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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36화 - 영웅 신화 - 본문
햇빛이 구름을 뚫고 왕도에 비쳐졌다
찬란한 날씨를 준다기보다
오히려 태양이 그 열로 생물을 죽이려 하는 듯한 열기였다
세계가 무너지며, 그 대신에 태양이 떠 올랐다
그 바로 아래에 있는 것은 단 한 명
피에르트와 엘디스가 시야에 비쳤지만
이제 어렴풋한 윤곽만 보였다
아 그렇군....
나는 아주 당연한 듯이 이해를 해버렸다
눈이 내리고 먹구름이 끼는 이 시대
대체 왜 이 왕도 주변에만
태양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이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태양 같은 대영웅 헤르트 스탠리
피부가 따갑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태양 그 자체가 그 녀석의 원전...
아니, 태양이 그 녀석이 되버린 것이였다
나는 태양을 바라보듯 눈을 가늘게 뜨고 헤르트를 보았다
똑바로 쳐다보면 안구가 뭉개질 것 같았고
서 있기만 해도 화끈한 열기가 피부를 태울 것 같았다
만약 신화 자체가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면
헤르트 스탠리라는 자는 신화의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태양과 같은 빛으로 인류를 구하고, 적을 증발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녀석은 태양의 은혜와 잔혹함을 말해 주는 신화 그 자체였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라고, 후세의 자들은 말하리라
"루기스 씨"
헤르트의 어조는 느긋했다
얼굴빛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내뱉는 호흡 그 자체에조차
다른 사람을 압도할지도 모르는 위엄이 있었다
마인도, 대마도 아닌
말하자면 영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자가
내 눈 앞에 있었다
"세 번째의 결판을 여기서 내시죠"
헤르트는 마치 지금까지 두 차례 싸웠던 일을 기억하는 듯이 말했다
나의 눈은 그의 말에 잠시 흔들렸다
녀석은 빛으로 변한 검을 어깨에 걸치고
당장이라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를 비켜서고
마검을 앞으로 내민 채 한 발로 간격을 두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태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단지 관찰되어 버리는 것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햇빛을 받은 마검이 진동하며 삐걱거리듯 움직였고
타오르는 백금검이 마검째 나를 양단하려 하고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든 죽일 수 있는 쉬운 상대가 아니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이대로 죽을까?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피할 수가 없단 말이다
저것을 이겨낼 수 없다면, 수단은 하나밖에 없겠지...
나는 순간 어금니를 세게 깨물으며 마검으로 공간을 끊어냈다
순간 윙, 하며 공기가 양단되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터질 듯이 응축된 햇빛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것은 그저 붉은 선이 왕도로 그어졌을 뿐인 것처럼 보였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왕도의 거리가 부서질 정도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 선을 따라 수많은 건축물이 부서져 갔고
나무는 다 타버렸으며, 흙과 벽돌은 불에 타 녹아버렸다
어느것 하나 햇빛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이미 인류의 영역이 아니였다
헤르트는는 태양 그 자체로서 눈 앞에 군림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
나는 뺨을 찌푸리면서 눈을 부릅떴고
땅에 무너져 내릴 것 같으면서도
억지로 발로 대지를 짓밟고 있었다
동시에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헤르트를 정면에서 어찌 할 수 없다면
다른 방면에서 손을 쓰는 수 밖에...
나는 헤르트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짝 한 발자국을 옮겼다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일부분의 공격이라면, 받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드래그맨조차 행하지 않았던 수법
아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였을 것이다
나의 온몸이 옥죄인 듯한 소리를 냈고
내장이 몇 번이나 찌부러져 튀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 죽는 것보다는 말이다...
"루기스!!!!"
피에르트와 엘디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아마도 이유는 나도 알 것 같군
어떤 잔꾀를 부려도, 헤르트의 일격을 피한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 오른팔의 감각이 없었다
오른팔에 시선을 주니, 휘황찬란한 빛에 그을려져 있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그뿐이라면 몰라도 열이 마력조차 태워 없애기 위해
안쪽으로 침식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베어 죽이는 것은 커녕
건드리기만 해도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베어 쓰러뜨리는 대영웅
대단하군, 이 녀석을 쓰러뜨릴 자가 과연 있을까?
