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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 에 행복을 제656화 - 그렇다면 이야기해야 할 것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바라건대 이 손 에 행복을 제656화 - 그렇다면 이야기해야 할 것은 -

개성공단 2021. 9. 8. 02:35






신화혈전. 인류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최후의 전쟁은 신왕국과 구왕국의 왕도 결전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 이상하게도
마치 호흡을 맞춘 듯 대륙은 전쟁터로 넘쳐나고 있었다



동방의 패자 볼버트 왕조와 자유국가도시의 전투
남방국가 일리저드의 전쟁 개입
서방 로어의 대륙 침공

대륙과 주변 제도에서 각개의 지위를 가진
4대 국가가 뜻을 모아 전쟁을 시작한 것이였다

그것은 마치 아직도 인류와 마성 사이에서
흔들리기만 하는 승리의 저울을
스스로의 의지로 기울이려는 듯 했다



하지만 전쟁터가 어느 땅, 어느 하늘 아래서 일어나든
신화혈전의 중심지는 지금 바로 여기였다

갈라이스트 왕국 궁전 내
아르티아의 역사가 시작되고 끝난 곳


성녀 알류에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을 더해 찬란한 반짝임을 자아냈다

주위의 공기가 그녀에게 압도당한 것 마냥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주변을 둘러싼 공기는 오열을 토해내고 있었다

인류로부터 동떨어진 마성조차도
이것을 부르는 단어는 하나 밖에 없었다


신령




알류에노는 미소짓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상관없어, 루기스
네가 무슨 일을 꾸미든 난 받아줄 거야
네가 원한다면 신이라도 되어줄게"


"농담이지?
내가 신을 믿을 성격으로 보여?"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편한 신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고아로 전락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게 불리한 신이라면... 믿을 필요도 없지

원래 고아였던 그에게는 믿는다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로 자란 자들도 믿지 않았다
양부모 나인즈도, 스승인 리처드도 마찬가지

경애는 하지만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



생각해보면 지금 이때도 옛날 시절도
루기스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반드시 혼자였다

자신을 도와주는 자는 자신뿐이고
사는 것은 혼자만의 힘이어야 했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던 그는
본능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고 사는 법을 깨달아 갔다

거기에 아르티아의 총애를 받지 않은 인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그이기에 더욱 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죽여 버릴 수 있는 원전을
간직할 운명을 짊어지고 말았다

물론 다른 사람의 힘을 의지하기도 하고
믿는다고 말로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 이외에 의거하지 않는 것이 루기스라는 인간이었다
배신당하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아무리 발버둥쳐도 스스로에게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은
그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그 때문에 죽어 버려도 무방하다는 뜻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란 도저히 믿을 가치가 없었다




"피에르트, 카리아, 엘디스... 아까 말한 그대로야"




목소리가 닿는지조차 모르는
카리아를 포함한 세 명의 동료에게 루기스가 말했다

왼손 한 자루에 마검이 쥐어져 있고 백검이 허리에서 빛났다
다만, 그의 두 눈만은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의 말에 엘디스가 자신도 모르게 뺨을 실룩거렸다




"....아니, 제정신이야?
하... 정말로 싫어지내, 루기스"




그녀의 긴 귀는 자신이 들은 말에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엘프의 여왕이 자신의 기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피에르트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검은 눈동자의 마법사는 루기스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 차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아 두고 싶은 여왕과
함께 있고 싶은 마법사의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른다




"불안요소는 얼마든지 있지만
어짜피 저 쪽도 제정신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계속 응석을 받아줬다간
루기스는 더 엉뚱한 일을 벌이고 말거야"


"뭐, 부정은 할 수 없네"




아무 말 대잔치인 두 사람을 제쳐놓고
루기스는 볼을 느슨하게 하고
바로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있는 카리아를 바라보았다
숨은 쉬고 있지만 마치 죽은 것처럼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알류에노의 악의가
아직도 그녀를 붙잡고 놓지 않고 있다는 증거
카리아뿐 아니라 마티아와 필로스, 안 등도 마찬가지였다


