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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2화 - 조국의 수호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2화 - 조국의 수호자 -

개성공단 2021. 6. 21. 11:27

발레리와의 전투
그것은 리처드가 쏘아붙인 한 번갯불과 다름없었다

검은 검은 공간에 녹아내린 듯
그 모습을 흔들며 액체처럼 출렁였다
밤낮을 잊게 하는 눈부신 빛에 발레리는 넋을 잃기까지 했다
이것을 이제 검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던져지면 그냥 삼켜질 수밖에 없는 것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말려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정도 일 것이다

예로부터 천둥이란 그런 것이였다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천상에서 떨어뜨리는 천벌
정말 아이러니컬하다고 발레리는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마치 그가 신의 무기가 되는 것으로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것 같지 않은가

번개의 섬광을 받는 순간
온몸을 달리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발레리는 이를 떨었다
신체 감각은 희박했고, 의식을 붙잡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마법갑옷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더 이상 기교가 아니다
용자의 권능인가, 마로서의 현현인가
사람을 멀리 벗어난 영역에 리처드... 아니, 용사가 있었다

발레리는 겨우 잘려나가기 직전에 목과 심장만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일격은 치명적이였고
온몸에 뇌격과도 같은 충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피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발에 힘을 주기 어려웠고 얼굴에서 핏기가 갔다
죽음이 지금 바로 자신 앞에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발레리는 엄지손가락에 힘을 쥐고 다시 용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내볼까, 용사?"


"그래, 끝내보자고, 유언은 없겠지?"




발레리의 말에 용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냉철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싸우는 사람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지고한 눈동자

분명 그는 이 눈동자를 가지고 마물을, 군세를
그리고 사람을 베어 왔던 것이다
그건 잘못된 것은 아니였다
그에게 요구된 역할이란 그런 것이였으니까

역시 그는 용사다
용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발레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한 사람도
뜻을 같이 한 사람도, 연정을 품은 사람도 아닌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그를 더 이상 살려둘 수는 없다
분명 이 모습은 그가 젊었을 때보다도 동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용사를 살리는 것은 그대로 그에 대한 모멸이 될 것이다

발레리의 눈에 한 여자가 비쳤고
그 순간, 증오와 혐오가 한순간 지나갔다




"유언...? 길동무라면 나쁘지는 않겠군"




발레리는 마주 앉은 채 마지막 주먹을 휘둘렀다
용사의 옆구리를 후려내기 위한 일격
죽기 직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그녀의 온 힘이 담긴 주먹이 하늘을 갈랐다

하지만...




"싸운다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야
죽을 사람의 임종을 지켜볼 정도로
난 그렇게 온순하지 않아"




발레리의 결사 일격은 너무나 시원시원하게
용자의 검은 칼에 잘려나갔다
겨우 손가락 끝이 몸통을 스쳤을 뿐

당연한 일이었다
앞선 공방에서도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기에
함께 죽임 당할 만큼, 그는 약자가 아니였다

하지만 시간과 의식을 잡아먹을 수는 있었다

그 순간, 검은색이 두 사람의 공간을 휩쓸었다

발레리는 안도한 듯 볼을 느슨하게 풀었다
여전히 온몸에 죽음에 이르는 격통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것은 검은 저주
인간을 잡아먹는 엘프의 주술
설령 용사일지라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

앞서 공방을 벌이는 동안 발레리는 엘프의 여왕과 시선을 나눴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이쪽의 의도를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녀는 총명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엘프의 여왕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발레리가 결코 용사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이대로 살해당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도...

그래서 신호만 생기면 단번에 각오했다
용사와 함께 발레리를 죽일 각오를...




"영원히 안녕이야, 용사
죽은 자는 무덤에서 잠들어 있어야 하잖아?"




이제 발레리의 시야에는 용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일격도, 엘디스의 저주도
확실히 발레리의 목숨을 좀먹고 있었기에
자신의 최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발레리는 메드라우트 보루에서
생전의 리처드 퍼밀리스가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좋을 대로 살아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과연 나는 그의 말대로 살 수 있었을까?
살 수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이였을까?

