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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3화 - 우리는 모두 하늘에 이를 수 없다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3화 - 우리는 모두 하늘에 이를 수 없다 -

개성공단 2021. 6. 21. 12:10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서
천둥과 바람이 그 용맹을 서로 겨루고 있던 시간

대문을 가로지른 성벽 위
불길의 폭풍우 속에 두 사람이 있었다
황금의 대영웅과 죄인인 대악이 마주앉아
서로 칼을 겨누고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세 번째 대치라고 할 수 있을까
함께 서로를 죽이고, 때로 죽으면서도 다시 만난 것이였다

마치 하나의 각본이 그들을 이끌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과정은 얽혀 있었다



헤르트 스탠리가 선명한 두발을 바람에 맡기고
호속으로 백금의 검을 뽑아냈다
자세에서 나타나는 속도와 그 자세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가 완성된 검의 섬광을 지니고 있었다

검의 도리를 아는 자라면 한숨조차 내 쉴 지경
따라잡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고
단지 그 아름다움을 만난 것을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베어 죽이려는
대악은 검의 도리 따윈 알지 못했다

휘황찬란함마저 엿보이는 헤르트의 검에 비해
대악 루기스의 마검은 너무나도 화사했고
보라색의 섬광이 터질 때마다
살이 타는 듯한 마력이 흩날리고 있었다

상징적으로 두 사람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였다




"....!"




양자의 칼이 서로 겹쳐져, 격렬한 전투의 형태를 띠었고
헤르트의 황금 눈동자와 루기스의 흉안이 가까이서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고도 기묘한 기분이 헤르트에게는 있었다

나는 그와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말을 나누거나 싸운 실감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그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던 시절도
대악인이었던 시절의 그도
많은 그의 기억만이 헤르트안에 있었고
마치 여러 인생의 기억을 머리에 쏟아부은 느낌이 있었다

이따금 이런 기억의 혼탁이 헤르트에게는 있었다

알아야 할 사람을 모르고, 모르는 사람을 아는 것...




칼날과 날이 맞물렸고
튀는 불꽃이 서로의 뺨을 갈랐으며
쌍방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검을 고쳐잡았다

왠지 몰라도 호흡까지 겹치는 수준이였다




"한 가지만 괜찮을까요?"




헤르트는 뇌 속의 열에 이끌리듯 말을 꺼냈다

그래, 뜨거워
화염에 안긴 뜨거움이 아니라
몸속에서 배어나오는 열이 있었다
루기스는 검을 겨눈 채 헤르트를 보며, 칼자루를 올렸다




"서로 더 할 말은 없는 줄 아는데"




하지만 루기스는 못마땅한 눈치는 아니였다
시선은 굳건했지만 헤르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저를 아십니까?"




헤르트는 기억의 혼탁함의 정체를 루기스에게 맡겼다
그것이 결코 나쁘지 않은 결단이라고 생각되고 만 것이였다

루기스와 검을 주고받을 때마다
서로 목숨을 주고받을 때마다
헤르트의 기억은 분명한 윤곽을 가지고
세상에 떠오르려 하고 있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그도 자기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루기스에게 물었고

루기스는 순간 해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야 어떻게 알겠어?
중요한 것은 네가 헤르트 스탠리를 자칭하는
틀림없는 나의 적이라는 것 뿐이야
그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그 단어에 강하게 반응한 것은
루기스보다 헤르트 쪽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단어를 입에서 계속 되뇌었다




"나와 당신은 적이군요"


"그래, 너와 나 사이엔 그것밖에 없어"




둘 모두에게 두려울 정도로 당연한 것이였으니

정의와 악, 구왕국과 신왕국, 대성교와 문장교
재주 있는 자와 재주 없는 자, 이런 상반되는 극치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양측의 대립은 필연이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말은 몇 마디 나누지 않았건만
두 사람은 서로 얽히는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할 것이다

헤르트는 백금검을 날렵하게 옆으로 겨누며 사자처럼 높은 눈을 부릅떴다





"알겠습니다, 적이라면 각오를 해야겠죠
당신은 여기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너에게 죽임을 당하는 때는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그래서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망언이나 맹신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말로 루기스는 말했다
하지만 기묘한 힘과 확신이 거기엔 있었고
그래서 헤르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순식간에 정적이 공간에 가득 차올랐다

