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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41화 - 인간의 포효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41화 - 인간의 포효 -

개성공단 2021. 7. 24. 06:08

불꽃이 터졌다


홍련의 창이 적에게 달려들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 튕겨나갔다
그렇게 여러 번 날라지고, 튕겨나감을 반복했고
이제는 얼마나 그것이 반복되었는지는 본인밖에 모를 것이다

옆에서 보면 수 천번 정도 반복된 것으로 보였다

이를 처리해 보이는 용사도 비정상적이지만
용사와 팽팽한 기사의 모습도 역시 비정상이였다

다만 약간의 실수가 이루어진다면
둘 중 하나의 목덜미는 끊어져버릴 것이다
이따금씩 핏방울이 튀고 있었지만
지금 서로가 노리고 있는 것은 치명상이 될 수 없는 곳 뿐이였다



기사 가르라스는 신음했다

도저히 리처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빠르고, 보다 날카로운 한계가 여기에 있었다

아이러니컬하다고 가르라스는 생각했다
인간에 한계를 느끼고 초월한 마인의 몸을 얻어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아무리 앞만 바라보아도 끝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인가...

생각하면 지독한 꼴이라고 가르라스는 목을 울렸다
이상적인 기사를 꿈꿨건만 이게 무슨 꼴인가

대성당의 진면목을 알면서도 한 번은 그쪽에 기여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때다 하는 때에 단행하지 못하고
지금은 창끝을 거꾸로 향하고 있는 자신이였다

아무리 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이가 없군
옛날부터 변함없는 나쁜 버릇이였다
무언가를 생각할수록 나쁜 방향으로 굴러갔으니 말이다



그날도 그렇다
동생에게도 말을 해주는 건데

너한텐 재능이 없으니까
기사 따위를 목표로 해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그 한마디만 해주어도 동생은 좋은 학자가 됐을 것이다
가르라스도 보다 평온하고 바보같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이 생각한 결과
동생을 존중해, 죽음으로 이끌고 말았다
지금도 그 인과 때문에 고통받는 자신이였다
어처구니없군, 흉한 모습을 보여도 정도가 있는 건데

홍련의 창이 포효를 지르며 공기를 관통했다
그제서야, 가르라스는 한쪽 눈이 멀어졌음을 겨우 알아차렸다




"더 이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간간이 들리는 용사의 목소리
사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이 극한의 공간 안에서는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의미가 없다... 맞는 말이야
결국 물에 빠져 죽을 인간이 보기 흉하게
손발을 발버둥치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
하지만...




"웃기지 마"




가르라스가 대답했다
불꽃은 더욱 튀어갔고
서로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창과 칼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난무하고 있었다




"의미가 없어, 가능성이 없어
그런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당장이라도 그냥 죽어버리는게 나을거야"




누구나 머지않아 죽는다
대마나 마인조차 머지않아 망하는 법
불멸의 존재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모두 무의미하게 소멸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짜피 질거니까, 싸우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이야, 그런 하찮은 가치관으로 살지 않는단 말이야!"




가르라스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재능이 없다
동생은 그 누구보다 아플 정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위를 향하면 언제나 위가 있고
저 멀리 자신을 앞질러 가는 동료들을 보며
통감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후까지 기사를 목표로 했다
무섭다고, 슬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말이다
그래도 역시...




"난 변절한게 아니야
망설이고, 발버둥치고, 보기 흉한 짓은 하긴 했지만
내 알 바 아니야!!!"




가르라스는 폐촌에서의 광경을 눈에 떠올렸다
문장교의 면면을 보고,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전역 중인데도, 너도나도 자기가 정의롭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걸어온 것이다
재주가 있든 없든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가르라스는 홍련의 창을 힘껏 움켜쥐었고
공간이 뒤틀릴 정도의 마력이 집중되었다
그것은 숨을 삼키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흑검이 위로 올라가며
리처드는 그를 맞이할 자세를 취했다
영원히 여겨지던 양측의 연격이
이 순간 만큼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폭풍 전의 고요

이번에는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간이 잠시 멈춘 사이
혁혁한 기사와 용사의 결전이 여기에 있었다




"......."




