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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31화 - 애정 - 본문
갈라이스트 왕국 궁전 안쪽에서
벽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외벽 일부가 오우후르의 일격에 무너졌을 뿐이었지만
내부에서는 그 충격음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들렸다
여왕 필로스가 반응을 안 할 리 없었다
그녀는 옥좌 사이에 여러 문관을 거느리며 눈을 부릅떴다
현재 왕도는 북쪽
그리고 서쪽과 동쪽의 구왕국군의 세력에 포위되고 있었기에
궁궐이 언제 적의 공격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디
귀족의 우두머리 비오몽도르는 여러 귀족의 군대와 함께
문 앞에서 구왕국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궁궐 수호는 위병들의 임무이지만
필로스는 순순히 지켜지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였다
일찍이 소도시의 영주이면서도
스스로 선두에 서서 군을 이끌었던 그녀였다
겁에 질려 움츠리기만 하는 권력자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였다
그런 인간이라면 설령 추켜세워진다고 해도
여왕이라는 지위를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가자
둘러싸인 채, 성 안에서 목을 베어지느니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이 낫지 않겠어?
승기가 있다면 이것밖에 없을거야"
필로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역시 그녀는 귀족 혈통이었다
비장함도 없이 상황을 숙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항거해 보이고 있었으니
재능이라든가 성격이라는 말로는 묶기 힘든 영역이였다
왕과 귀족이라는 자들이 혈통과 함께 남기려 했던 것이 이 충동이었다면
필로스에게는 분명 그것이 깃들어 있었다
"자...잠깐 여왕, 군세는 아직 왕도에 침입하지 않았어요
그저 몇몇이 돌출부를 만들었을 뿐 입니다"
레우에 의해 재빨리 들어온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는 왕도 내의 지도를 곁에 두면서 필로스에게 답했다
그녀의 표정에도 우려는 있었지만 초조나 공포의 빛은 없었다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도 보이는 빛의 기둥이
거리를 바꾸어 가면서, 분명 이상 사태를 알리고 있다
그래도 마티아는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항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을 헛디딜 수는 없다
호위병을 제대로 관리하면서, 무슨 수를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언젠가 적이 당도하긴 할 텐데?"
"아니, 이 냄새로 보아하니 누군지 알겠군
아무래도 적의 수괴가 직접 온 것 같아"
여왕과 성녀
그리고 얼마간의 문관들이 옥좌 주위에 모여든 가운데
은발의 거인은 대검을 허리에 찬 채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의 정신은 원래의 온화한 강인함을 되찾고 있었다
더 이상 연약하거나 의지를 잃은 기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실 마티아는 한숨을 내뱉을 뻔 했다
그녀의 행동에, 이렇게 정신의 동요가 있는 것은 곤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마티아는 문장교 성녀로서의 타산을 구사하며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아르티우스의 화신이란 거군요
혹시 군사가 필요하겠나요?"
"필요 없어, 괜히 병사를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당신들은 만약 적이 여기에 비집고 들어온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철수하도록 해"
"네, 포기는 물론이고, 끝까지 발버둥 치겠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노력을 가 해주세요"
카리아도 마티아도 농담하듯 말을 꺼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넘는 공감이나 소통과는
다른 의지의 합치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국가로서의 공통의지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이랑 같이 있던 그 기사는 어떻게 됬나요?"
마티아의 물음에 카리아는 은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마티아와 필로스에게 등을 보인 후, 이렇게 말했다
"발레리가 그 녀석을 맡긴 뜻을 조금은 알겠군
그는 기사이며, 나와 비슷한 성질이야
맹세는 깨뜨리지 않을 것이고, 두 주군은 가지지 않을 것이며
오직 자부심만으로 함께 사는 것...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어
그는.... 내기에서 졌다고 인정했다"
◇◆◇◆
알류에노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서 있었다
성장한 알류에노의 모습은 과거 여행길의 모습과 닮았고
흘러가는 금발은 그녀가 경험한 세월을 나타내는 듯했다
황금빛 눈동자가 형형한 빛으로 가득 찬 것은
그녀가 그 빛에 질 수 없는 경험을 딛고 섰다는 증거
꽃보다 아름답게 알류에노가 웃었다
시선은 지금, 나에게만 쏠려 있었다
"왜 그래, 묵묵부답이라니
무뚝뚝한 면이 있었긴 하지만, 과묵한 성질은 아니였잖아?"
그녀가 부르는 말투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알류에노"
"응, 루기스"
말을 걸면,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음색도, 행동도, 모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꿈에서조차 본, 내가 계속 생각했던 알류에노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아르티아의 연기가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나 이외의 주위는 숨을 죽인 듯이 얼어 붙어 있었다
피에르트도 아가토스도, 인간왕 메디크나 헤르트도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알류에노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였고
어리둥절해서 움직이는 법을 망설이는 것도 아니였다
그런 인간은 이제 여기에 없을 터 였다
그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답은 아주 쉽다
"넌 내 편이야?"