시야 끝에 불꽃이 비쳤다
아마도 피에르트이겠지
그러나 거기에 의미는 없을 것이다
화염에 불타죽을 태양은 없으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주받을 태양은 없고, 힘에 파괴될 태양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저것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왼팔에만 감각을 집중해 마검을 움켜쥐었다
열이 몸을 침범하는 가운데 숨소리 조차 죽였다
그리고 나의 바로 앞에는 대영웅이 서 있었다
왕도 자체를 증발시켜 버릴 만한 열을 가지고 말이다
"저의 의지와 신념 아래
루기스, 당신을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나는 느닷없이 웃음이 나왔다
헤르트는 처음으로 정의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대신전에서의 일막을 떠올렸다
녀석은 지금... 그냥 헤르트 스탠리로서 내 눈 앞에 있는 거야
대영웅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닌... 그저 나의 적으로 말이야
반가운 일이 아닌가
예전의 여향에서는 시야의 구석에도 비치지 않았겠지
내가 녀석의 적으로 인정될리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녀석의 적으로서 응해 줄 의무가 있다
그게 아무리 꼴불견이라 할지라도
적이 아니고서는 난 녀석과 맞설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마력을 호흡과 함께 가다듬었다
"하하하하, 이거 고맙군"
나는 왼손 하나로 마검을 움켜쥐고 칼끝을 헤르트로 향했다
동시에 나는 하늘에 떠 있었던 성채에서 들었던
샤드랩트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인간의 영웅인 한
인간왕, 대영웅, 용사, 그리고 아르티아...
인간을 넘어선 그들에게 인간인 너는 승리할 수 없을 거 아냐?'
마음대로 지껄인 것 같지만, 사실이였다
기적과 신비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그들을
내가 어찌 그 등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그들을 대적하고 싶다면 인간을 초월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정신을 되찾는 동시에
냉정하게 햇빛을 뿜어내는 헤르트를 응시했다
그리고 마검에 혼신의 마력을 쏟아부었고
동시에 사고를 극한까지 좁혔다
시야에서 녀석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워버리듯이 말이다
이것은 의식이다
내 몸을 마력에 녹여 전신을 마를 위한 기구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마법과 축복의 혜택을 받고 있던 이 몸을
나 자신의 손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보다 마에 적합한 성질로
보다 인간을 잃는 형태로
톱니바퀴가 찰칵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마성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어'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할아범 같이, 왜 내 스승은 곧바로 없어져 버리는 걸까?
몸과 마력이 맞물리는 순간 마검이 검고 어둡게 칠해졌다
그리고 그것만이 헤르트의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몹시 맑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신전에서 말했지?
태양의 시대는 끝을 고하고
밤이 나를 위해 치켜올라가는 시대가 올 거라고
헤르트 스탠리, 오늘 내가 다시 한 번 끝내 주겠어"
그 말이 주문이자 신호였다
밤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헤르트 의 햇빛을 침식하듯 마검이 어둠을 토해내고 있었다
뒤틀리는 어둠이 이 세상에 밤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였다
만일 태양을 죽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지평선 끝에 가라앉히고 오는 밤뿐일 것이다
예로부터 신화의 세계에 있어서도, 태양이란 삶의 상징, 밤은 죽음의 상징
그렇다면 모든 것을 죽여버리는 나의 원전은
반드시 밤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빛을 비치는 장소가 아니라서 다행이였다
나는 그런 장소에서 좋은 일을 받은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언제나 내가 있을 곳이란 그늘진 곳이였다
이전의 여행길도, 내가 도움이 된 것은 밤 정도 였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밤의 어둠 속이라면 지지 않는다
이 눈동자는 어둠 속을 내다보는 일에만 능하니까...
"대영웅, 다음에 만날때도 같이 여행을 하자
물론 원수로서는 만나지 말자고"
밤이 신음 소리를 내며 햇빛을 노려보고 있었다
태양의 시대는 저물고, 밤이 자신을 위해 치켜올라갈 것이다
이 말은 288화에서 루기스가 헤르트를 향해 했던 말입니다
프리슬란트 신전에서의 두 번째 결투는 루기스의 승리로 끝나죠
루기스는 이전의 여행길에서
밤에 다른 사람들이 다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
자청하여 보초를 섰습니다
그렇다면 어둠에서는 가장 뛰어난 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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