무술의 정점을 찍었을 둘의 싸움은 너무 원시적이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연 누가 먼저 적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선수를 친 것은 홍련의 창
기사의 자존심은 시간조차 제쳐놓았다
가르라스의 원전은 이상적인 기사를 구현하는 것
리처드에 닿지도 않을 창을 닿게 끔 만들어내는 것이였다

틀림없는 반응이 있었다
창은 용사의 살을 헤집고 있었다
이것이 빠른 일격이였다면, 아마도 기사의 승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용사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강한 자가 아니였다
자신과 비길 데 없는 자도 아니였고, 초월자도 아니였다

그저 마성에 패배하지 않는 자


천둥이 내리쳤다
리처드의 흑검은 홍련의 창을 부스러뜨리며
마인의 몸을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가르라스의 육체가 붕괴의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끝이다, 잘 가라"




리처드는 선고를 내리듯이 말했다
가르라스가 사라질 운명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리처드의 어깨를 잡은
가르라스의 손이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기사의 본분은 알아?"




가르라스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사란 말이야... 필사적으로 살아야 하고
만약 위기를 피하지 못할 것 같으면... 죽을 기세로 싸워야 하는 거야"



단단하고 강하게 움켜쥔 두 손
그것에 리처드가 날렵하게 반응했다
이 순간의 기회에 보석 아가토스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아가토스는 여러 개의 열선을 쏘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란의 목적
진짜는 리처드의 머리와 목과 심장을 겨눈 세 개였다

리처드는 가르라스의 방해에 움직임이 늦어진 상태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하지"




리처드는 재빨리 태세를 추스른 흑검으로 
심장과 목에 겨눠진 열선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가르라스의 발악 탓에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열이 리처드의 오른쪽 눈을 꿰뚫었다
리처드는 시야의 절반을 잃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하지만 리처드는 이것으로 승리임을 확신했다

아가토스는 최대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리처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가르라스와의 합공에도 리처드는 이겨낸 것이였다
이제는 어떻게 하더라도 패배는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용사는 결코 마성에 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마인을 상대한 끝에, 진실이 되었다

인류에게 사랑받고 인류의 희망인 용사

만약 그가 패배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로 평범한 인류의 손에 의한 것일 것이다




"....!"


"이야아아아아아!"




리처드의 사각지대, 그것이 치명적인 요인이였다
오른쪽 눈을 찔린 탓도 있지만
그는 처음부터 마인밖에 보지 않았던 것이였다
그가 위협으로 보고 있던 것은, 당연히 기사와 보석뿐

그래서 인간 네이마르가 칼끝을 향해 덤벼들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번쩍이는 칼날이 뻗쳐졌고
그것도 평범한 검이 아니였다

아가토스가 자신의 보석으로 만든 보검
그것이 네이마르의 전력으로 휘둘러진 것이였다

리처드는 왼쪽 눈을 부릅뜨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시간 안에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어짜피 평범한 인간이니까
그녀가 움직이는 속도는 미미
휘두르는 일격은 평범함의 극치
소리 지르며 뛰어드는 모습은 기습이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강하지 않다
너무 약하고 덧없다
반복되는 목숨을 건 일격이 꼴사납기 까지 하군

모든 것은 무의미할 터였다


하지만 리처드의 남은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그것을 무의미하게 베어 버린다면....
인류의 희망인 용사인 나는 대체 뭐가 되는 거지?
나는 무엇을 지키려 하고 있는 건가


리처드의 흑검은 동요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지 휘두르는 것 뿐이라면, 아직 이 쪽이 빠를 것이다

순간 교란용으로 쏘아진 줄 알았던
아가토스의 열선 하나가 네이마르의 칼날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 칼날은 한순간 리처드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이윽고, 용사에게 충격이 전해졌다

일전에 발레리 브리트니스가 입혔던 배의 상처에
칼날이 더 깊게 들어갔던 것이였다




"그런가"



한순간 리처드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몇 초후에, 모든 것을 파악했고
그의 뺨에서 쓸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각, 하...."




네이마르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 눈을 부릅떴다
양손에 쥔 칼날의 무게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자 리처드는 네이마르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울지 마, 네이마르, 훌륭해, 최고의 성과잖아"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꿈을 쫓다 죽은 동생을 대신해

최후에 이상적인 기사라는 꿈을 이룬 가르라스

 

자신의 첫 제자라고도 할 수 있는

발레리 브리트니스를 알아 보지 못한 채, 죽이고

두 번째 제자인 루기스와는 끝내 만나지 못했고

마지막 제자인 네이마르 글로리아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리처드 퍼밀리스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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