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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3화 - 그림자에 사는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3화 - 그림자에 사는 자 -

개성공단 2021. 6. 7. 01:29


"어차피 쓰러져 시체가 될 바에야 전쟁터가 좋을 것 같잖아?"



송곳니를 삐죽 내밀고
송곳니를 잡아뜯는 모습은 역시 맹수를 방불케 했다
본인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세한 몸짓에도 야생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나름의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기사건 병사건 광기에 미치기 쉬운 직종의 인간은
일정한 의식을 지닌 법이였다

그의 경우는 그것이 야생에서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너의 심정을 알고 말고, 그것은 무인의 이상이겠지
바닥에서 맛보는 편안한 죽음은 역시 싫어
우리는 늘 전쟁터에서 쓰러져야 의미가 있는 거야
전쟁터에서 죽지 않는 마인은 목숨을 아꼈다고 비웃음 당할 테니까"



응한 발레리를 신음하는 듯 맹수처럼 말했다
그녀 또한 짖어대는 것 같았다.




"알고 있으면서, 왜 날 살리는 거지?
설마 나에게 굴욕을 줄 셈인가?"




의아스럽다기보다는 울분을 안은 표정이였다
가르라스 가르간티아가 내민 송곳니 같은 목소리는
기가 약한 자라면 그대로 의식을 잃을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발레리라는 여걸이라면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코를 킁킁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당신은 긍지를 존중하는 남자잖아
하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섬기는 곳이 왕과 성녀라니, 보답을 받을 수 없을텐데"




당연하다는 식으로 발레리는 팔짱을 낀 채 마법 갑옷을 울렸다
깊숙이 창이 꽂힌 몸이 며칠 만에 움직이게 된 것은
그녀의 탈인간 체질 때문일까

발레리의 감시 아래 있는
가르라스가 살았던 곳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두막 안이었다
아마도 헛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창문은 없고 입구는 하나뿐

어두컴컴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 나무 감옥은 
마인을 가둬두기에는 너무나 불안정 했다

유일한 철창인 발레리는 부상 없이 깊은 숨을 몰아쉬며
가르라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뭔 소린지 모르겠군, 날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뭐야?"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네가 나의 주군을 죽이지 않았다는 점
또 한 가지는 네가 봤던 것을 알고 싶다"




물론 그 이외에 전혀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발레리는 말을 꺼냈다




"척후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의 대성교, 아니 구왕국군에 용사가 왔다고"




발레리가 한 박자를 놓고 눈을 부릅떴다
부상당한 몸인데도 분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용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노기가 솟구치는 듯했다
언급조차 하기 싫다며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너는 나보다 성녀에 가까웠겠지
그래서 용사란 누구냐?
대체 누구를 용사라고 하는 것이야?"


"대답할 의무는 없어,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을 거야"




가르라스의 머금은 듯한 말투에 발레리는 눈꼬리를 치켜들었다
역시 변하지 않는 남자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더욱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나 더 물어보지
리처드 퍼밀리스는 사망했는가?"




가르라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오두막 안에서 다리를 다시 꼬며 말했다
살짝 눈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답할 의무는 없어
나도 자세히 아는 게 아니야"




천천히 말해진 것은, 이미 대답에 가까운 말이었다

리처드를 살해한 것은 발레리 본인
하지만 말끝을 흐린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발레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을 말리느라 안간힘을 썼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문 나머지 피맛이 입안까지 퍼져나갔다




"그래? 이제는 사령 마법이라니
질루이 이 놈... 처음에 박살을 냈어야 했는데
가르라스,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여전히 구왕국군에 선다는 것인가?
이 잘못된 상황을 알면서도 말이야!"




어금니를 드러낸 발레리의 물음에
가르라스가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너는 나에게 뭘 기대한 거야?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아
자신이 옳고, 주군이 그르다는 확증은 어디 있어?
나와 너 중에 옳은 쪽이 대체 어디지?
서령 모든 것이 틀렸다고 해도, 주군을 배반할 이유는 되지 않아"




망설이는 기색조차 없이
그렇게 대답한 가르라스를 보고 발레리는 이를 갈았다
그를 설득할 수 없는 일에 조바심을 낸 것은 아니였다

가르라스가 품고 있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란... 아니, 주군을 둔 자란 이런 것이였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군의 생각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발레리라고도 리처드가 죽었을 때의 말이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발레리는 입을 열었다
이제 다른 길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그럼 내기를 한 번 하자
나와 당신하고 말이야"


"호오?"





