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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는 사형수 51화 - 지식과 미래의 조물주 - 본문
소리가 나는 방향은 욕실일 것이다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이니
샤워기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정말 유우코는 안에 있을까.
"들여다보려고?"
"엣"
놀라 되돌아 보니
미하루 선배가 경멸의 눈길을 보내면서
욕실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동급생이라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아, 아니에요!
혹시나 해서 소리만 들었을 뿐
알겠으니까 그런 눈 하지 마요!
제가 변태 같잖아요"
"변태"
"아닙니다"
정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없었기에
욕실을 뒤로 하고 나는 가까이에 있는 방 손잡이를 돌렸다
벽도 하얗고 여기가 어떤 방인지 명찰도 없기 때문에
들어가 볼 때까지 어떤 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
경이로움에 놀란 지금
무엇을 보여줘도 놀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걸 본다면, 놀라지 말라는 건 무리다
나는 방 한가운데까지 걸어나오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귀엽다...."
여기는 유우코의 침실
온 방안이 형형색색의 인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얀 세계에 완전히 눈이 익숙해졌지만 보통은 이럴 것이다
아니... 이래야 한다
잘사는 집은 다양하고, 잡다하거나 깨끗해야 한다
이 집에 와서 흰색 이외의 색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근처에 있는 인형을 집어서 뒤집었다
뭔가 설치되어 있진 않았다
그냥 인형이다
"그녀석, 이런 귀여운 것을 좋아했던가..........."
혼잣말하는 버릇은 없지만, 지금만은 용서해 주었으면 한다
입 밖에 내지 않으면 혼란을 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갭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인간미가 희박한 시즈쿠를 체포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되는 녀석이라고는 했지만
음... 이런 팬시같은 취미가 있었다니
어느 쪽인가 하면 내 안에서는
쿨한 이미지가 있던 유우코이지만
요 근래에 와서 여자아이 다움을 더하기 시작했
이미지 다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녀에게도 인간미가 있었다고 인식할 수 있던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미지 업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지만
장롱에 든 개인 소지품에 손을 댈 생각은 없다
섣불리 속옷을 꺼냈다가는
또 변태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는 방을 나와
왼쪽 대각선 맞은편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다시 하얀색의 세계를 물들이게 한 것은
엄청난 수의 선반, 거기에 담긴 장서(蔵書)들이었다
그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적어도 나는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최상단까지 손이 닿지 않을 것이다
사다리가 보이지 않아서
아마 유우코는 책장을 기어오르겠지
그렇게까지 공을 들여서까지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고 싶다
표지는 읽을 수 없지만 아마 일본어가 아니어서
손에 잡힌다 해도 어차피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수집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말하자면
실로 놀라운 것은 그 손질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였다
소중하다는 것은 사람의 척도에 따라 다르지만
적당한 선반에 책을 올려놓고 방치하기만 해도 책은 더러워진다
먼지든 누런 때든 말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책에는 손질이 닿지 않은 책이 하나도 없었다
확증은 없지만 냄새로 알 수 있다
전혀 먼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지식은 빼앗길 수 없는 재산이니까요"
당당히 나를 내려다보는 책장에 압도당한
나의 생각을 읽어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우코다
그러나 평상복 차림이 아닌
데님 반바지에 검은색의 탱크톱의
움직이기 쉬운 복장으로 갈아 입어 있었다
한여름과는 거리가 멀지만
밖은 덥기 때문에 계절에 맞는 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허리에서 엉덩이에
걸친 라인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배꼽티의 탱크톱은
그녀의 날씬함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시선을 빼앗긴 것은 배꼽이다
배꼽 주위의 형태가... 희귀하다고 하기보다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에로스를 자아내고 있어…….
더 이상은 변태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 그만두자
유우코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뭐, 뭐야 갑자기"
"어째서 이렇게 책이 많을까라는 생각을 하셨죠?
아니였다면 참견해서 죄송합니다"
"아, 맞긴 맞는데
너 이 책 다 읽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소유할 의미는 없겠죠
지식이란 자신에게 축적시켜야 비로소 지식이 되니까요
그 때까지는 그저 잉크가 발라진 종이에 불과합니다"
"신랄하게도 말하네, 보통 축적보단 쌓는다고 말하지 않아?"
"그런가요?
혹시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해도
나는 이 압도적인 책의 수 때문에
어떤 책장에 어떤 장르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여러 가지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이 책장에는 어떤 장르의 책이 있어?"
