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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75화 - 땅을 통괄한 자와 하늘을 정복한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75화 - 땅을 통괄한 자와 하늘을 정복한 자 -

개성공단 2021. 5. 22. 02:04





창공의 잔을 움켜쥐며 엘디스는 푸른 눈을 활짝 열었다
엘프의 공주이자, 여왕에 걸맞은 발랄한 미소
요정향의 중심지에서 찬란한 미모를 내뿜었다

그런데 무섭게도 눈동자에는 엄청난 주술이 쏟아지고 있었다

요정족에게 축복과 저주는 고유한 것
예로부터 이들은 때로 남을 사랑하고 은총을 주며
때로 남을 난처하게 하는 장난을 하곤 했다
가장 인간에게 친근한 가정요정이나 장난요정들의 류 였다

정령이 어우러져 모종의 변질을 띠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신이라고는 하지만
너 같이 재생을 반복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내"




하지만 이 여왕의 본질은 너무 저주에 치우쳐 있었다

축복이란 바라는 것이요, 저주는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에 특화된 그녀가 인간에게 사랑을 한 것도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이기에 마성이면서도 여기에 서 있는 것이였다




"너는 대지와 연결이 끊겨, 치명상을 입었어
그렇다면 방식은 똑같겠지, 그녀에게도 같은 일을 해버리면 되는 거야
루기스, 뒷일은 믿고 맡기도록 할게"





삼림이 무성하고 강물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세계 속
엘디스는 띄엄띄엄 말을 내뱉었고, 그것은 대화에 가까운 혼잣말이였다

답해야 할 요정왕은 왕도에서 그 몸을 잃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원전과 의지만이였다
그리고 그 잔향이, 이따금 소리를 내듯이 엘디스에게 응했을 뿐이었다




"그가 제브릴리스에 도착할 수 있냐고? 너무 뻔한 질문 아니야?"




요정왕의 목소리에 따라 엘디스는 입술을 치켜올렸다

고양과는 정반대의 냉철함이 그녀에게서 보였다




"그는 말이야, 수없이 역경과 고난을 겪어도
사지로 향하는 사람이야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 카리아도, 피에르트도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느꼈을 거야

 하지만 이제 됐지 않아?
그는 충분히 인간에게 헌신했고, 영웅으로 불릴 만한 업적을 남겼어
대마도 마인도 그가 죽일 의무는 없단 말이야
어디에서 조용히 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가 이룬 공적에 더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필시 사서를 쓸 권리가 어느 세력에게 넘어간다 해도
그의 이름을 완전히 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영웅으로서의 공명이든
대악으로서의 악명이든
이젠 누구도 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역사 속의 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그가 소꿉친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엘디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연정을 공제해도 얻은 것은 막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보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뭐라고 답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이미 여기에 와 버렸는데 말이야
드래그만, 걱정하지마, 루기스는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쾌활하게 말꼬리를 들썩이며
엘디스는 팔을 들어 손바닥을 열었다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주위에는 저주가 가득했다.
이토록 낭비와 탕진을 거듭하는 저주는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드래그만이 모아둔 마력의 모든 것을
엘디스는 자신의 것으로 취급했다
그것은 여왕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였다




"마인도 죽이고, 대마도 죽이고... 그리고 마지막엔 날 사랑하는 거야..."





말을 할 때마다 엘디스의 몸은 계속 요동쳤다
그것 자체가 그녀에게 주문 같았다




"그러니까 이기자, 그는 우리의 영웅이니까"




엘디스는 힘차게 쳐든 손을 부여잡았고
그것은 모든 신호 같았다

요정향이 모습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여왕에게 응하며 그 신호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곳은 신화의 자취를 남기는 이상세계
세계 그 자체가 엘디스 편을 들어 저주를 벌였다

그리고 동시에 몸에 쏟아진 제브렐리스의 마력도 움직였다


신의 구령에 따라 신을 거스르는 자를 살해하기 위한
제브렐리스의 마력은 이 자체가 생물과 가까웠다
그 마력 한 방울 한 방울이 생명
그것이 몸속에 들어온 이상 상대를 죽이는 일도 통제하기도 쉬웠다

그 성질을 잘 아는 요정왕이
동시에 마력을 남기고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면?