가르라스는 짐승처럼 이를 갈았다





 ◇◆◇◆





이렇게 정면에서 누군가와 마주 대하는 것은 얼마 만일까.

아니, 그 누구도 아닌, 강자... 압도적 강자

구릿빛 용 샤드랩트는 열기의 호흡을
내뿜으며 흠칫하고 안구를 흔들었다
용의 두 눈에 비치는 것은 이제 오로지 하나 뿐
잡다한 병사, 주위의 풍경, 아군도 적도 아니였다

그 여자만 있어도 그것은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아르티아가 신검을 휘두르는 순간 빛의 거검이 허공을 휘저었다

건들지 마라, 보지 마라, 상관 마라
샤드랩트의 전신이, 그것과의 일체의 접촉을 거절하라고 하고 있었다

샤드랩트가 입에서 뿜어낸 대화구는
광검에 의해 부드러운 비단처럼 갈가리 찢겼다
찰나, 구릿빛의 한쪽 끝이 세로로 갈라지며 선혈을 뿜어냈다
그것은 피할 수도 상쇄할 수도 없었다




"샤드랩트, 네가 내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변심일까?
심지어 브릴리간트의 전성기에 날 따라다녔던 네가..."




용의 청각 때문일까
아니면 아르티아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일까
황금빛 머리카락을 반짝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샤드랍트는 알아들었다




"네가 왕도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게, 당연한 것 아냐?"




아르티아가 왕도에 진입한다면
이제 그녀가 다시 전성을 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땅은 그녀의 신전이고, 마성은 신앙과 원전으로서
신전에 의해 힘을 얻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전성기라면 마성이 다시 구축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샤드랍트는 말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어"




샤드랍트가 으르렁거리듯 내뱉은 말을 아르티아가 양단했다
축 늘어진 신검을 땅에 내려놓은 채
황금빛 눈동자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몹시 일그러진 광경이었다
그곳은 전쟁터, 본래 생사를 걸고 서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땅으로
그 여자만이 죽음으로부터 인연이 없는 곳에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로서 계속 도망쳐 온 네가
그런 불확실한 이유 때문에 움직일 리가 없잖아?
분명 재빨리 도망치는 일을 택할 텐데
나를 업신여기지 말았으면 좋겠어, 샤드랩트"




말과 동시에 아르티아의 칼이 허공을 맴돌았고
거대한 빛이 허공에 빛나, 구릿빛 용의 체구를 파고 들어갔다
강철은 물론 마법마저 뒤집는 용의 비늘이 수없이 피를 뿜어냈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아마도 가감된 것이라고 샤드랩트는 직감했다

역시 가장 귀찮은 것은 이것이다
이 괴물의 눈을 피할 수는 없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상대해야 했다

아르티아의 황금 눈동자에 넋을 쏘이면서
샤드랍트는 겁에 질렸다, 역시 무서워

그가 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이제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늦을 것이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다
도망치지 않겠다면, 한 번 더 맞서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샤드랩트는 마음속으로, 영원에 가까운 순간을 느끼며 방침을 정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이룰까

오랜 세월을 산 용
아니, 최고의 생물의 한 조각으로서
이것을 택했다

구리의 비늘을 집어넣고 신체를 변모시켰다
그리고 그녀와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은 용의 신전이 아니다
마력은 모아져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그 여자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집적된 마력을
비늘 하나하나에 아로새긴 마력을 합체 시켰다

변모가 끝나는 순간 샤드랍트는 하나를 택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는 이것을 죽일 수 있다고,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구릿빛 용의 모습이 하나의 인간형으로 자리 잡았다
거구가 탈바꿈한 탓인지 주위에 모래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모래 알갱이가 빛에 비추면서 하나의 상을 만들었다

순간 소리를 죽이는 속도와 공간을 무너뜨리는 충격이 중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다음 보이는 광경에서는
눈동자에서 황금빛을 뿜어내는 샤드랩트가 빛의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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