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46화 - 힘 없는 자들 - 본문
생애란 경험과 기억을 하나로 묶는 것
실제로 눈과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혀로 맛보고, 인생의 향기를 맡는 것으로, 누구나가 생애를 만들어 간다
그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스스로를 일어서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믿어야 할
자신의 과거 속에 이물질이 빠져들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일어설 수 있을까
"애초에 뭐 우리가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저 서로 우연히 옆에 있게 된 것일 뿐이지"
루기스가 내뱉은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냉담한 목소리였다
만났을 때의 인상에 약간 가깝긴 하지만
이렇게 적의를 드러낸 눈동자를 본 적이 피에르트에게는 없었다
왠지 다가서면, 목덜미를 뜯길 것 같았다
무섭고, 슬프고, 떨리기까지 하는 기억
그런 루기스를 향해 내가 아닌 피에르트가 말하는 것이였다
그만해, 말하지 말아줘... 피에르트는 간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란거죠? 당신 같은 것, 저도 아무 상관없어요"
발에 감각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피에르트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갈라이스트의 궁전에서 알류에노의 마법을 무찔렀을 것이다
나 또한 마법을 부렸을 것인데...
아니, 그게 사실이긴 한 것인가?
실제로는 루기스에게 증오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위이고 무엇이 오답이고 무엇이 정답인가
아무것도 모르겠어.
정신이 아찔해지는 피에르트였다
그러나 이 현상은 피에르트 뿐만이 아니였다
카리아도 엘디스도 보석 아가토스도
그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 기억 때문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몇 번이고 보지 못했던 광경이 그들 앞에서 구르고 있었으니...
카리아는 사랑을 베푸는 자를 베어 죽이는 기억을 보았고
엘디스는 적대고 뭐고, 그냥 베어죽이기만 하는 자신을 보았으며
아가토스는 레우를 추하다며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해해버렸다...
이것은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니, 존재했던 세계였던 것이다
무엇 하나 맞물리지 않았던 세계
참혹함으로 가득 찬 세계
비극만을 보여주는 세계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그들이기에
그 이상한 기억은 영혼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고
아무리 부정해도 낯선 기억이 심장을 도려내는 중이였다
"......"
알류에노는 이제 의지조차 잃을 것 같은
그들을 보고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였으니 말이다
아르티아와 오우후르는 서로의 자웅을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세계를 반복하며 수없는 비극과 운명을 창조했다
단 하나의 비극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수백, 수천. 반복된 비극과 악의의 역사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영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알류에노는 그녀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눈 앞의 자들은
얼굴을 새파랗게 질린 채 손끝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단 한 명의 사람만큼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신기하네요,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군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알류에노의 시선 앞에서
브루더는 창백함을 드러낸 채 갈색 눈동자를 흐리게 떴고
손끝에 겨눈 바늘을 알류에노를 향해 던졌다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루더가 이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가진 평범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평범함 때문에 다른 영웅이나 마인에 비해
그녀에게 가해지는 비극은 단순했던 것이였다
용병도시 베르페인에서 부모도 여동생도 빼앗기고
존엄도 잃은 채 힘도 못쓰고 절명하는...
그녀에게 준비된 것은 그런 뻔한 비극뿐이였다
"하나 더 질문해도 될까요?
이렇게까지 당신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잖아요?
솔직히 당신은 평범하니 어느 쪽을 택해도, 상관 없었을텐데"
알류에노의 말에 브루더의 심장이 울렸고
달콤한 기대가 목구멍을 맴돌았다
알류에노가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였다
만약 여기서 물러난다면 알류에노는 브루더를 뒤쫓지 않을 것이다
단지 카리아, 엘디스, 피에르트만 찢어버리겠지
알류에노의 말대로
여기서 그녀에게 거역해도 승기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순히 물러서
그 후의 결과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자기에게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니
행복해지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남에게 맡겨도 좋지 않겠는가
순간, 브루더는 어째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악의에서 회복하지 못했고, 자신이 이렇게 빨리 일어설 수 있었는지를
그 자리에서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내가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굴욕을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타협하고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그녀들처럼, 스스로 일어서는 일은 없었으니까
불행도 비극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 버렸던 것이였다
그야말로 루기스가 손을 잡아줄 때까지 말이다
브루더는 치를 떨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여느 때의 강경한 말투도, 모든 것이 날아가고 있었다
"......까"
"네?"
"까불지 마!
나는 겨우 드디어 베스와 함께 할 수 있게 됬는데
너의 그런 말에 넘어갈 것 같아!? 까불지 말란 말이야!"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고, 숨이 가물가물했다
도저히 폼 잡을 모습이 못된다는 것이였다
오히려 막강한 적을 앞에 두고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는 모습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약한 무기를 휘두르며 외쳤고
적을 향해, 용기있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최저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해질 수 있었어!
그렇다면 다시 모든 게 불행해진다 해도, 난 계속 싸울거야!"
어제는 불행했다
오늘도, 내일도 불행할 것이다
어쩌면 수중에 있는 행복조차도
어느새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브루더는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는 것만으로는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자가 권리를 부여받을 리 없다
힘없는 목소리가 인정받을 리 없다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고 싶다면
때로는 무모함을 알면서도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브루더가 바늘을 다시 잡은 것을 보고
알류에노는 그렇게 말했고, 손끝을 움직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루기스의 친구 씨
역시 당신도 루기스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것이 어떤 세계든 말이지요"
악의가 꿈틀거렸고
사람의 형상을 이룬 악의가
브루더를 가르며 힘차게 뻗어나왔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띤 악의가 이렇게 말했다
"잘 가요, 어리석은 용병"
바늘을 쥔 브루더의 팔이 자신도 모르게 멈췄고
갈색의 눈동자가 눈 깜짝하지 않고 경직되어버렸다
그녀 앞에 나타난 사람의 형태는
여동생 베스타리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브루더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죽이기 위해서였다
베스타리누는 경멸의 시선인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크.....으아아아악!"
브루더의 신음과 비슷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는 굵은 눈물을 흘러내렸고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듯, 전쟁도끼가 그녀의 목에 내리꽃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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