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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7화 - 재능의 가치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7화 - 재능의 가치 -

개성공단 2021. 6. 12. 03:26

리처드가 검은 검을 치켜들었고
그 그림자가 엘디스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앞으로 있을 일의 암시 같기도 했다
서로 말은 말은 없었고, 시선만 서로 겹치고 있었다

그림자가 흔들렸고

일체의 용서도 주저도 없이 칼은 떨어졌다
엘디스에게는 지금 이를 피할 방도는 없었다
용사는 엘프의 여왕을 능가한 자였기 때문이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죽음 뿐

엘디스는 이를 깨물었다
팔다리를 몸부림치려 해도
환영과 주술을 양립시킨 직후의 몸은
저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니....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던 순간이였다




키잉, 하고 리처드의 검은 검이 궤도를 바꿔
빙글빙글 돌리며 공중을 양단했다
그리고 철과 철이 겹치는 소리가 텅 빈 하늘에서 났다

정상적으로는 보이긴 커녕 무슨 소리가 났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의 눈동자에는 눈 앞의 광경이 보였다

가늘고 얇은, 바늘과 같은 것
그것이 리처드의 급소에 꽂히는 듯한 정밀함으로 날아왔고
여러번 즉석에서 튕겨져 나갔다

바늘을 모두 떨어뜨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리처드는 입을 움직였다




"죽는 것은 현명하지 못해,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잖나?"




그는 발길을 돌려 목을 울렸고
엘디스를 위해 쳐든 검을 내려놓고, 눈 앞의 인간을 응시했다

그 인간은 죽음을 각오한 듯이, 서 있었다




"상관없어, 어짜피 난 현명한 녀석은 아니니 말야"




테두리가 긴 모자를 고쳐 쓴 브루더는 두 발을 땅에 문질렀다
엘디스도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몸은 초조해 보였다
아마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녀라도 리처드의 실력은 알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억지로 누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작은 것은 사냥용으로 쓰는 것이 좋을 거야
재주는 좋군, 하지만 기습했어도 실패했는데
정면으로 맞선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나?"




사실일 것이다
등 뒤에서 내던져도 명중하지 않은 바늘이
리처드의 초반응 앞에 의미를 이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표정에 파란 것을 띄우면서도 바늘을 다시 겨누었다



"뭐든 해봐야 아는거지"


"그래, 현명하지 못한 것 같군"




엘디스도 그랬지만
리처드는 상대의 의지를 중시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대항하고자 한다면, 용서는 없었다

그게 사람이든, 마성이든 말이다

지금 리처드의 검은 칼은 살의가 넘치고 있었다
그는 실력에 차이가 있더라도
온 힘을 다해 사냥감을 사냥할 것이다




"너라면 제대로 살 길은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는 무관하게 사는 것을 택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잘못된 운명을 택해버렸군
그렇다면 죽는 것도 각오한 것이겠지?"


"잘못됐다고?"


"그래, 너에겐 싸우기 위한 재능은 없어
얼이 어떻든, 용기가 어떻든, 재능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그렇다면 너에게 걸맞는 길을 택했어야지"




말하는 동시에 리처드의 검은색이 선을 그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몸에서 열을 내면서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검을 칼집에 넣지 않고
자신의 얼굴 옆에 붙일 수 있도록 검을 세우고 있었다

단번에 너를 죽이겠다고 그렇게 선언하는 듯 보였다

브루더와 엘디스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인간과 엘프, 사고방식도 사상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은 똑같았다

칼날이 내리치는 순간
브루더는 아마 양단되어 버릴 것이다
농밀한 죽음의 기미가 리처드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브루더도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엘디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기서 이 용자를 놓치면
더 비참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였다




"궤변이군, 재능이 있는 자만 살아가라는 건가?"