엘디스는 단지 드래그만에게서 원전을 물려받은 것만이 아니다
그의 뜻을 여기에 데려온 것이였다
정령신을 완수한다는 약속 때문에...

그래서 제브렐리스의 마력은 미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새로운 요정 여왕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엘디스는 노래하듯이 이 세상의 모든 저주를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






제브렐리스 옥좌가 진동을 느겼다

그리운 마력의 맥동과 흉 그 자체의 주술
그토록 강한 제브렐리스도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난 이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요정왕의 마력 그 자체가
제브릴리스를 받치고 있는 마력을 휘감은 것 같았다

아니, 속박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그래... 당신도 내 적이 되겠다는 건가, 드래그만?"





대지에서 마력을 끌어내는 기적을
그에게 심어준 자는 제브렐리스 자신
기적의 전모는 몰라도 구조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지만 제브렐리스의 동요는 엷었다

그것은 보유한 힘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했고
이 정도 자체가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기도 했다

하긴 일시적으로 마력의 공급은 차단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오히려 제브렐리스 정도의 질량과 마력량을 가진
존재를 장시간 묶어두기란 불가능했다



일단 몇 분...

그동안은 스스로의 마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것이다
외곽을 태우는 샤드랩트의 화구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떤 용이라도 제브렐리스의 거대함을 파괴하는 짓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뿐이다
단순히 검은 액체서 만들어내는 마성으로는 이 저주를 당해낼 수 없다




"자, 어떡하실건가요, 마인 루기스?
나에게 충성을 보여주실 건가요?
아니면, 그대로 무릎을 꿇는 채로 있을 건가요?"





옥좌에 가느다란 몸을 걸터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뻗는 제브렐리스는 발밑에서
자유를 잃은 마인에게 시선을 내렸다
물론 눈꺼풀은 감긴 채였지만 말이다

역시 목소리에 위기감은 없다
오히려 평소와는 다소 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은은한 마음의 탄력을 갖게 되는 정도였다
왕후귀족들이 어릿광대를 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격이였다

그러니까 일말의 연민과 숨길 생각도 없는
오만함으로 자신을 부축하는 마인에게 물었다




"돌아올 답을 알고 있으면서 묻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그럴리가 있겠어?"




그가 숨을 헐떡이며 혼신을 다해 내뱉은 대답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다
루기스의 몸 속은 여전히 제브렐리스의 마력이 날뛰고 있었으니까

몸속에서 자신을 침식당하는 감촉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글과 말로 다하기 힘들 것임은 제브렐리스도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정신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고통이겠지




"어머나, 정말이지 알 수 없단 말이지
나는 지금까지 여러가지를 보았어
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것들을 말이야
마인 루기스, 혹시 알고 있어? 이 세상에 대해서 말이야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도
도리를 뛰어 넘는 일도 말이야, 그게 다 뭔지 알아?
강자를 앞에 둔 약자에게만 생각되는 것이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죽이는 일은 쉽단 말이지
이제 납작 엎드리기 보단,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이 낫겠지?"




제브렐리스의 실감 어린 말에 순간 루기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저 격통에 대한 신음을 보이지 않고 이를 깨무는 소리만 냈다




"아 그래? 하지만 선택은 나에게 있다고"


"그렇구나"




제브렐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허리를 깊이 숙여 다시 앉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불쌍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마성에게도 이러한 존재는 일정하다

이른바 고집을 피운다는 것
승기가 없어도, 의미는 없어도
자신의 긍지를 위해서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하는 것
그것은 곧 발악이란 단어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있어"




오기를 융해시키는 것은 시간과 고통뿐
언젠가 그도 그때 따랐어야 했다고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잠시 신을 거스른 마인을 거느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문득 제브렐리스는 의식을 신전 내부에서 상공으로 돌렸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밖에서 신음하는 구릿빛 용 샤드랩트

