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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9화 - 상반된 자들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9화 - 상반된 자들 -

개성공단 2021. 6. 13. 02:58

외벽의 일부를 완전히 잡아먹는 불꽃 폭풍
지옥의 한 조각이 이곳에 현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은 용의 마녀 피에르트, 다른 쪽은 황금의 영웅

그의 두 눈동자가 불꽃 속에서 빛났다
내리칠 수 없는 불길의 폭풍 속에 그는 서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는 지금 불길을 베고, 쓰러뜨리고 있었다

미세한 비처럼 결코 베어 쓰러뜨릴 수 없는 불길
그는 그것조차도 비틀어 엎으려 하고 있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아, 하고 피에르트는 직감했다
그리고 놀랄 만큼 쉽게 납득이 갔다


헤르트 스탠리는 역시 인간이 아니다
어떤 수단이든 간에 그는 인간을 초월한 곳에 있었다
마인인가, 아니면 더 깊은 존재인가

마와 비슷한 것을 모두 베어버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권능
대영웅이라는 그와 싸운다면
승리를 쟁취할 마성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를 감싸고 있는 불길도 결국은 마
자연 발생은 아니였고 그가 마성에 패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록 마법 및 술식의 종류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피에르트가 사고를 돌리는 순간 헤르트는 한 발을 내디뎠다
주위를 뒤덮은 불길이 헤르트를 두려워하듯 피해갔다




"당신은 훌륭해요
여기까지 이뤄가는데 얼마나 많은 길이 있었는지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헤르트의 말이었다
그는 백금검을 휙 옆으로 움직이며
그 자체로 불꽃을 찢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라면 살려 둘 수는 없겠군요
세상의 정의이자 온갖 선을 위해서"




그것은 서약이자 선언이었다

때로는 기사요, 때로는 영웅이요
때로는 용사였던 자의 말은 세계를 뒤흔드는 법이였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도, 햇빛마저 그를 후원하는 듯 했다
모든 것이 그가 사물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사는, 세계는 때때로 주역이라고 불러야 할 자를 낳는다

정령신 제브렐리스, 천성룡 브릴리간트, 거인왕 프리슬란트
인간왕 메디크, 통일 황제 아르티아
시대는 그 자와 함께 톱니바퀴를 돌려,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틀림없이
대영웅 헤르트 스탠리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신령 아르티아와 대마 오우후르의 반상에서
그가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그가 어느 쪽 편을 들 것인지는
아르티아로서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였다

아르티아의 시대가 지배라면 그의 시대는 정의

지금은 그 고비에 불과했다



"나의 이름은 헤르트 스탠리
대성당의 수호자로서, 성녀의 첫 번째 칼날"




황금 머리가 튀어올랐다
피에르트가 수탈의 마안을 가져도
빼앗을 수 없을 만큼의 마력이 그의 백금에 집적되어 갔다

세계의 의지와도 같은 존재가 용의 마녀에게 칼을 겨누었다




"모든 선에 의거하여 정의를 집행하겠습니다"




정의가 포효를 외쳤다
이제 그의 칼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마의 화염을 헤치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우아하기까지 보였다

그는 완벽했고 그는 정의로웠다

그러나 정의라고 주장하는 이상
그는 항상 한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바람이 되받아치며, 한순간의 반짝임이 있었고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린 듯한 빛이 불길 속에서 흔들렸다




"끔찍한 일이군
아 최악이야, 난 분명 너와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그의 적
그것은 즉, 악

마치 거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한 사람이 있었고
불길 속, 황금을 대면하는 초록색이 있었다
그것의 두 눈 색깔은 강하고 격정이 담겨 있었다

헤르트는 발꿈치를 끌며 칼을 걷어찼다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와 네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지의 문답은 무의미할 것이야
어짜피 상관없기도 하고"




슬퍼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그리움을 되새기는 듯한 음색이었다

기묘한 일이였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와 탄식이 동거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보고 있다...
적어도 헤르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가 양손에 마검을 쥐었다
일견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 칼날
그 자체가 날뛰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마가 가득했다

호응하여 헤르트 역시 백금검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는 불꽃보다 마법사보다 그에게 의식을 쏟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이상하게도 그의 이름이 머리에 떠올랐다




"안심하라고, 네가 누구든 확실한 것은 하나니까"





사람을 죽이고, 대마를 죽이고, 정의를 베고,죽인 자
대성교에게 있어 대역자이며
갈라이스트 왕국에 있어서의 배신자
신왕국에 둥지를 틀었고
마의 정점이라고 알려진 그...