그건 이제 발레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 메드라우트 보루에서 이곳까지
나는 이 용자와 싸우기 위해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용자가 끝날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상처를 입는다면 반드시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국은 망해버릴 것이다

마침내 시야가 사라졌고
손발의 감각도 거의 없어졌다
살아있다는 감촉이 차례차례 빼앗기는 것을 발레리는 이해했다




"하... 정말이지, 언제나 휘둘리기만 하는 삶이였어
그래도 이번만큼은 당신 마음대로 안 될거야"





발레리는 불쑥 그것만 중얼거리더니 스스로 눈을 감았다

이제 거기엔 삶의 색깔이 없었다
최북단 스쉬프 성채에서 마성으로부터
조국을 지켜온 영웅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






엘디스는 두 손을 흔들어 성벽 한 귀퉁이를 저주로 뒤덮었다
적도 아군도 없이 용사와 발레리를 검은 색으로 도배한 것이였다

기원 주술은 저주의 근원
당연하게 용사와 발레리는 절명할 것이다
비정하다고 욕먹어도 할 수 없다

엘디스는 발레리의 의도를 헤아리는 일을 택했다
게다가, 어쨌든 이대로는 발레리도 엘디스도
용사에게 살해당할 미래밖에 없었으니
합리성으로 말하자면 설령 발레리를
희생시키더라도 용사를 죽였어야 했다

벌어진 손가락을 엘디스가 꽉 움켜쥐었고
그것으로 저주는 끝날 터이며, 이로써 용자는 죽을 것이였다

그러나 그 손가락이 쥐어지지 않는 것에, 엘디스는 경악했다



번개가 시야를 지나갔다
허공을 절단하듯이 빛의 선이 달렸고
천둥 소리가 엘디스의 긴 귀를 때렸다

숨 넘어가는 광경이였다
엘디스의 주술이 흔들리며 다시 찢겨져 갔다
저주가 지워졌다기보다 한순간의 번개에 밀린 듯했다

거기에 있던 것은 두 개의 그림자
땅에 엎드린 발레리와 발버둥치는 용사의 모습




"그 정도의 재주를 가지고, 동귀어진 하기 위한 전술을 택한 건가?
역시 너희들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군"





주술에서 몸을 벗어난 용자는 검은 검을 떨치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체구에는 틀림없이 저주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입가에서 피를 토해내면서도
눈매는 이상하리만큼 날카로운 것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보통이라면, 저주를 머금은 시점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그런데도 살아남은 것은 그의 생명력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한번 죽은 몸이라서 그런 것인 걸까




"난 그녀의 심정을 잘 알아
자신의 고향을 남들이 휩쓸고 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 거야"




엘디스는 다시 용사와 대면했다

여하튼 발레리의 목숨을 희생해
지금 그 용자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였다
주술을 무찌른 일섬을 보면 그 힘은 건재해 보이지만
그래도 결코 무사해 보이는 것은 아니였다

여기서 그를 멈추지 못하면 루기스를 볼 면목이 없다
엘디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게다가 이 용사를 그에게 마딱뜨리게 하는 것도 안좋다고 생각했다




리처드 사망 당시
루기스의 동요를 엘디스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리처드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들으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엘디스가 시선을 강하게 주자 용사는 이를 깨물며 말했다




"흠... 그런가?"




엘디스의 말에 용사는 슬그머니 눈을 부릅뜨고 대답했다
그리고 반론도 없이 간단히 검은 검을 고쳐 쥐었다




"그래서 어떡할거야? 죽을건가, 도망칠건가"





당연하다는 듯 그는 물었다

엘디스는 용사를 보고, 브루더에게 한 번 눈짓을 했다
브루더의 갈색 눈동자가 깜박였다

서로 생각하는 바는 같았다
물러나면 그것으로 모두 끝난다
여기서 죽이거나 살해당하거나 둘밖에 없다

손가락을 세게 쥐며 엘디스가 말했다




"싸우고 말고, 나는 내 조국을 지킬 거니까 말야
나는 가자리아의 핀 엘디스"




엘디스는 원전을 가슴에 담으면서 푸른 눈을 빛냈다
그리고 용사와 마주앉아 입술을 열려던 바로 그 순간이였다

용사, 그리고 엘디스와 브루더
3명의 발밑이 크게 흔들린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지면 자체를 부서뜨리는 듯한 충격이였다


기말고사 끝났습니다

발레리는 전사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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