"그것이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게도 제일일거야"




살의를 멈추지 않은 채 리처드는 말을 받았다
의외로 대화가 싫지는 않은 모양인 것 같았다
아마도 브루더가 의지를 왜곡하기를 끝까지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고
동시에 리처드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건 좀 어처구니없는 우스갯소리 아닌가
눈앞에 서 있는 강자가 누구인지는 그녀가 알 수 없지만

재능이 전부라니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니
그것은 기가 막힐 정도의 오만과
뒷받침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상일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
브루더는 입술을 풀어 흔들었다




"의외로 겁쟁이구나, 너는"




브루더의 말에 리처드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손한 말투에 의외로 경계하는 빛이 잠깐 눈에 선했다

브루더는 바늘을 손가락 끝에 대고
시선을 주위로 돌리며 말했다




"재능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면, 살지 말라니
그런 것을 바로 겁쟁이라고 말하는 거야
인간이란 살아가는 내내 재능도 운명도 여의치 않아
그래도 싸워야 할 때는 언젠가 오게 되는 것이고
그 때, 재능이 없다면 도망가기 십상이겠지"




설령 아버지가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여동생이 증오해야 할 상대에게 빼앗겨도
그래도 재능이 없기 때문에 웅크리고 앉아서
세계의 한쪽 구석에 살고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란 말인가?

만약 나와 그 남자가
재능이 없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면
과연 지금 너는 살아있을 수 있을까?
그에게도 순수한 검술의 재능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여동생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행복인지 아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하지만 난 싸울거야
재주가 없더라도, 신에게 선택되지 않았을지라도
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좋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난 계속 살 거야"




운명에, 신에게, 세상에 선택받는 일이 전부라면
뽑히지 않은 자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선택하는 것은 누구도 아닌 것이다
선택하는 것은 그냥 자기 자신
브루더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택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복수의 바늘을 잡아, 허공에 날게 끔 했다

열기에 휩싸인 듯 리처드 역시 검은 검을 고쳐 쥐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 둘 사이에 있는 것은 전역의 냄새뿐이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브루더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살짝 움직이면서
그 순간 바늘이 튀어나와 리처드의 급소를 향했다
그것도 곧바로 동시에 날리는 것도 아니였다

하나, 둘, 셋, 넷
여러 파도에 갈라져 시간차를 두고
쏟아지는 바늘은 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암살업이라고 해도, 아무런 위화감은 없을 것이다

먼저 날아간 바늘의 그림자를 덮 듯이, 수많은 은이 허공을 스쳐나갔다



반면 리처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늘의 물결이 눈앞에 와도
여전히 경직된 것처럼 손끝은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늘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브루더가 기교를 부린 바늘의 파도를 그는 모두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망설였다
정면과 위, 양방향에서 오는 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런 순간의 망설임에도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결단을 내렸다
리처드는 오른팔을 버리듯이 손등을 잡고 바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만, 여러 개의 바늘이 살짝 갑옷의 틈새를 지나 그의 육신을 먹어갔다


그러나 보다 확실한 위협은 하늘에서 온 것이였다
그는 왼손 하나로 검은 검을 휘두르며 요격하듯 허공을 베었다
저릴 정도의 충격이 손바닥으로 솟구쳐 올라왔고
용사의 눈은 하늘에서 당도한 그 위협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하하하, 이거 재밌군
성녀라고 속이는 그 여자는 재밌는 것을 보내줬어"




리처드는 크게 웃으면서, 흐뭇해 했다
동시에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낯선 갑옷을 입은 여자가
공중에서 뛰어내린 모습으로 리처드 앞에 선 것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빛이 담겨 있었다




"음? 누구냐 너는, 처음보는 얼굴인데"




리처드가 말했다
눈 앞의 갑옷 입은 여자는 뺨을 실룩거리면서 대답했다




"아주 잘도 속였군
그래, 내 온 힘을 너에게 쏟아 주겠어"




마법갑옷을 입은 발레리 브리트니스가
적의와 살의를 온몸에 두른 채, 용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마치 지난 날 미궁도시에서 결투를 신청했던 날을
방불케 하는 용감함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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