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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35화 - 모인 두 영웅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35화 - 모인 두 영웅 -

개성공단 2021. 7. 6. 03:59

신화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위업을 말하는 이야기도
남을 기리는 이야기도 아닌
상상을 초월한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것을 무너뜨리는 파괴를 말한 프리슬란트의 거인 신화

모든것을 빼앗아가는 착취를 말한 브릴리간트의 천성룡 신화

모든것을 잉태하는 기적을 말한 제브릴리스의 정령 신화


사람도 마도 초월한 현상이야말로
세상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신화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저 도태될 운명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웅의 신화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나는 황금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어이, 루기스, 말할 게 있다"




바로 옆에서 메디크가 턱을 당기고 눈을 강하게 뜨고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창을 움켜쥐는 모습으로 볼 때
투혼이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눈길만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이 말라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희미한 소리가 목에서 나와버리고 말았다




"예상외로 경악할 만한 존재 군
우리 눈 앞에 있는 녀석은 이제 인간이 아닌 괴물이야
그렇기에 우리 둘 다 저 녀석을 넘어가지 못하면, 승리는 없어
게다가 저것 또한 지독한 마력 냄새가 나는 군"




메디크는 턱을 괴고 아르티아가 쏘아 올린 빛의 기둥을 가리켰다

알류에노는 저것이 도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메디크가 말하는 거라면, 그것이 상상 밖의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고
시간은 분명히 우리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깨에서 힘을 쥔 후, 입술을 움직였다





"그래서 설마 포기하자는 건 아니겠지?"


"대답은 당연히 안들어도 알겠지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고 있을 틈은 없다
그러니 녀석은 내가 맡겠다
루기스, 너는 먼저 가서 그 아가씨를 말리도록"





메디크가 창끝을 헤르트 쪽으로 돌리며, 한 걸음을 옮겼다
눈앞의 위기에 스스로 앞서는 모습은
왕이라기보다는 장군을 방불케 했다
분명 그는 천년 전에도 이랬을 것이다

주위를 매료시키고 군사들에게 등을 보이며
스스로 맨 앞에서 모두를 이끄는 왕이었던 자
드러난 등이 그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분명 메디크의 제안은 타당한 선택이다
알류에노와 할아범도 먼저 가버렸다
궁궐 안의 일을 생각하면, 여기서 발길을 멈추고 있을 틈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어
저 녀석은 내가 죽여버릴거야
뭐... 약속 같은거라고나 할까나"




나는 허리에 찬 흰 검에 살짝 손가락을 대었다

헤르트 스탠리는 프리슬라트의 대신전에서 죽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때 나도 놈에게 살해당했던 것이였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숨 쉬며, 살아 왔던 것일 뿐
말한다면 나도 녀석과 별로 다르지 않는
죽은 자나 다름없다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같은 죽은 사람인 내가 죽여 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내가 메디크에 맞춰 한 걸음을 옮기자
살짝 보석이 주위에서 떠올랐다





"뭐야, 원래는 네 친구였던 거야?
그러든 말든, 나는 아르티아... 알류에노라는 아이를 쫓을거야
아마도 그 녀석이 판 치는 세계에서
레우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음... 그냥 적이야
원수끼리도 정이 드는 일이 있는 법이지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맘대로 해 줘
나도 곧 따라갈테니까 말이야"




아가토스와 내 목소리를 듣고
메디크는 눈을 한순간 둥그렇게 떴다
그것은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운 것을 보는 눈빛이었다

메디크는 뺨을 느슨하게 하며, 입을 열었다
왕이 아닌 쾌활한 남자로서의 색채가, 눈동자에 돌아와 있었다





"그 아가씨는 어떡하지?"

"그것도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쫓아오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만! 그럴거면 차라리 그 녀석을 내게 말겨라!
어짜피 나는 과거의 인간, 뒤는 나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당장 눈 앞의 생각만 하란 말이다!"