먼저 저쪽을 어떻게 해보자

제브렐리스는 막무가내였던 옥좌에서 단숨에 일어섰다



동시에 신으로서의 위엄도, 왕으로서의 군림도
그 모든 것을 웃도는 느낌이 제브렐리스에게 전해졌다
온몸을 기어다니며 심장을 움켜쥐는 농밀한 죽음의 기미

일찍이 한 번, 아르티아 앞에서 느꼈던 것과 동일한 것이였다

제브렐리스는 허공을 날면서 그 정체를 보았다

그녀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
의문과 불가사의한 마음을 눈꺼풀 아래로 떠올렸다

시야 속에서는 용사도 영웅도 아닌
암살자 같은 예리함으로 루기스가 마검을
자기를 향해 치켜들고 있었다





"......"





루기스는 스스로를 창 하나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온몸을 크게 튀기며 마검을 쥔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혼신의 기습은 마검의 칼끝을 제브렐리스의 왼쪽 가슴에 찌르게 했다

역시 그는 운명이나 신들의 선택을 받은 영웅 및 용사는 아니군

정정당당, 정면승부, 기사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갖는 마음이란 그에게는 없었고
그저 있는 것은 오직 필살의 의지뿐이었다




"거짓말이지?"




제브렐리스의 거짓 없는 말이였다
어떻게 그는 서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을 넘어서, 자신에게 어떻게 칼을 꽂을 수 있는가

말도 안 돼

그는 마인, 제브렐리스는 대마
피의 주종 관계가 양자 사이에 있었다
그것은 통각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거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주는 격통은 어디까지나 부수물
상대의 의지를 꺾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 이전에 상위자의 피를 삼킨 자는
그 시점에서 신체의 자유를 잃는 것이였다
마성이란 그런 것일텐데...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모두 이해하려는
제브렐리스는 한순간 사고가 멎었다
그리고 이것을 루기스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이제 신화는 끝났어
너희들도 이젠 그만 나갈 차례란 말이야!
원정해제, 원초의 악"




생물이 처음 저지른 죄, 살해 행위

보라색의 마검이 신들도 죽이는 극광을 번쩍이게 했다
단지 한 번 찔렸을 뿐인데, 자신의 온몸을 파고들게 한
그 느낌을 제브릴리스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검이 아니라, 마를 죽이기 위한 개념 그 자체
이것으로 인해 브릴리간트도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겨우 깨달았다
감은 눈꺼풀 속에서 제브렐리스는 자신의 불명예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맞아. 그는 브릴리간트를 죽였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이미 전임자가 있지 않은가



아르티아가 대마를 죽였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도 대마로 변질됐다
죽은 후에도 그녀는 계속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브릴리간트를 죽여버린
이 남자의 영혼은 더 이상 인간도 마인도 아니다
제브렐리스의 피를 가지고도
아직 완전히 해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 중 하나




"으.... 그래, 이런 인간이 둘이나 태어다나디...
아르티아에, 루기스... 기억하겠어... 반드시...."


"기억할 필요 없어
신에게 이름을 외우는 것 만큼, 성가신 일은 없으니까"





둘 간의 간격은 이제 거의 없었다

피를 몸에서 흘리고 소리를 낼 때
비로소 제브렐리스는 진정으로 자신이
멸망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실감했다

몸의 마디마디 하나하나가 위기감으로 온몸을 덮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마력이 속박되어 있는 마당에
지금은 단 한 방울이라도 피를 흘릴 수는 없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루기스가 꿰뚫은 상처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부여받아도 몸은 건재하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끊어진 땅과의 연결도 되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승기는 다시 이쪽으로 굴러들 것이다
주어진 죽음을 뒤집을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 흔들리지 않았을 승리와
패배의 저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울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좌우, 어느 쪽으로 기울기 위한 치명적인 계기를...

