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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1화 - 당신의 빛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1화 - 당신의 빛은 -

개성공단 2021. 6. 13. 04:00

사도의 칼날이 보석을 뚫었고
소녀 레우의 등줄기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와 하얀 피부를 물들여 갔다

미세한 핏방울은 화려한 꽃잎이 떨어질 무렵을 상상하게 했다
레우의 신체는 그렇게 영락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렇다고 마인이라면 이것만으로 쓰러지는 것은 아니였다
육체가 썩어도 세월이 지나면 깨어나고
육체의 몸뿐이라면 마력으로 부활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서 질루이는 다짐하듯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원전 해제, 영혼의 맹주"




육체가 멸망해도 영혼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을 가둬버리면 된다
질루이의 원전은 이를 위한 감옥
그녀에게 뭔가를 파괴하고 억압할 능력은 없고
다른 사람을 압도할 방법도 없었다지만

영혼을 간파하고 포로로 삼는 것만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권능이였다



"자, 너의 색깔을 한 번 봐보자!"




질루이의 손가락 끝이 레우의 살갗에 살짝 묻었다
피는 흐르지 않고 한순간에 끝나는 의식
다음에는 손가락 끝에 희미하게
그러나 타는 것 같을 정도의 빛이 켜져 있었다

보석 같은 아름다운 색
눈부실 정도의 순정한 반짝임
낮이 아닌 밤이 아닌 노을을 연상케 하는
사랑스러운 빛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군요... 당신은 저와 달랐었군요... 하지만 패배해버렸네요"




체념한 듯, 그러나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질루이가 말했다
감미와 고뇌의 맛이 동시에 혀를 사로잡은 듯 했다

질루이는 반짝이는 보석의 영혼을
손바닥에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까지 확실히 있었어야 할 발밑이
조금 뒤틀려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확신을 갖도록 입을 열어 말했다




"보석의 혼이여, 부디 우리 주님을 위해 힘을 쓰도록 하세요"




아가토스로 하여금
자신보다 아름답다고 말했던
유일한 영혼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레우의 몸이 영혼과 작별을 고하듯 빛을 발했다
질루이는 잠시 눈부신 듯 눈을 감았다

순간 그녀의 세계가 암전됐으니...



"누구야? 감히 누구에게 손찌검을 하는 거야?"




사나운, 그러면서도 이상한 색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성벽 위로 천둥과 폭풍이 서로를 짓눌렀다
숨조차 쉬지 않는 발레리의 연격을 리처드의 흑검이 받아쳤고
그것은 한 번도 아니고, 열 번이나 계속 되었다



"야, 여자"



폭풍 속에서 벼락처럼 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발레리는 팔을 멈추지 않고
회전에 따라 속도를 실어 주먹을 날렸다
그것은 들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쇠가 맞물리는 둔탁한 소리
코끝에는 단내가 남았고, 전쟁터에선 만연한 냄새였다

리처드는 검은 검을 옆으로 들이민 채
끝을 발레리를 향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조금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이 이상 당신과 나 사이에 할 이야기가 있는가?"



간단한 대화 사이에도
죽음을 방불케 하는 일격이 양측 간에 맞물려 갔고
입과 몸은 전혀 별개의 생물 같았다

찌릿찌릿한 몸을 애써 추스르며
엘디스는 몽환적이라 할 만한 광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
방심하면 매혹될 정도의 일전이였으니 말이다

엘디스의 마력소모와 신체 소모는 일단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까와 같은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는 저주는 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엘디스는 푸른 눈을 꺼림칙하게 일그러뜨렸다



리처드와 발레리의 칼싸움은
다른 사람을 파고들 틈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한쪽이 한 발을 내디디면 다른 한쪽이 한 걸음 물러서고
서로의 속셈을 다 아는 듯 두 사람은 주먹과 칼을 주고받았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발레리에 해를 줄 수 있기에
엘디스는 그저 그들을 쳐다보며, 시간만 보낼 뿐이였다

양측의 공방은 얼핏 보면 발레리가 우위
그녀가 팔과 다리를 흔들 때마다
리처드는 튕겨나가듯 처럼 보였고
발레리는 리처드의 칼날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욨다
곁에서 보고 있는 엘디스에게도
당사자인 발레리도 사실을 깨닫고 있는 듯 했다

발레리는 공격을 받고 있고
리처드는 호시탐탐 그녀의 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냥꾼처럼 말이다

순간 발레리와 엘디스는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이러다간 너 혼자 죽고 끝날 거란 말이야"




검은 검이 높은 소리를 내며 마법 갑옷을 튕겨냈다

그 순간... 발레리의 자세가 돌아오는 아주 잠깐 사이에
리처드의 칼날이 갑옷과 손등 사이의 틈새로 미끄러졌다

성대하게 혈액이 튀었다
발레리의 팔이 찢긴 징표였다
곧바로 팔을 끌어당겨 검은 검을 튕겨냈지만
몸에서 흘러내린 피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쓸모없는 잔꾀로는 나를 막을 수 없어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설마 질 줄 알면서도 싸우는 성질인건가?"


