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4화 - 과거의 군림한 자들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24화 - 과거의 군림한 자들 -

개성공단 2021. 6. 21. 12:56

아르티아의 기색이 등을 꿰뚫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의 위압감
정신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기색
프리슬라트 대신전에서의 때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느낀 것 같았다

샤드랍트는 그녀가 왕도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했다
이곳이야말로 놈의 신전이라고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세게 물었고
마검을 쥔 손끝에 땀이 배었다

젠장할, 누군가의 기색을 살피는 짓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도움이 된 적도 없지만 지금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르티아의 기색이 이제 왕도 안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성이 말했다
바보같은 구왕국군의 군세는 아직도 왕도 밖에서 발이 묶여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본능이 말했다, 적은 곧 거기에 있다

게다가 귀찮은 일은, 그것을 느끼고 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헤르트 스탠리는 황금빛 눈망울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리는 투로 말했다
백금의 검에서 피를 닦아내고, 왼팔을 붉힌 채
놈은 내 시선을 피하면서, 시가지를 들여다보았다





"여기까지라는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루기스 씨
이제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 합니다"




헤르트의 눈동자에서는 싹트던 열이 사라지고 있었고
그는 아쉬운 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뭔가 신기했다
조금 전까지 나에게 보내오던 적대의 의지가
일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였다




"저는 사실 여기서 당신과 끝까지 싸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도 의무에 얽매이는 몸
정의와 선을 위해 주님께 달려가야만 합니다
아쉽군요, 이제 다시 당신과 만날 일은 없겠지요"




헤르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놈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말투로
그래서 굳이 들려주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주님이 강림하실겁니다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야단났군"





나는 마검의 자세를 풀지 않은 채 고충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한숨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눈시울이 떨리며, 이제야 그 신령같은 것에 대한
살의가 심장을 비틀게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신이라는 놈...
이 남자에게 헤르트의 말투까지 취하게 할 줄이야





"헤르트 스탠리
이 대재앙을 일으켜 여기로 쳐들어온 너희가
대체 무엇을 지키겠다는 거야?
말해봐, 이 영웅아"


"나라와 국민, 정의와 질서 입니다
모든 것은 올바른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죠
제가 틀린 건가요, 루기스 씨?"



 
젠장할, 헤르트도 비슷한 말을 할지 모르겠군
그야말로 옛날 여행길 때의 녀석이라면
정의와 선의를 전부로 여겼던 녀석이라면
정말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와서 재차 알았다
헤르트=스탠리는 정의와 선의뿐인 인간 등이 아니다
놈은 정의롭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더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이였다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하지마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의 이치겠지만
신이라면 희생없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지 못한다면,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자 아닌가?"




무에서 유를 낳지 못하고
유를 유로만 바꿀 수 있는 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저것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많은 인간을 착각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발로 땅을 걷어찼고
일직선으로 도약하면서 마검에 공중을 덧그렸다

그러나 놈의 칼에서는 더 이상 전의를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뒷걸음 쳐, 물러나면서
나와 피에르트의 거리를 크게 잡았다





"만약 그렇다면..."




헤르트는 입을 열었고, 이제 사이는 멀어졌다
놈이 있는 힘을 다해 전투를 피하려 한다면
나는 끝까지 쫓아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나길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황금은 불길 속으로 사라지듯 녹아내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






"시간이 좀 걸렸군"




왕도의 지하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는 자신의 한걸음 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이였다

냄새, 얼마나 그리운 것인가, 둘도 없는 고향의 향기
인간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지저분함을
인간미 넘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만인 것일까?

수백 년 전, 아직도 대지가 마성이 군림하는 세계였던 시절에도
이곳에 도시는 있었다

아니 도시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인간의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였다

인간은 언제나 빼앗기고 짓밟히고
때로는 먹히는 마성의 가축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


그곳에서 아르티아가 태어났다
이제는 멀리, 희미한 경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길러 준 인간의 얼굴도, 친구였던 사람의 이름도...