"모르겠습니다"
유우코는 책장에 눈을 돌리면서 눈동자를 빛냈다
"이곳은 지식의 보물고입니다
그리고 지식에 구별은 없는 법입니다
그냥 문득 눈에 띄는 책 한 권일지라도
여기는 만남을 제공하는 책장
설령 그 책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질문에는 걸맞는 대답을 해주겠어?
난 장르에 대해 물은 것 같은데..."
"장르별로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어느 책장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저라도 구별할 수 없습니다"
하아? 라고 언성을 높일 뻔한 것을
간신히 목구멍에서 억눌렀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유우코는 정리를 못한다거나
그런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마 '자기 나름의 정리법'이 있는 타입일 것이다
그런 유형은 옆에서 보면 대충 나열해 보이겠지만
그 사람 나름대로의 규칙에 따라 처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리라고 불리는 행위를
누군가에게 당하면 굉장히 싫어하는 법이였다
왜 이렇게 잘 아냐면
바로 호우스케가 그런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흠... 책은 괜찮아"
"그것 참 유감이군요"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방의 넓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우리 둘뿐
이 어색한 공간에 있을 수 없게 되어
얌전히 거실까지 도망치려 할 때, 그녀가 어깨를 잡았다
"무카이자카군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었으면 하는데
당신은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연애적인 의미든 뭐든 상관없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저를 믿으십니까?"
너를 믿냐고?
몇 번이라도 말하지만
나는 시즈쿠도 유우코도 모두 다 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쌍방이 쌍방을 적대시 하고
쌍방이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이상
신용은 커녕 의심만 커져갈 뿐이였다
그래서 쌍방의 일을 모르고
오직 나를 믿어 주는 미하루 선배 같은 인물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키리' 같은 위험한 이야기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아아... 그래, 물론 믿지"
"정말요?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아주 기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 믿음을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뭔가 꽤 딱딱한 말투인데... 무슨 일 인데?"
"연휴중에 저는 당신의 여동생 루아씨와 외출을 합니다
무카이자카군, 이번 시즈쿠의 습격은 불행의 전조입니다
오컬트 같은 것이 아니라, 당신과 거리가 있다면
제가 올 때까지의 사이에 살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게 됬습니다
아무리 저라도,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한순간에 달려 오기란 불가능한 법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 어떨까요"
시즈쿠는 나에게 덫으로서의 가치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유우코는 시간 차를 측정당해 위험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제 알겠는가?
쌍방의 말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어느쪽과도 신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을 넣으면
시즈쿠의 편을 들어 주고 싶지만
속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 쪽도 믿는다는 선택은 물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어느 한쪽을 존중하면 어느 한쪽을 짓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속셈은 모르지만
표면상으로는 선의로 행해지고 있는
충고를 짓밟는다는 것은 나는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어느 쪽인가의 생각이 확실하면 각오도 결정되지만
정반대인 주제에 시즈쿠도 유우코도
이런 점만은 확실히 비밀로 해 오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 거절하지 않으면 이 후의 예정이 틀어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거절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사실상 죽으러 가는 짓이나 다를 바 없는데
왜 그냥 거절하는지 이유를 추궁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시간이 생겼다고 할까
루우와 오랜만에 노는 시간이 생겼다고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비밀주의자인
유우코를 알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까
길게 생각한 끝에 나는 결국 수긍하기로 결정했다
"아, 알겠어, 나도 죽는 건 무서우니까
너의 옆에 있으면 절대 살해당하지 않겠지? 믿을게"
내가 되묻자
유우코는 미묘하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가슴을 폈다
"약속하겠습니다
제 옆에 있는 한, 무카이자카 군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고하는 유우코
눈을 깜빡이던 그 순간
그녀의 미소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면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별로 얼굴에 감정이 새기는 타입이 아니라는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을 나오기 직전, 확실히 나는 놓치지 않았다.
"...후후후"
숨길 수 없는 기쁨을 음미하는 유우코의 미소를...
오기와라 유우코라고 하는 여성은
의외로 감정이 풍부할지도 모른다
표정이 굳은것은 기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던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귀여운것일지도 몰라
만약 그런 그녀의 본모습이 남자친구만의 특권이라고 가정한다면
애인이 되는 것도 나쁜 선택사항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기야 나에게는 시즈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배신하는 짓은 하지 않지만...
그녀가 포용력만은 더 위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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