공기를 활활 태우는 화염조차
두 사람 사이에선 이야기조차 될 수 없었다
소리는 점점 시들어갔고 둘 사이만의 세계가 있었다

한쪽은 신이 만들어낸 신의 영웅

한쪽은 사람이 만들어 낸 인조 영웅



앞으로의 시대를 누가 움켜쥘 것인가
그것을 상징하듯이 두 사람은 날을 세웠다
호흡이 사라지고 피부의 감촉조차 잃어버리는 영원한 순간

두 사람의 세계가 맞물리기 시작했다

백금이 흔들렸고, 보라색이 출렁였다




루기스가 만들어낸 힘은 이제 사람의 영역을 능가하고 마성마저 잡아먹었디
그에겐 생물뿐 아니라 충격이나 공간조차도 살의의 대상
그를 앞에 두고 모든 수비는 의미를 이루지 못했기에
필연코 그는 모든 것을 죽이고 말 것이다

보라색의 칼날이, 머리를 시작으로
헤르트를 양단하기 위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모양세는 크지만 틈이란 틈은 조금도 없었다

그에 비해 헤르트는 허리에 흰 은검을 차고 있었다

이 순간에 이르러 헤르트는 직감했다




역시 나는 그를 알고 있다
그와의 목숨을 오고가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찍이 그는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자신을 죽였던 것일 것이다

루기스가 내미는 검의 궤도가 기억 속과 겹쳐졌다

헤르트는 순식간에 검을 오른손 하나로
바꾸어 쥐고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검은 멈추지 않을 것이겠지만
헤르트의 생명을 참획 할 때까지, 수초의 차이가 날 것이다

그 몇 초를 헤르트가 사고 싶었던 것이였다
두 발로 대지를 짓밟고 등뼈를 축으로 해
백금으로 하여금 원을 그리게 했다
오른손 하나라도 칼을 휘두르면
헤르트는 반드시 적을 베어 쓰러뜨리는 법이였다

이럴 경우 헤르트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기보다
루기스의 목덜미가 먼저 튕겨져 나갈 것이다




찰칵 하고 양측 사이에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루기스가 아주 잠깐 사이에 헤르트의 몸을 걷어차며 뒤로 뛰어간 것이였다

헤르트가 내민 팔 중 일부와
루기스의 억지로 백금을 밀어낸 손끝에서 피를 토해냈다





"역시 루기스 씨로군요"





헤르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의식한 것이 아닌, 그저 당연하게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이길 것입니다"




헤르트의 뺨이 느슨해진 듯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적의인지 아닌지 이미 알 수 없었다
단지 눈동자에까지 옮겨간 열기가 형형하게 빛나
루기스의 모습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깨달은 것이였다, 이것이 적이다
지금까지 단지 베어 쓰러질 뿐이었던 자들은 적이 아니었다
헤르트의 막대한 재주를 앞에 두고 무너져 내리는 존재는 적이 아니었다

자기를 죽이려고
닿지 않을 손가락을 뻗쳐 오는 자야말로 적이다




"그건 무리인데?
너보다는 그 녀석이 더 강했다고
적어도 난 그렇게 믿으니, 너한테는 져줄 수 없어"





루기스는 응하듯 대꾸하고
손바닥에 고인 피를 땅에 뿌린 뒤 다시 마검을 겨누었다
그의 눈은 헤르트를 능가할 정도로 혁혁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제 서로 살의란 없었다
다만 양측의 결말은 좋든 싫든 한쪽이 죽는다는 것뿐이였다

승패의 저울이 이제 그 기울기를 결정하려는 그런 순간




땅이 크게 흔들렸고
하늘을 관통하는 충격음이 났다

헤르트와 루기스, 서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대지의 움직임에 동요한 것은 아니였다
양쪽 모두 이것이 무엇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이였다

이 거대함은, 이 흔들림은, 이 두려움은...



 
틀림없이 신령 아르티아의 것

그것이 지금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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