확실한 것은 이 도시에서 시작됐다는 것 정도

아르티아와 오우후르의 여행길
인간이 마성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틀림없이 여기에서 시작됐다




"웅크리지 말고, 고개를 들어!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있어야 마땅한 법이야
하지만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숨쉬고 있으니
너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거야, 아르티아!!"




그의 말이 생각났다

삶보다 더 선명하게, 삶의 보람보다 열렬히 영혼에 아로새겨진 그의 빛
광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너무 눈부셔서 사람의 눈을 태울 뻔했던
그 빛은 누구보다 아르티아의 영혼을 태웠었다





"자 인류를 구하러 가보자!
보여주는 거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에
너라는 존재가 있음을..."




생각하면 그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야말로 아르티아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그는 가축에 불과했던 아르티아를 인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사상을 아르티아에게 가르쳤다




"나, 여기까지 왔어, 오우후르
네 말대로 포기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어"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에 감정은 없었다
지하를 비추는 빛은 없고
그녀의 황금만이 약간의 빛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녀의 목소리와 발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일찍이 그녀를 보호하고 지지하며
함께 있던 전우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왜 너는 내 방해를 한 거야?
왜 너는 나를... 죽였지?"




그 날을 시점으로
아르티아의 머리속은 부서져, 무너지고 말았다
몇 번을 물어도, 몇 번 대답을 물어도, 아르티아는 생각해낼 수 없었다

지금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오우후르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그가 한 일은 아르티아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인간왕 메디크가 의지를 되찾은 것도
일부 인간이 배신한 것도 그의 영향
어쩌면 그것을 위한 잔꾀는 부렸는지 모르지만

오우후르는 왕도신전 아르셰의 주도권을
아르티아로부터 빼앗은 것이였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아르티아에게 있어서의 시작이자
그녀에게 있어서의 신전이지만
그것은 오우후루도 말할 수 있는 것
문장교가 왕도를 탈환한 이상
그의 지배하에 두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아르티아는 의아한 나머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것은 어짜피 얼마 안 되는 시간일 뿐

진정한 옥좌를 가진 아르티아가 군림한다면
주도권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수중에 돌아올 것이다

오우후르치고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그 남자를 믿어 버린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것으로 이제 정해진 역사를 막을 순 없을 것이고
오우후르에는 역사를 반전시킬 힘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미소가 아르티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이것으로 끝이다
왕도의 지하에서 아르티아는 손을 흔들었다
지상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 샤드랩트도 오우후르도
아르티아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은 모두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였고
아르티아의 길을 가로막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결실을 본 것도 있었다

아르티아의 몸이 햇빛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시의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르티아의 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연 발생에 따른 것도 아닐 것이다
도시의 지면이 그렇게 연약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부순 자가 있을 것이다





"초월 호기, 거인 살해"

창 하나가 아르티아의 가슴을 관통했다
비록 기습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르티아의 체구를
손상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던가

충격이 땅과 공중을 포효했다
아르티아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햇빛 아래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렇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르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옷차림의 갑옷이 부서지며 한숨이 쏟아졌다




"나의 적이 되겠다는 건가?
인간의 왕... 아니, 가축의 왕이여"


"경악할 일이다, 설마 네가 마의 냄새를 풍길 줄이야"




인간왕 메디크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아르티아 앞에서도 여전히 위풍당당하면서
비예마저 하는 눈빛은 왕다운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이 인간 세계에 군림했던 두 왕이 여기에 있었다




"당신이 만들어 낸 세상은 꽤 살기 좋았어
인류를 마성의 가축으로 만든 왕 메디크
인류를 위해 살 수 없다면, 이번에야말로 당신은 죽을거야"


"...그런가, 변명은 하지 않겠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니까"



메디크는 잠시 시선을 서글프게 흔들더니 창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다하고 죽겠다
왕의 책임은 그것뿐이니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