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44화 - 무대 위의 인간들 - 본문
잠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서
대성교의 성녀와 용사가 함께 궁전에 들어온 무렵
궁전 앞 계단에서 카리아는 은발에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녀는 검붉은 검으로 몸을 가누며, 호흡을 골랐다
알류에노에 의해서 탑에 내던져진 몸은 인간이라면 즉사
경추를 포함한 전신의 뼈가 부서져 흩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리아의 몸 속을 누비는
거인왕의 혈통이 그녀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쓰러지는 일도, 패배하는 일도, 절명하는 일도
거인왕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또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카리아에게 있었으니
"그..... 개년....."
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고 있었다
통상적이라면 거인은 피나 뼈 같은
육체의 상처를 곧바로 복구해 고쳐버렸다
카리아의 몸은 혈액이 활성화되기만 하면
온몸의 뼈가 부서져도 다음 순간에는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유난히 상처의 치유가 늦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면 걸쭉한 피가 튀어 나오는 정도였다
고쳐지긴 했지만 진도는 더딘 수준이였다
이것만을 보고
카리아는 알류에노의 권능을 대략 파악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하는데...
카리아는 일단 궁전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 주변을 지나가는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맞혔으니
긴 갈색 머리를 늘어뜨리며 모자를 눌러쓴 여자
그녀는 의아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강하게 떴다
"젠장할... 어디로 간거야? 그 검사 녀석..."
용병 브루더는 침을 뱉으며 그렇게 말했다
◇◆◇◆
성녀 알류에노 앞에 은빛 머리칼이 나부꼈고
브루더는 옆에서 같은 색의 바늘을 손에 들고 있었다
쓰러뜨린 여왕 필로스와 성녀 마티아를 뒤로하고
알류에노는 무심코 눈을 크게 떴다
카리아가 이 순간에 등장한 것은 운이 좋았다
우연히 여왕 필로스의 호위이자
궁전의 샛길을 잘 알고 있던 브루더와 만난 것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말에 동의해 준 것
마지막으로 알류에노가 잠시나마
기사 가르라스에게 발이 묶여 잇던 것이였다
"어머나, 아직도 포기를 안하다니, 의외네요"
"네 년을 루기스와 만나게 할 수는 없지"
카리아에게는 그 이유 뿐이였다
카리아와 브루더는
자신들을 무너뜨리게 하는 적의와
동시에 루기스에게 짓는 미소를 보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루기스를 다시 만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은 이미 개인적인 욕구에 따른 것뿐이 아니였다
알류에노는, 그렇게 되었을 때야말로
다른 무언가는 아무래도 좋다고 단정할 것이다
아르티아는 많은 것을 지배하려 했지만
알류에노는 단 하나를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었으니
자신이 지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
"그래? 하지만 그럴 순 없어
나와 루기스는 꼭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지"
"...이해가 안 가는 군...
고용주에게 집착하더라도, 다른 수단이 있지 않을까?"
알류에노는 치마 양끝을 가볍게 만지며
카리아와 브루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옥좌 앞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증오도 악의도 아니고
모종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세계는 비극을 만들어 낼 뿐이야
그러니 나도, 루기스도 서로 손이 닿을 수 없었어
그렇다면 이 세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보단
새롭게 세계와 시대를 만드는 쪽이 당연한게 아닐까?"
그것은 브루더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류에노의 사상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이내 진지한 눈빛에서 옅은 미소로 바뀌었다
마치 카리아나 브루더보다, 멀리 있는 무언가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루기스를 구할 수 없어
아니... 루기스는 당신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뭐.... 뭐라고!?"
알류에노의 손가락 끝이 카리아를 가리쳤다
그러자 카리아는 자신의 눈동자에 황금이 비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손가락은 브루더를 향해 움직였다
"당신들은 너무나도 루기스와 어울리지 못해
마법사도, 엘프의 여왕도, 대영웅도, 용사도, 인간왕도, 마도장군도,
대정령도, 수많은 마성들도... 그 누구도 루기스를 구하지 못했어
왜냐하면 당신들은 무대 위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눈부시게 빛나고, 힘을 가지며, 의지를 외칠 수 있는 사람만 보고 있잖아
지금도 그래, 루기스를 보는 것은 그가 무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야"
카리아도 브루더도
알류에노의 언동에 위화감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말하는 것 같은 이상함...
눈 앞의 인간이 수천년이나 시간을 넘어 여기에 있는 것 같은, 오한...
황금빛 눈동자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당황감이 들었다
카리아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알류에노의 말은 어딘가 기묘한 실감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였다
"마수에게 습격당해 죽음에 이른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
굶주려 죽은 사람의 이름은? 아르티아가 만든 대재앙 속의 희생
그리고 흔한 불행에 베여 고통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도 성녀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됬을거야, 루기스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구원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헤쳐나갈 수 밖에 없어"
알류ㅇ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카리아와 브루더 사이를 누비듯 열선이 날아욌다
알류에노의 미간과 심장, 목을 겨누던 그것은
단지 손짓 한 번에 되돌려나가고 말았다
아니, 궤도가 고꾸라졌다고나 해야할까?
"젠장할! 뭐하고 있는 거야 너네들!
가만히 서 있을 때가 아니잖아!
여기에 뭣 때문에 왔는지 잊은거야!?"
옥좌 사이로 날아든 것은 보석 아가토스의 질타 소리
그때서야 비로소 카리아와 브루더는
그 의식이 알류에노의 악의에 사로잡혀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가토스는
활공하며 힘차게 옥좌를 파고들어 주위에 보석을 전개시켰다
목소리와 표정에는 초조가 넘쳐흐르고, 마력이 희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옥좌에 당도한 것은 아가토스 뿐만이 아니였다
허공에 불꽃과 검은 주술이 둥둥 떠 있었으니
바로 핀 엘디스와 피에르트 볼고그라드가
보석의 궤도를 따라가며, 당도한 것이였다
"루기스는 여기에 오지 않을거야, 아쉽겠는걸?"
피에르트는 가슴을 펴고 눈동자에 강한 의지를 담으며 말했다
전에 보였던 나약한 모습은 이제 그만 사라진 것 처럼 보였고
그저 눈앞의 황금을 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공범자가 없더라도
이제 그녀는 변혁자로 불릴 만큼, 마법 능력이 뛰어났다
"그렇구나, 그래서 너희는 뭘 하러 온 거니?"
알류에노는 피에르트의 말에도
별 흥미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것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가 믿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나 그의 말뿐일 것이다
알류에노는 옥좌 앞에 섰다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이 주위를 뒤덮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동시에 엘디스는 푸른 눈을 깜빡였다
"프리슬란트에서 기억나지?
그 때의 설욕전을 해주겠어
그리고 너와 우리는 원수지간이니까
그 외의 이유따윈 들을 필요 없지 않겠어?"
단호한 어조였다
엘프 여왕으로서의 의연한 행동고
그를 내줄 생각은 없다는 의지가 말에서 배어났다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의 생각은 다양했다
하지만 딱 하나 공통된 의견이 있었으니
이 여자를, 여기서 끝내겠다
모든 인연과 결말이 여기서 완성되려 하고 있었다
알류에노는 옥좌 앞에서 비웃듯이 말했다
"그래, 상관없어
루기스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 잘 들으세요"
그렇게 말한 채 알류에노는 익숙한 태도로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 팔꿈치를 괴고 볼을 받치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당신들이 구하지 못한 인간이 당신들을 끝내 줄 거야
그리고 너희가 구하지 못한 인간을 내가 구하겠어"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최종장 신화혈전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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