"말이 많군, 당신의 잣대로 맘대로 날 측정하진 말라고"




피를 흘리고 있던 발레리는 가볍게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주먹 안에 고였던 것인지 핏덩어리가 땅바닥에 생생히 떨어졌다

만신창이가 되었기에
먹잇감에 불과할 텐데도 발레리의 눈동자만이 죽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삶을 갈망하듯 형형하게 빛나기까지 했다

자세를 잡은 채 발레리는 멋없이 웃었다




"불리하니가 싸우지 않는다... 죽음이 보이니 칼을 내린다
그런 말은 지금이라는 기회를 잃어버린 자의 말이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길은 정해져 있지
다음에 이기면 된다.... 두 번 중에 한 번은 이기면 된다
언젠가 이기는 날이 올 거야... 그런 미루는 생각 뿐

      어느새 기회는 점점 좁아지고, 그 열은 시들어 갈 것이다
그런 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 모두 당신이 가르친 것 아닌가!"






발레리는 말을 내뱉듯 힘차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한 걸음은성벽을 무너뜨리려 할 정도의 압박을 가지고 있었고
팔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힘차게 주먹을 날리게 했다
마치 그 하나의 일격 그녀의 인생이 실려 있는 것 같은 무게가 있었다

흑검이 주먹을 받아들였고
곧이어 리처드가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그가 스스로 중심을 잡은 결과가 아니다
검은 검과 그것을 지탱하는 팔에는 확실한 충격과 저림이 느껴졌다

발레리의 피투성이 주먹이
리처드의 초반응을 가리킨 증거였다

검은 검이 찰칵 소리를 내며 움켜잡혔고
그 표면이, 희미하게 뇌광과 같은 밝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목숨을 거는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잘못된 거겠지"




순간 발레리는 등줄기에 죽음이 달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침을 삼키지 않고, 밖으로 뱉었다

리처드의 짐승 이상으로 사나운 눈동자가 날카로움을 더해갔다
발하는 것은, 이 세상 전부를 죽여 보일 만한 기백과
빛을 되찾은 흑검의 위력




"여자여, 네 이름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들어보자"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리처드는 조금이라도 눈앞에 있는 여자가 죽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차피 죽을 거니까, 이름 정도는 물어 보자는 단순한 질문이였다

리처드가 칼자루를 움켜쥐고 그 힘을 키울 때마다 검은 칼은 빛을 더해갔다
마치 용사에 어울리는 검으로 스스로 변모하는 것과 같았고
그것은 곧 영광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인류의 최고봉
음유시인에 찬양받는 용사의 출발 그대로
전성기의 리처드 퍼밀리스가 뇌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대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 전에 알려줬으니까"




'나의 이름은 발레리 브리트니스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도록 하겠다'




발레리는 무심코 옛 일을 떠올리며 뺨을 찌푸렸다
리처드와의 첫 대면은 아직 열 살 남짓한 나이였다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와버렸군

지금 그날의 결판을 내야 할 것이다





"그런가?"




리처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수평으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눈 한 번을 깜빡이지 않았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발레리는 자연스럽게 칼날을 받아들일 태세였고
흔들리는 일격을 잡아, 꺾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서로간에 호흡이 멈추어
동작이 상실되고 영원히 응축된 한 순간만이 있었다

그 순간





"천둥..."




발레리는 그 모습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뇌광의 모습

할 동작은 두 가지
검을 갑옷으로 끼우고 부러뜨린다
발레리와 마법 갑옷으로 보면
수많은 군사를 상대로 반복해 온 동작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발레리의 몸 위로 섬광이 번쩍이고 지나갔다
마법 갑옷도 이제 쓸모없이 양단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발레리는 뺨을 떨었다
마치 통각을 물어 죽인 미소를 짓듯이 말이다




"이제 끝낼까,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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