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77화 - 최악의 날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77화 - 최악의 날 -

개성공단 2021. 5. 22. 02:53



무너져가는 제브렐리스 외곽을
마녀 바로누스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더 이상 몸이 아니라 유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재빨리 그녀는 파악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주위의 마수처럼 당황하고 당황하지는 않았다

솟구친 감정은 경악과 망연

저 정령신이 죽어간다... 저 대마가 죽어간다...



자신은 물론
위대했던 최초의 인간왕 메디크조차도
승리할 수 없었던 존재
그것의 죽음이 바로누스의 시야에 비쳐졌다

천년 전과는 상황도 환경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붕괴해 소멸해 가는
제브렐리스의 신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녀의 외곽은 신앙 그 자체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였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제브렐리스의 몸은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그녀가 대륙에 남긴 상흔 이외에 그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루기스..."




피에르트가 상공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림을 바로누스는 들었다
그 인간이 이 일을 해냈다는 것인가

그녀의 볼이 올라갔다
바로누스에게는 오늘 두 번째 미지의 것이였다

마법을 초월한 피에르트
그리고 대마를 죽인 루기스라는 인간

태어나는 욕구는 오직 하나

알고 싶어



누구인가
어떠한 재능을 간직하고 있는가
어떻게 대마를 죽일 수 있었는가

인간왕 메디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바로누스는 문득 눈길을 내렸다
이미지를 제패하고 미지를 계속 추구하는
그녀답지도 않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너희들이 앞으로 천 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좋으련만
아니...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인가?"




마수군을 계속 억누른 카리아도
바로누스를 묶어놓은 피에르트도
그리고 대마 제브렐리스를 죽인 존재도...

아니, 마성 앞에서 겁 없이
기마돌격을 개시해 창을 들고 싸우는 병사도 그렇다

천년전, 인간왕 메디크와 마녀 바로누스의 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강자들
일찍이 많은 인간은 마성에 항거할 힘을 가지지 못했고
메디크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눈앞의 그들은 어떤가?

아르티아의 시대처럼 단 한 사람만이 이상한 게 아니라
누구나 의지를 가지고 서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대륙의 패권을 인류에게 되찾았다




"인간은... 강해졌구나"




감탄과 부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바로누스에게 돌아갈 길은 없었다



"그래요, 다시는 당신들에게 짓밟히지 않을 거에요
다시는 당신들 좋을대로 하게 두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넌 날 죽이지 못하고 있잖아?
우리 서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걸"




피에르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바로누스는 놓치지 않았다

피에르트의 마법은 혁혁한 것
수탈의 마안과 자신이 만든 일곱 개의 덩어리로
바로누스의 마력을 빼앗아 가 버린 것이였다

마력을 잃은 바로누스는 피에르트를 죽일 수 없고,
마안을 행사할 수도 없다
문자 그대로 여기에 묶였다

하지만 피에르트도 마찬가지
그녀는 바로누스를 묶기 위해 모든 마력을 사용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묶여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다르지 않았다

모종의 균형 상태
하지만 그건 이미 깨졌다




"확실히 나로서는 당신을 죽일 수 없겠지
하지만 내 동료들은 나만큼 약하지 않아"




제브렐리스가 죽은 이상 마수군은 시간 없이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이 무리는 제브렐리스를 신으로 추앙하는 광신자들의 무리
신이 잃으면 힘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수군이 전력으로 무너지면
작은 거인 카리아는 반드시 이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라면 바로누스를 죽일 수 있다

그것은 많은 궁지를 함께
통과한 것에서 생기는, 무언의 신뢰와 확신




"그래, 아예 제브릴리스마저 죽여버렸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바로누스가 마력을 잃은 그림자를 다시 펼쳤다

이것은 마법도 술식도 아니였다
다만 탐욕스러운 바로누스의 성질을 반영한 것일 뿐
그러므로 소비하는 마력은 가장 작았다
그렇기에 피에르트의 수탈 앞에서는 만전을 기할 수 없었다




"!?... 당신 무엇을?"


"피에르트"




눈의 하얀색 속에 바로누스의 그림자는
덩그러니 떠오른 검은색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마력이 부족해서
여기서 도망치는 마법도 술식도 피에르트에게 묶여 있었다

그러나 바로누스는 동시에 실감했다
피에르트의 수탈은 백 가지 마력을 한꺼번에 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속도는 느리지만 차츰 그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

그렇다면 극대의 마력을 만들어 버리면
하나의 마법 행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누스는 이 도망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단정했다




"이것은 네가 이겼어, 그리고 난 패배했지
그렇다면 난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잃어야 할 거야"




피에르트의 곤혹스러움을 뒤로 하고
바로누스는 술식을 부리기 시작했다
단 한마디의 영창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건 마법이 아니라 정해진 신호에 불과할테니까



"부서져라, 그리고 사라져라"





순간의 일이었다

바로누스의 죽음을 가져오는 지고의 마안이 그 자리에서 깨졌다
그녀가 원전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백의 시간을 쌓아올려 만든 마의 눈
마력을 계속 집적했던 것

마안의 붕괴와 함께 뿜어져 나온 마력이 급류를 탔다
존재 자체가 비보에 가까운 두 눈은
지금 이때를 갖고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이제 죽음의 마안은 사라졌다




"으...응!?"