그리고 그것은 유례없는 진동과 함께 왔다

그것을 처음 알아본 자는 제브렐리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당신의 뜻대로일까"




루기스가 깨달은 것은 질문을 받고서였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신전이 모래를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뺨을 일그러뜨렸다



"샤드가 움직이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 봤지"



◇◆◇◆






원초의 악이 행해지기 얼마 전

제브렐리스 외곽에서 구릿빛 용 샤드랩트가 허공을 날뛰고 있었다
그녀의 극대화구는 무시무시해 레우에게는 신의 업보나 다름없었다
왜 저만한 힘을 가지면서 그녀는 아이처럼 행동하는 걸까
그런 생각마저 가슴에 오가는 레우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샤드랩트는 한번 일을 저질렀으면 온 힘을 다하는 성격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허투로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제브렐리스의 외곽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은 압권이였다
신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몸뚱이 하나로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샤드랩트는 무사히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이도록 재촉하고
움직이지 않을 경우에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레우가 말해 준 것이였다

그렇다면 이제 레우의 할 일은 끝났다

그러나 제브렐리스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이대로 좋은 것인가

슬프게도 레우는 마인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그 속은 소녀에 불과했다
전쟁터에서의 임기응변적인 판단 따위는
그녀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혹시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일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자신 탓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는 혼미와, 머리를 싸맬 정도의 고뇌
이마를 만지면, 흘러내리는 땀이 느껴져 왔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였다

샤드랩트가 외곽 일부를 찢으면서 제브렐리스의 움직임은 멈췄다
그리고 지금 이유는 모르지만 재생 능력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역시 보고만 있어도 되는 것일까
레우는 침을 삼켰다




"고민할 게 뭐있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보석이 사는 방법이야
고민한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너는 이유도 모르면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거 잖아
그렇다면 누구보다 먼저 그 녀석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하는 거 아냐?"




레우가 당황했다
그 소리가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몸 안에서 살짝 울리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을 뿐일 수도, 환청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목소리는 옛날처럼 선명하지 않고
단지 잔향과 같은 기색이 있을 뿐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맞아요, 그래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지 레우는 불안했다
이것이 잔향이든 진정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라 해도
그녀에게 꼴사나운 꼴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레우에게 살라고 말해 주었다
행복하라고 그렇게 일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떨던 모습을 어떻게 보이겠는가




"솔직해서 좋네, 그럼 네 손 안에 있는 걸 쓰자
내가 모아논 보석 중에 가장 위대한 거야
사실 취미로 모아놓은 것이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일찍이 보석 아가토스가 쌓아온 반짝이는 보석
그 모든 것이 지금 레우의 수중에 있었다
이것 하나하나가 레우에게 있어서
아가토스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삶의 의미에 가까웠다

어떤 이유가 있든 이것을 아낌없이 써버리는 것은
일말의 죄책감과 슬픔이 뒤따르는 것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박장대소하듯 말했다




"바보야, 난 그런 곳에 있지 않아
나를 있게 하는 것은, 너의 기억 뿐이야
날 설마 잊었다고 말한다면, 용서하지 않을거야"




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치 친구인 것처럼
레우로 하여금 보석을 꾸미게 했다
그것을 해방시키는 것이 지금 이 때 필요하다고 가르치듯이...




"옛날 신화를 가르쳐 줄게
땅을 통괄하는 자는 요정왕 드래그만
그리고 하늘을 정벌하는 것은 지고의 보석인 나야
그렇다면 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갈수록 목소리가 진짜인지 아닌지
환청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를 모를 지경이 되었다

레우는,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지금 이때만은 이것이 진실이기를 바랬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함께 목소리를 맞추며 보석을 해방했다




"보석 아가토스가 있는 한
지상의 자유가 약속되어 있다는 거지"




휘황찬란한, 흰색의 보석이 사출되었다

반짝이는 동시에 회전을 하면서
그것은 안에 봉한 것을 해방시켰다

보석바 아가토스의 일화 중
그녀는 자신이 좋아했던 모든 것을
보석으로 봉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빛나는 것은 물론, 생물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도시였다고까지 말했다

이것도 그 중 하나
신화의 유물이라 불리는 것



일찍이 용이 살고, 공중에 뜬 신비의 덩어리였던 천성도시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낸 지고의 신전은
떠오른 작은 섬으로조차 보일 지경이였다

대지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드는 것은
이제 떠오르지도 못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위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만으로 좋았다

천성도시는 제브렐리스의 거구를 쳐죽이듯
신화의 마지막을 알리는 통곡을 토하며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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