에서 강경책으로 치닫다
결국 전쟁이란 선택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
선군주에 대한 충성을 위해서도 그것만은 할 수 없다
볼버트라는 국가를 멸망시킬 수는 없는 것이였다

그렇다고 마스티기오스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싸운다고 한다면, 그 두 팔을 저어 싸움터로 향하는,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다

이제는 사람끼리 다투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성은 힘을 비축한다
인류와 마성의 전역은 이제 각국에서 시작됐다

런데도 볼바트는 도시국가군에 전쟁의 화살을 돌렸다
그렇다면 타국의 침략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마스티기오스는 순순히 생각해버렸다

지금은 어떻게든 전면 갈등만은 피해야 한다



문득 복도를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시녀와 카리아, 그리고 피에르트의 것...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가볍게, 발끝으로 땅을 차는 것 같은 걸음걸이
들어본 발자국 소리다



"일어난 건가..."




느닷없이 마스티기오스가 대문을 보자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녀가 몇 마디 사양하는 말을 흘리고 문이 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 그는 있었다
방에서 은밀한 술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티기오스, 얼굴이 많이 삭았는데? 어디 아픈가?"





허리에 마검과 백검을 차고
표연히 불성실하게 어깨를 움츠려 보이는 그
전에 보던 몸짓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엉겁결에 마스티기오스는 입술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몇 주 동안 몸져누웠던 그쪽보다는 낫지 않은가, 기다렸소"


"마티아와 필로스 놈이 온 거겠지, 좀 더 잤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그는 선뜻 방의 자리에 앉았다

대마 살해자, 용을 죽인 루기스




그 자리의 누구나가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눈초리가 가늘어졌고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카리아와 피에르트를 양 옆에 둔 모습은 호색가 같기도 했지만

하지만 대마 브릴리간트와 전쟁을 치르고
죽여 보였다는 배경은 그런 실물을 쉽게 덧칠해 버렸다

누구나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말없이 물었다
헤아리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기분 상하지 않을까 참작하는 눈치였다

그런 모습에 마스티기오스는 혼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 들었겠지만 다시 한 번 얘기하겠소
갈라이스트 및 문장교의 연합군이 이 수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저항할 힘도 없고 군주조차 정해져 있지 않는데
만약 싸운다면 파멸 및 항복밖에 없을 것이오"




몇 명이 마스티기오스의 말에 경탄해 눈을 부릅뜬 것을 알았다

루기스도, 카리아도 남의 나라 사람이다
그렇게도 적나라하게 속사정을 털어놓으면
어쩌냐 하는 생각이 다들 마음에 있었다
다만 노파만은 입을 꼭 다물고만 있었다




"루기스 공, 견해를 듣고 싶소
당신이 볼 때, 성녀 마티아와 공주 필로스는 어떤 사람이오?"


"어떤?"




마스티기오스의 말을 받아 한번 루기스가 되뇌었다
그는 턱을 괴고 콧대에 손가락을 대고 입술을 다물었다

누구나 그 말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문득 공기마저도 정적에 안간힘을 쓴 듯 했다

성녀와 공주에 가장 가까웠던 영웅의 인물평
그것은 누구보다 정확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카리아와 피에르트 역시 루기스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루기스는 대답했다




"글쎄… 마티아는 감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래도 훨씬 계산적이고 머리도 좋지
필요하다면 전쟁도 타협도 하는 늑대 같은 여자야
반면 필로스는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군"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스티기오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분방한 루기스가
전혀 모르겠다는 사람이라면, 대체 어떤 사람일까?



"상식적인가 하면 비상식적이고
신념으로 밖에 살 수 없는가 하면, 찌푸려져도 일어서고
뭐... 둘 다 좋은 여자야, 그것만은 틀림없어"




루기스의 그런 말을 듣고 그 자리 사람들은
그와 성녀, 공주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게 됐다

성자, 임금이라고 불리는 자를
여자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이들은 충성이나 경의 또는 적의를 가지고 임하는 상대이지
이성으로서 상대할 존재가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즉 그것은 모시는 관계가 아닌 남녀관계...

루기스와 그녀들은 아마 그런 사이일 것이다

공개할 수 없는 의미는 꼬맹이라도 알 것이다
그 자리의 누구도 입을 다물고, 그 점은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마스티기오스마저도 그랬다





"알겠소... 그럼 루기스 공..."





새삼 마스티기오스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선수를 치며 은발을 빛낸 카리아가 입술을 뗐다




"잠깐만 기다리겠어? 그 뒤의 말은 들을 수 없군, 그는 사자가 되지 못 해"





카리아의 말은 갈라이스트 기사가 들려주는 간결한 말투 그대로였다
단지 요점만을 간추리는 그 목소리는 은빛 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방 전체에 긴장이라는 이름의 진동이 흘렀다
마스티기오스만이 카리아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미를 묻고 싶소, 카리아 공"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장군이라면 아시겠지요"






은과 흑의 시선이 그 자리에서 뒤엉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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