피에르트에게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술식사와 마법사에 관계없이, 마를 취급하는 자에게 있어서
스스로 마력을 담아 만들어 낸 마구는
스스로의 분신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단순한 상실과는 다른, 영혼의 상실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그것을 지금, 그녀는 무너뜨렸다
주위를 휘젓는 마력은
피에르트가 순식간에 삼킬 수 있는 양을 넘어섰다

동시에 그림자가 바로누스를 뒤덮었다




"다시 만나자 피에르트
나는 아마도 메디크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


"이런! 어디가, 가지마!"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바로누스는 사라졌다
이제 마력의 잔재조차 여기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원전과 관련된 한 기구, 마안을 잃었다
그 마의 극치를 다시 금방 만들어 내는 짓은 할 수 없다
반신을 잃고서야 겨우 도망친 것이였으니 말이다

피에르트는 바로누스를 끌어들이는 목적을 달성했다
마법사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였다

하지만...




"........으으으...."




피에르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바로누스의 도피를 배웅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간신히 싹튼, 투쟁심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





대마 제브렐리스는 죽고, 마녀 바로누스는 패주했다
이는 인류군에게 확실한 승리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대가도 치렀다

죽음의 마안으로 수많은 군사는 목숨을 잃었고 전선은 붕괴되었다
마수군과의 싸움도 결코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부대 개편을 강요당해 부대장 수도 줄었다

2만 5천은 전병 중 아직 싸울 수 있는 사람은 2만을 밑돌고 있었다
그것도 흠이 없는 사람이 드물 지경
각 부대의 지휘계통은 조각나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붕괴된 제브렐리스에서 귀환한 루기스는 즉석에서 말했다




"곧 군을 재편하겠어
메드라우트 보루에 대한 선행 부대와 본대로 분리할거야
할아범은 지금 6만명의 군세와 맞서고 있어"




당초 목표했던 것처럼
이틀 만에 오륜평야에 도달해
곧바로 제브렐리스를 죽이고 본대째 보루로 되돌아간다는 방안
 바로누스에 진군이 묶인 시점에서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었다
반나절이면 소수의 선행 부대는 보루에 도달할 것이다

리처드라면 선행부대만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루기스에게는 있었다
그 사이에 번 시간으로 본대를 보내겠다는 것



오히려 루기스 본인의 의지로는
만신창이의 몸이든 선행부대가 되어
메드라우트 보루로 스스로 가고 싶었지만
거기에는 만이 넘는 군세가 족쇄였다

제브렐리스와의 전역으로 많은 부대장과 병사
그러다 지휘계통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귀찮게도, 이 군은 볼버트등의 원군을 받아 들인
다수 국가의 혼합군

통괄하고 군세를 빠르게 움직이려면 권위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은 루기스밖에 없었다

또 나중을 생각하면 루기스가
선행 부대를 이끌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메드라우트 보루에서 전령 네이마르가 도착한 것은
때마침 선행 부대를 보낸 것과 딴판이었다

루기스가 온몸에 붕대를 감아 올리고 있는
천막 속으로 무너져 내릴 듯한 기세로 그녀가 왔다




"할아범이 뭐라고 했어? 대충 알 것 같지만..."




치료를 받으며 대면한 루기스를 향해
네이마르는 내뱉듯 말했다
말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고 계속 달려서 그런지
그녀는 시야가 아직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성채는 떨어질 것, 그리고 나를 죽은 것으로 취급하라고"


"뭐, 그렇겠지, 하지만 아직 안 떨어졌겠지?"


"물론입니다, 원수 각하. 가주실 거죠, 당연히?!"



루기스는 붕대를 다 감고 벌떡 일어섰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관절이 비명을 질렀지만
멈추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같은 스승을 두었기 때문일까
루기스와 네이마르 사이에는
좋든 나쁘든 기묘한 허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양쪽 모두 믿고 있았다, 그 스승이 쉽게 성채를 내줄 리 없다
오히려 그렇게 믿는 것이 전제조건 같았다

사실 메드라우트 보루를 잃으면
대성교군의 왕도진군을 막을 곳은 없게 된다
그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도, 칠 수 있을 만큼의
방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였다

군 본체가 재편성과 출진 준비를 겨우 끝낸 것은
선행부대를 배웅한 지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마수군 잔당을 소탕해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래뵈도 상당히 난폭하게 편성한 편이였다




전령이 온 것은 마침 그런 때였다

대천막
인류군과 엘프의 군세의 주요 면면이 모여
마지막 군 회의를 위해서 만나는 도증
전령이 한순간의 주저와 초조를 감정에 실으며 말을 울렸다

대천막의 몇 명은 전령의 표정을 본 시점에서 대충 파악했다




"메드라우트 보루가 함락됐습니다!
리처드 장군은 생사 불명
아마도 불탄 보루와 목숨을 함께 하셨을 것이라고...."




순간 악연한 공기가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아직 보고를 가져온 전령은 한 사람뿐
어쩌면 늑장 보고일 가능성은 있다
전령 모두가 올바른 정보를 갖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의 말에 신빙성을 갖게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전 정보의 시점에서
적군은 6만, 이곳은 삼천
성채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전선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것이다

진작 이 보고가 왔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만한 날짜를 벌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리처드의 수완에 의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그럴... 그럴리가!"




가장 감정을 드러낸 것은 네이마르였다
그녀는 리처드의 모습을 맨 마지막에 목격하고
구원을 요청하러 오릉평야까지 달려왔다
그 구해야 할 상대가 없어졌다는 보고는
그녀로서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여기서 거의 모든 감정을 토해낼 뻔했다

어쩌면 무모하다고 해도 좋을
리처드의 작전을 허락한 루기스에게 욕설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않았던 것은
대천막 속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무거운 말로 이렇게 운을 뗐기 때문이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말해!
나더러 지금 그 말을 믿으란 거야!?"





어느 때보다도 감정을 드러낸 루기스가 거기에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