루기스는 카리아를 살짝 건드린 후, 알류에노를 응시했다

이상하게도 그녀도 루기스를 응시할 뿐
스스로 움직이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시간이 그녀의 편인 것도 있었지만, 동기는 더 단순했다




알류에노는 루기스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작정이였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삼킨 후에야
비로소 그가 절망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상대의 모든 것을 떼어내려면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법

이 세상에서 가장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그 타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과 증오는 하나의 존재일지도




루기스는 알류에노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입술 끝을 울리고
벌떡 일어나며 마검을 겨누었다




"그럼 가볼까?"




루기스의 말에 응하듯
피에르트와 엘디스가 양옆에 섰다

알류에노는 그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볼 뿐이였다




"뒤를 부탁할게
더 이상 돌아보지 않겠어, 너희들을 믿고 말이야"




한 걸음을 내디딘 루기스의 등이 그녀들에게 보였다
늘 하던 경계가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엘디스와 피에르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꼬는 표정을 짓거나, 검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지 않았다




다음 순간에 루기스는 뛰고 있었다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아도 갈아진 마력은 변하지 않았다
밤이 자유자재로 세계를 날아다니듯
이제 그의 동작에 제한이란 없었다

해가 떨어진 이상 밤을 이길 적은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을 죽이는 밤

구릿빛 용이 말한 마력의 사용법이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알류에노는 눈 하나 깜짝할 사이에
바로 가까이에서 마검을 치켜드는 루기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가 인류로부터 더 먼 곳에 있음을 실감했다




"원전해제"



모든 것을 죽여버리는 원초의 악




그러나 알류에노는 루기스를 피하지도 맞서지도 않았다




"아 역시, 루기스 네가 오는 거구나"




오히려 알류에노는
루기스를 맞아들이듯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알류에노에게 그가 나서는 것은 뻔한 일
피에르트도 엘디스도 알류에노와 정면으로 마주하기엔 아직 부족했디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응원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루기스만 잡아버리면 그걸로 다 끝날 것이다
사랑하는 자에게 따지는 정도의 일
알류에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온다면, 그녀가 붙잡는 편이 빨랐다
이제 양자의 마력량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어른과 아이의 체급 차이 정도?




"술래잡기 하자고 했는데... 이러면 내가 이기는 거 아니야?"





알류에노는 행복을 한 몸에 받아들인 듯이 말한다
오래 기다린 끝에 사랑하는 자가 이제 손 닿는 곳에 있었고
배신당한 세계는 이제 자신의 수중에 있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런데도 루기스는 알류에노에게 들이대듯 말했다




"걱정 할 필요 없어, 나는 져도 상관 없거든"




그런 말에 알류에노는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크게 떴다
칼을 휘두르려는 루기스의 그림자에 숨듯이
피에르트가 만들어낸 만물을 소유한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알류에노는 순식간에 루기스와 그들의 의도를 알알챘다

즉, 루기스를 시선으로 끄는 미끼를 삼았다 이거지...


은은한 분노를 두 눈에 담으며
그래도 미소를 머금은 채 알류에노는 입을 열었다



"말했지, 루기스?
너의 어떤 속임수든 다 받아주겠다고"




마치 신이 사랑스런 자식에게
속삭이는 듯한 모습 같았다


루기스가 책모를 부리든 괴물이 어금니를 드러내든
설령 저주가 몸에 내리든 자신에게는 닿지 않는다

알류에노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과거 진정한 의미에서 아르티아는 세계를 제압했다
모든 대마와 마인을 엎드리게 하고 그들의 왕이 된 것이였다

그런 가신이 가지는 원전이 왕에게 닿을 리 없었다
거기에 어떠한 경험의 차이가 있었더라도 마찬가지

루기스는 자신의 가신
가신은 왕에 대적할 수 없다



이걸로 끝이구나



알류에노가 하나의 확신을 가진 순간
은색이 시야의 가장자리를 스쳐간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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