나는 메디크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이렇게도 자신을 믿어준 것이 처음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피에르트, 엘디스, 브루더에게도 눈짓을 하니
그들도 대충 판단을 하고는, 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시에 헤르트를 응시했다
황금빛 눈동자는 틀림없이 나를 보며
그는 한 걸음씩,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성녀는 당신을 떠나보내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다른 어느 것도 개입할 수 없어"




마검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원전이
한번 죽인 상대를 한번 더 죽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때와는 달리 서로 인간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었고
내 목숨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숨들도 걸려 있었다

양쪽 모두 지향해야 할 이상이 있는 것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배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보라색 마검을 허리에 차고 땅을 발로 두드렸다




"헤르트 스탠리, 이제 그만 결착을 내자
너 또한 이것을 원하지 않았어?"




헤르트에게 품은 감정은 이미 동경만이 아니었다
증오는 아니고... 이것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황금빛 눈망울을 반짝이며
백금의 검을 겨누는 녀석을 향해 싸울 의지만을 남겼다




"글쎄요... 뭐랄까요?
저도 사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합니다만"




헤르트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곧 말을 멈췄다
나와 마찬가지로 언어화되기 힘든 감정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오뇌를 일순간에 깨물어 버리고, 녀석 또한 발을 내딛었다




"싸웁시다, 루기스 씨
그것이 불손한 행동일지라도 말입니다"





기묘하게도 생전의 헤르트의 표정이 지금의 녀석에게는 있었다
정의를 신망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불타오르는 열을 가진 놈의 색조가...

동시에 등 뒤에서 말을 받았다
그것은 강인한 메디크의 목소리였다



"모두 달려라! 더 이상의 시간을 주어선 안 돼!"




그가 말하는 순간
강렬하게 창을 휘두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다음에 엄청난 목소리 울려퍼졌다




"초월 호기, 거인 살해"





거인을 죽일만한 일격이
궁전 앞의 돌 층계를 향해 내던져졌다
돌이 빗발치듯 튀고 흙이 쓰나미가 되어 넘쳤고
지면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눈가림일 뿐이였다



헤르트는 그 광경 사이로 보석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 밖에도 복수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헤르트는 그 자들을 쫓아갈 수 없었다

내가 발을 내딛이며, 헤르트와의 거리를 좁힌 후
계속 마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몇 번이고, 쇠와 쇠가 접합하는 소리가 났고, 붗꽃이 튀겼다
검을 내리칠 때마다, 팔을 삐걱거게 했고
마인과 다름없는 체구가 됬음에도,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숨쉴 틈이 없군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빨리 움직이게 된 몸이
지금 미칠 듯이 느리게 느껴졌다
한 순간 방심했다간, 금방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헤르트는 아직 원전의 힘을 쓰지 않았다
녀석이 말하는 신화가 어떤 것인지, 나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둘은 대등한 지평에 있었다
녀석은 나의 일격을 상대하고서도, 전혀 불리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실수였다
나는 그런 헤르트의 모습을 보고
위협보다 모종의 회고심을 가슴에 품고 있었고
머리가 이상해지고 있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게 있었으니



아아... 이것이 영웅... 헤르트 스탠리




내가 애태우고, 내가 계속 목표로 한 꼭대기가 이것이란건가
과거의 여정에서 누구에게도 물러서지 않고, 그 누구도 무찌른 자




"결판을 내죠, 루기스 씨"




공방이 얼마 남지 않은 틈을 타 헤르트가 말했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틀림없는 열이 깃들어 있었고
어딘가가 베었는지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잠시 동안 쇠와 쇠의 접합 소리가 들린 후
그 뒤를 이어 녀석의 음성이 뒤따랐다




"신화의 일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백금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빛을 더했다
마치 이 세상 자체를 삼키려는 듯
마력이 응축되고 환상의 빛이 자리를 감싸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계의 골격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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