나는 입술에서 숨을 짜내어 말했다
소리가 나는지 나도 알 수 없었고
텅빈 폐에 공기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아니지"
"그럼 전쟁도, 살상도 끝난 셈이군"
"어머, 왜?"
알류에노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녀에겐 망설임도 생각하는 기색도 없었다
스스로 모든 일이 정해져 있을 때의 그녀의 버릇이었다
이럴 때 절대로 알류에노가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루기스, 나는 말이야 네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한심한 나머지, 너에게 잘못을 저질렀잖아"
"잘못이라니?"
자연히 마검에서 손끝이 떨어지지 않았다
놓으면 안 된다고, 지금까지 수없이 전역을 함께 해 온
나의 손가락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응? 네가 구교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내가 대성당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으로 돌아선 것도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던 것도, 내가 너를 구해주지 못했으니 말야
네가 힘들 때, 너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거 미안해, 루기스"
황금이 물결쳤다
알류에노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 이외의 의도는 없다는 투로 나에게 사과를 고하고 있었다
다만 그 이외의 모든 것에는
세계가 뒤틀릴 정도의 악의가 발하고 있었다
마력도 적의도 아닌 것
단지 순수한 악의가 알류에노의 안쪽에서 발하고 있었다
발하는 그 악의의 선열함에 안구가 타버릴 것 같았다
그것이 이 자리 전원의 발길을 멈추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 정도의 감정을 옆에 두고 일어나면서
알류에노는 나에게만은 그야말로 어린 시절과 다름없는 미소를 지었다
"사과할 게 아니야, 알류에노
그리고 난 내가 한 일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차라리 이것이 잘 됐다고 생각해"
나는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알류에노에게 뭐라고 말을 걸면 좋을지
이렇게도 망설여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분명히 네가 말했듯이, 난 계속 실패했다고 생각해왔어
후회뿐이며, 보잘것 없는 인생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틀렸음을 깨달았지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실수따윈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계속 남의 인생을 보며 살았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난 나의 인생을 택했어
그것을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던 거야
실패나 실수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누군가가 만든 척도일 뿐이다
그것에 매달리는 것은 다른 인간의 인생을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남의 인생을 보며, 후회하고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은
그 녀석의 노예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 그렇게 밖에 살아오지 못했다
하루종일 세상 탓만 하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행길에서 나는 여러의 사람들을 만났다
과거의 여행길을 함께 한
카리아도 피에르트도 엘디스도, 헤르트 스탠리도 그렇다
이들은 남아돌 정도의 재기를 가졌지만, 자신을 위해 살았다
수없이 만난 마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스스로를 위해 살았던 것이였다
그들을 만나서 나도 겨우 깨달았다
삶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올바른지 잘못된지
그런 것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끝내자, 알류에노
너도 나도 틀린 것이 아니였어
그저 우리의 사정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뿐이야"
알류에노가 답했다
역시 이번에도 빠른 응답이였다
"그래, 나도 나와 싸울 마음 따위는 없었어
너의 말 마따나 실수라던가, 옳고 그름이라던가 없는 것 같아"
활짝 피는 미소가 주위를 감쌌고
내가 성녀로 추앙받는 것을 이해할 만한 기쁨이 거기에 있었다
일말의 기대에 정신이 이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찰나 사이에
그 희미한 기대는 무너져 버렸다
"그렇지만 여분이란게 있잖아?
여분이 있으면 망설임도 있는 벙지ㅣ
나는 말이야, 하고 알류에노는 말을 덧붙였다
오싹할 정도의 오한이, 나를 포함한
그 자리의 전원에게 퍼지고 있었다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정말이야,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알류에노!!"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고
위액이 역류할 것 같은 오열이 내 몸에서 발했다
알류에노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하게 되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건 역시, 내가 아는 알류에노가 맞아
아르티아에게 속는 것이라고 말해줘
하지만 알류에노의 눈동자가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러니까 다른 것들은 필요 없겠지?"
순간 마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고
알류에노의 발밑에서 균열이 생겼으며
빛기둥이 울리듯 소리를 내었다
아르티아가 이루던 거리의 변화가 속도를 더 해갔다
"루기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너를 더 사랑해"
알류에노는 노래하는 듯한 화려함으로
무시무시한 세계에 대한 악의를 품으며 말했다
루기스는 이제까지 헤르트나 카리아 같은 재주 넘치는 자들을
영웅으로 칭하며, 언제나 그런 꿈을 쫓으며 살아왔으나
드디어 다 집어치우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얀데레 보스를 이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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