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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6화 - 주술의 발 소리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6화 - 주술의 발 소리 -

개성공단 2021. 6. 12. 02:57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성녀와 구릿빛 용이 서로 맞서 싸울 시간

수많은 병사와 용사들이
단 둘이서 만들어지는 전장에
시선을 빼앗겨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구나 그 광경을 응시하는 매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우, 꽤 화려한 걸?
성녀님이란 건 의외로 재밌는 분이시군"




씩씩하게 곤두서는 머리카락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용자 리처드는 이를 갈았다
눈앞에 비치는 것은 바로 신화의 싸움
용자로 하여금 그 광경은 상상 저 멀리 있는 것이였으니

그는 물고 있던 담배를 이빨 위에 굴리며
그저 시선으로만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못 마실 맛있는 술보다
알몸으로 다가가는 미녀보다 더 가치가 있어
영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흑검이 주인의 생각에 호응하며 소리를 냈고
그의 심장은 매 초 마다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왕도 아르셰
그 성벽에서 그는 싸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군, 싫어지네"




리처드의 등뒤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또박또박 울려퍼지는 소리였으니

즐거운 시간을 방해당한 리처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발을 움직였다




"여유롭긴, 쓸데없는 시간엔 할애하진 않아
산다는 것은 유한한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우리 인간은 너희 엘프처럼 느긋한 생활은 싫어
나무나 흙과 함께 말라죽어 가는 인생은 싫단 말이야"




냉담하게, 그러나 싫은 기색이 없는 목소리였다
리처드는 빈정대는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화가 난 엘디스는 푸른 눈을 부릅떴고
그녀의 한숨은 더욱 가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보기엔... 너희들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견딜 수 없어
대체 어떻게 이런 싸움질 같은 것을 좋아하는 거지?"


"잘 짖어대는 군, 엘프
하지만 너무 움직였다간 죽일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리처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발꿈치엔 번개 같은 열량이 몸을 덮고 있었고
그의 안에 깃든 힘은 전성기 그대로,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

반면 엘디스는 참담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발밑엔 피가 떨어지고 있었고
강하게 힘을 준 푸른 눈은 초점이 잘 잡혀 있지 않았으며
치명상은 아니지만, 어깨의 상처 때무넹 아직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엘디스는 성벽 위에서 두 번 리처드와 마주쳤고
그 결과가 바로 이 모양 이 꼴이였다

본래대로라면 피를 많이 잃고
통증과 충격으로 의식을 잃어도 좋을 것이다
설사 의식을 붙잡았다고 해서 싸우기 위한 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것이 통상적인 반응이였다

그러나 엘프의 여왕인
그녀는 깊게 숨을 쉬고 손가락을 움직여나갔다




"응? 그것이 내가 물러설 이유라도 되는 건가?"


"...그렇군, 그런 녀석인가? 그렇다면 내가 잘못했다"




리처드는 한 박자 쉬며, 엘디스에게 답했다
그는 입술에서 물고 있던 담배를 꺼내 다시 칼자루에 손을 댔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단지 마성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경의를 표하는 것이였다

이 엘프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자이다

이 마성은 존엄성을 아는 자이다

이 여자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난 네가 마성이라도 예를 갖추겠다
엘프.... 그리고 여기서 죽여버리도록 하지"




그는 혁혁한 몸짓으로 눈부신 은발이 흩날렸다
눈동자는 독수리 같아서 눈길만으로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거
그의 살에서 뿜어내는 열량이 공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용사라고 불렀다

리처드는 자세를 취햤다
그리고 칼집에 검은 검을 담은 채
두 눈으로 엘디스를 응시했다

리처드는 거친 말투나 분위기와 달리
마치 정밀한 실험을 하는 학자를 연상시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엘디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 번의 전투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기원 주술로 상대했다
그 심장을 저주로 움켜쥐려고 손가락을 벌렸던 것이였다

원래 엘프가 사용하는 저주는 인간 전용의 것
설령 소생한 사망자라 해도 그것이 인간이라면 피할 도리가 없었다
엘프의 저주는 인간에게 천적, 그래서 시전했던 것인데

하지만 그에게는 저주를 내릴 수조차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검을 겨누고 있었던 리처드의 모습이 마치 환영처럼 흔들렸다
엘디스는 놀라 호흡을 할 틈도 없이, 전력으로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시선 속으로 번개가 달려왔고
그것은 한 가닥 선으로 보였다
공중에 그려지는 섬광이 그대로 공중을 갈랐고
그것은 땅바닥에 굴러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리처드가 천둥 및 번개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엘디스가 앞서 있던 공간을 도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초속인 반응과 엄청난 검술이
엘디스의 저주를 통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였다