대악 루기스가 거기에 서 있었다



신화 혈전
그 서장이라 할 수 있는 이 성벽의 공방
그 와중에 정의와 악이 불길 속에서 칼날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악은 한 마디의 말을 흘렸다
동시에 마검도 진동했다




"오늘 너는 살아 돌아갈 수 없다"





 ◇◆◇◆



 


정의와 악이 서로의 두 눈과 눈을 마주친 시간
대문을 사이에 둔 성벽에서는 천둥과 태풍이 어금니를 드러냈다

용자 리처드 퍼밀리스, 대폭풍 발레리 브리트니스
일찍이 뜻을 같이한 동지이며 목숨을 맡긴 사이
그 두 사람이 지금 서로 살의를 가지고 나란히 서 있었다

후텁지근한 열기를 내뿜으며 발레리가 입술을 열었다




"재능이 있는 자만 재능 있는 곳에서 살으라니
악당이라는 별명과 다르게 용케도 그 말을 내뱉었구나"



마법 갑옷이 찰칵 하고 움직였다
혼신의 마력이 담긴 주먹은 그것 하나로
갑옷 투구조차 분쇄하는 필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앞에 두고, 기죽음 같은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리처드는 검은 검을 흔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너도 나와 동류이지 않나?"


"동류...?"




질식할 것 같은 감정을 북받쳐 올리고 있는
발레리와는 대조적으로 리처드는 표연했다
아마도 그의 취향, 성질은 이러할 것이다
적을 알아보고 그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였다

죽이기에 적합한 자인가, 적합하지 않은 자인가

검은 검이 곧장 발레리를 겨누었다




"넌 강자잖아, 딱 보면 알지
틀림없이 넌 재능이 있어, 무술의 재능이 말이야"




리처드로서는 발레리의 재주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완성된 자세, 호흡의 깊이, 발의 움직임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 날카로움만은 결코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 속은 잘 모르겠지만
실력만큼은 한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적을 칭찬하는 말투
하지만 리처드의 목소리에는 그런 가벼움이 없었다.



"그 만한 재주는 남의 눈을 멀게 하지
너는 그 영역에 이르기까지, 너보다 못한 많은 재능을 보탰을 것이다
마음이 꺾인 사람도 있고, 손을 뻗으려다 죽을 사람도 있을 것이야

    재능이란 다 아닌가? 그럼 뭐... 노력이라는 건가? 의지? 열의?
그럼 너보다 못한 자는 다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박약하고 열의는 조금도 없었다는 것인가?"





리처드의 말은 생전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 사상도 주장도 말투도, 마치 사람이 변한 것 같은 행동이였다
그를 잘 아는 발레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적어도 발레리가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힘찬 어조와
어이없을 정도의 오만함이
그가 용사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단언하지
수많은 노력도, 의지도, 삶을 태우는 열의조차도
엄청난 재능 앞에서는 패배하는 법이야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이다"




발레리는 볼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주먹을 다시 불끈 쥐었다
순간, 그녀의 본능이 하늘을 후려쳤다
그녀는 마술 갑옷을 걸치며 바람같이 리처드 사이로 돌진했다

즉각 주먹이 리처드의 심장을 향해 발사되었다
틀림없이 혈육과 뼈를 도려낼 기세가 있었다
그러나 초인적이라 할 만한 반응이
짧은 시간에 검은 검을 미끄러뜨리게 했다

그대로 리처드의 몸이 튕겨나갔... 아니 그렇게 보였다
발레리의 주먹이 그의 체구를 튕겨낸 것이였다




"하하, 이거이거 엄청나구만"




발레리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즉시 간격을 좁히고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는 신체의 중심을 축으로 손발을 회전시켜
주먹과 다리를 연달아 체구에 퍼부었다

일격일격이 필살이거만
연격이 되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리처드는 검은 검을 능숙하게 휘둘렀지만
폭풍같은 연격에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그 순간 발레리가 주먹에 힘을 쥐었다




"재능이 전부가 아니였기에, 우리가 패배했던 것이다!"




하늘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발레리의 팔이 흔들렸다
이제 마에 가까운 일격이 리처드에게 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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