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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39화 - 나의 스승이자 적 - 본문
리처드의 흑검은 번갯불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그를 용자라고 부르게 할 만한 능력이였다
그러나 네이마르가 가진 능력은 무기가 아닌
오히려 그녀는 문관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리처드가 말한 것마냥, 재능을 잘못 활용한 결과였다
애초에 전쟁터에는 처음부터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튼 잘못 발을 들인 결과
흑검은 단두대의 칼날 처럼, 네이마르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 직전
리처드의 일격이 뱀처럼 꼬부라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칼날을 돌려 전혀 다른 곳에 맞췄던 것이였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네 번 이상으로 다툼은 계속되었고
죽을 뻔 했던 네이마르, 주변의 군사들, 심지어 가르라스까지 당황했다
리처드에게 날아왔던 열선은 창문을 깨고
주변의 벽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정말이지"
궁전에 울리는 소리는 보석의 숨결
주위의 시선도 그녀에겐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요소일 뿐이였다
보석은 창문과 벽을 열선으로 파괴하면서 모습을 나타냈다
아가토스는 긴 두 다리를 허공에 내팽개쳤고
요염한 맨발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양측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게 없구나
우리는 평생이라는 예술을 살면서, 죽음으로 완성시키는 것인데
다시 눈을 떠서 추하게 예술을 더럽히다니
나 말이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아름답든 추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열심히 사는 것 뿐이겠지"
리처드는 보석을 옆에 둔 아가토스를 보면서도
전혀 초조한 기색 따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는 아가토스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마의 도가니로 변해가는 궁전에서
마의 화신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인간이라면 그것만으로 호흡이 멈출 것 같은 밀도의 기색이 있었다
"어머나, 용사여, 신기하군요
당신이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이야"
"면목없습니다, 성녀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뭐,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모처럼의 술래잡기인데
그저 가만히 있기는 싫은 걸?"
마의 화신
황금의 두 눈을 가진 성녀 알류에노는
위병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순간 네이마르는 두 눈이 돌이 되어버린 감촉을 받았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인식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였다
절대적인 악의가 네이마르와 위병
아니 주변 모든 이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타인을 누를 정도의 정신이
본래 육체의 내면에 자리 잡아야 할 정신을 압도한 것이였다
하지만 네이마르에게는 그 자체보다도 알류에노의 모습이 두려웠다
성녀 알류에노는 악의에 걸맞은 얼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단아한 얼굴에 붙어 있는 것은
추호의 악의도 느끼지 않게 하는, 만면의 미소
알류에노에게는 남을 삼켜 버릴 것 같은 악의마저
미소 속에 흘려버리는 감정일 뿐일 것이다
"그럼 먼저 가보도록 할게요
당신이라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겠죠?"
"네, 맡겨 주십시오
용사는 마성에 패배를 하지 않습니다"
리처드의 단언을 등에 업고
알류에노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위병들은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다
마력도, 무기도 아니고 아닌
단 한 가지, 악의에 의해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다
오직 네이마르만이 간신히 의식을 남겼지만
그녀 또한 공포에 이를 맞물리고 있을 뿐이였다
"어이, 딴따라
인사도 없이 가는 건가?"
기사 갑옷을 입은 가르라스가 한 걸음을 내딛었고
그가 가진 홍련의 창이 사납게 울어댔다
그러나 곧 칼끝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알류에노를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번갯빛이 그의 목덜미를 쿡 찌르고 지나가버렸다
그것은 보석 아가토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맹수보다 더 사나운 용사의 칼날은
마인들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숨죽이고 있었다
"...아르티아"
성녀 알류에노가 복도를 지나가려는 순간
아가토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알류에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아가토스에게 답했다
"응? 난 그런 이름이 아니야"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어
왜냐면 너와 아르티아는 매우 닮았거든
마력은 물론이고 그 생활방식...
너는 항상 자신이 지배하지 않으면 적성이 풀리지 않았지
팔도 다리도, 심지어 생각할 머리도... 다 빼앗아야 행복할 거라고 믿었어"
아가토스의 말에 알류에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울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지배라는 말에는 공감이 가는 걸"
등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알류에노의 두 눈이 빛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가토스에게는 느껴졌다
"사랑이란 게 다 그런 거잖아?
한계가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법이니까"
"그럴리가"
아가토스는 알류에노의 말을 반박했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지금의 자신이지만
그러나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었다
분명 그것 때문에 다시금 나는 눈을 뜬 것일 테니까
아가토스의 하얀 눈동자가 깜빡였다
"지배하는 사랑은 함께 하는 사랑에 비하면
좁쌀 만큼의 행복일 뿐이야
너는 계속 집착하고, 계속 빼앗고, 계속 속박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을 거야"
"그런가... 그래도 난 상관없어"
여전히 알류에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복도 끝에서 사라지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손으로 행복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버렸는 걸"
알류에노의 모습은 복도 끝에서 사라졌다
당장 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저 악의의 덩어리를 인간은 어떻게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곳은 아가토스는 물론, 가르라스도 그걸 파악한 사실이였다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오직 하나
"마인 둘에... 인간 하나인가....
미안하지만 난 성녀님을 따라잡아야 해서 말이야"
리처드가 쥔 흑검이 휘날리며
아가토스와 가르라스
그리고 두 다리를 벌벌 떠는 네이마르에게로 향했다
"상대 해봤자 헛수고 일테니까
도망칠 기회를 줄 때, 도망치지 그래?
리처드는 분노를 일으킬만한 가득찬 오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용자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하늘이 눈여겨 볼만한 재주를 가지고
마성에 패배하지 않고, 그저 오만하게 정상에 이르는 자
자신의 패배를 조금도 예상하지 않는 자라는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용사
미안하지만 난 당신같은 시체에 그다지 힘 쓰고 싶지 않거든"
순간 홍련의 창과 보석이 반짝였다
따라잡아야 하기는 두 마인도 마찬가지
본래 공동의 투쟁은 하지 않는 마인이지만
이때만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 중 한 명인 네이마르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터무니없는 악의에 노출된 의식이 혼탁해진 그녀
마인도 영웅도 아닌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농도를
바로 가까이서 쏟아부어진 것이였다
무릎을 꿇을 것 같고, 눈물이 핑 돌 것 같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이 그저 적이고 낯선 존재였다면
네이마르는 이미 오래 전에 의식을 내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그곳에 있는 것은 네이마르의 스승이자 목표로 삼아야 할 존재
용모를 보아하니 다른 자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포기할 수는 없다
만약 노장군 리처드 퍼밀리스가 여기에 있었다면
자신에게 도망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혼자서 남아있었겠지
그래, 그 사람은 항상 그랬어
하지만 지금 노장군은 여기에 없다
다만, 용사로서의 그가 적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네이마르의 길은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인과 용사가 서로 목숨을 꺾는 난전 속에서
인간 네이마르는 활과 검을 들고 다시 두 다리로 땅을 밟았다
자신의 스승을 모욕하는 적에게 맞서기 위해
넘치는 용기를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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