이것은 기마병인가, 아님 말을 이은 전차인가
폭주한 것처럼 적을 제압하는 압도적인 힘
단지 순수하게, 엘디스가 주술을 펼치는 것보다
한 수 앞선 속도로 자신에게 도달한 것

그는 틈을 결코 내주지 않았고
엘디스가 조금이라도 싸울 기력이 있는 한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두 번째 전투는 그 기동력을 잡아먹기 위해 축복으로 나무를 이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용사는 빠를 뿐만 아니라 능수능란했다
엘디스의 시선과 의도는 읽혀지고
붙잡는 일은 커녕, 찌르지도 못하는 것이였다

리처드는 영락없이 경험과 실력으로 엘디스를 능가했다

이것이, 저 인간의 전성인가 하고
엘디스는 호기심을 높이며 생각했다

눈꺼풀 뒤로 노장군 리처드 모습이 떠올랐다
엘프에게 있어서 수십년이란 세월은 눈깜짝할 수 없는 것
이들은 큰 변화도 없고 성장도 노화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까지 변하는가




"키이이이잉"




뇌광의 검격이, 엘디스의 시야를 스쳤고, 그녀는 입안에서 혀를 찼다
정신을 차리면 펄쩍펄쩍 피가 사방에 튀고 있었다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조차 이젠 알 수 없다
조금만 정신을 팔아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디스도 아무런 승기 없이 도전한 것은 아니였다
다만 잠시 동안만 리처드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거대한 세계에 혼자서 대항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따금씩 약간의 저주로 상대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축복으로 나무를 조종한다 해도, 상대를 죽일 수는 없었고
그저 치명상을 피할 정도의 저항 뿐이였다

당연히 리처드도 엘디스를 향한 계책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언제 쓰느냐...?




두 사람 사이에 세계로부터 갈라진 시간이 있었다

리처드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엘디스는 혈육이 깎여 나갔고
아무리 치명을 피한다고 해도 한계는 이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 목숨을 빼앗는 시간을 몇 초 보냈고
엘디스는 그런 리처드를 잠깐이마나 응시했다




"역시 루기스의 스승인가
마성적인 강인함을 가지고 있군
하지만 인간이라 그런지 싫어지네"




극한의 시간 속에서 리처드는 분명히 그 말을 들었다
고양과 감탄할 정도의 오만이 동거한 음색이였다

그러면서 번개같은 빛으로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 순간...




"제발, 여기서 좀 죽으라고, 나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야"




그것을 듣는 순간 리처드는 눈을 의심했다
당장 자신 앞에 있어야 할 엘디스의 모습이 흔들렸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마치 환영처럼, 그대로 지워지고 말았다

깨달은 것은 그 동시였고
검은 안개가 리처드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기원 주술
주술의 근원으로서, 엘디스의 정수
단지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만으로 기능하는 것

인간이라면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이 저주
그러나 리처드의 초반응이라면, 전개하기도 전에 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반응을 거꾸로 잡을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떠한 것이라도 반응하는 성격이라면
항상 다른 것에 반응하고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환영을 리처드 앞에 섰다가
베어 죽임을 당하는 아슬아슬한 동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반응이 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주술을 펼쳐 잡아먹는 것이 엘디스의 방책

단순한 술사와 달리, 엘디스도 만만치 않았다
환영을 만들어내는 정령술과 사람을 살해할 만한 주술을
두 손에 들고 조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뇌가 증발하는 듯한 사고량 때문에
눈에서는 열이 나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해냈다

이로써 용자는 죽을 것이다

확신이 엘디스의 사고를 지나치는 그 순간이었다

검은 주술 사이로 번개빛이 쏟아져나왔다



그녀의 푸른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조차 할 틈 없이,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핏방울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땅 위를 기어갔고
그것은 숨소리 조차 느낄 수 없는 기척을 지니고 있었다




"이거 당했는 걸? 하지만..."



용사는 검을 하늘로 치켜들며 말했다




"이것만으로 패배한다면, 용사라 부를 수는 없겠지"




리처드는 발꿈치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덜미에는 약간의 검은 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쿵하고 체구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영락없는 환영이 아닌
실제의 엘디스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리처드는 그 무릎을 꿇은 엘디스와 마주 섰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을 찌르듯이 검을 내밀었다




"이름 모를 엘프여, 너는 여기서 죽는다"




검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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