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3화 - 두 가지 소식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3화 - 두 가지 소식 -

개성공단 2020. 4. 27. 13:05

자치도시의 통치자 필로스의 손가락이

두 번 책상 위를 두드리자, 마른 소리가 났다

 

사무관은 그 행동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이 방, 필로스의 집무실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한결같이 같은 태도를 취했다

 

자치도시 필로스의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

 

트레이트란 대대로 이 도시를 다스려 온 사람들의 가문명

도시의 이름인 필로스와 통치자의 증표인 트레이트 가

대대로부터 이 두 이름을 계승해 온 것이였다

 

그런 이름을 가진 그녀에 대한 시민들이

어딘선가 지배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오늘날 필로스에 대해 주어지는 시선은

그보다 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기피하는 듯한 분위기가 섞여 있었다

 

이유는 그 출신과 경력에 있었다

현대 필로스는 원래 통치자인 트레이트 가문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에 불과했다

 

그것도 거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종기 취급을 받고 있었고

시민 대부분은 그녀가 필로스가 되기 전, 

그 존재를 거의 소문 정도로만 알고 있을 정도 였다

 

원래 그녀에게 통치자의 자리가 넘어 올리가 없었다

 

그녀에겐 열 명을 헤아릴 정도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본래 필로스의 이름을 이룰 맏형은 평범한 인간이긴 했지만

뭔가 특별히 큰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지지해 나가면 

도시를 잘 통치할 수 있을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통치자가 되는 일 따위는

아무도 절대 예상하지 못했고,

언젠가는 정략결혼이라도 당하겠지

하고, 그 정도의 인식만을 가지고 있던 것이였다

 

그녀가 성년의 나이를 맞은 날

다른 트레이트 가문의 인간이 변사하기 전까지는...

 

그것은 너무나도 섬뜩한 사건이였다

가족을 노린 암살이였다고 본다면

확실히 그것은 상급층 사이에선 다반인 일이였다

 

하지만 암살이란, 어디까지나 남몰래 누가 알 수 없게 하는 것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본때라는 듯이

자신 이외의 모든 자를 죽여 보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런 악랄한 자가 눈을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주를 섬기는 곳곳의 사람들은 아무런 의의 없이

유일하게 남은 그녀를 필로스로 승인해 버린 것이다

 

일체의 동요 없이, 모든 것은 정해진 일이라는 듯이

그 변사 사건 다음날에는 당연한 것 처럼

현대의 필로스 트레이트는 통치자로서의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섬기고,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늘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똑같이 죽지 않을까

그리고 그 죽음은 아무 의미없이, 내일이면 잊혀지지 않을까

 

"결정했습니다"

 

필로스가 몇 차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린 뒤 말했다

 

사무관이 간신히 굳은 몸을 일으키자

필로스의 오른쪽 눈에서 희마하게 빛나는 안경을 잘 볼 수 있었다

 

필로스의 오른쪽 눈은 타고난 것일까

약시인 듯, 전체적으로 흰색이 강했다

그 희귀한 눈빛과 교정을 위해 설치된 외눈 안경 또한

시민들의 필로스가 기피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흰 눈을 노려진다면

아무래도 인간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기 때문이였다

사무관의 쥐어진 손아귀에 살며시 땀이 흘렸다

 

그런 사무관의 심정을 모르는 듯, 당당하게 필로스는 고했다

 

"대성교군의 장수에게 사신을 보내라

서면의 내용은 내가 직접 적도록 하겠다, 이상"

 

사무관은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서라기보단,

오히려 반사적으로 나온 것 같은 그런 말이였다

 

"필로스님이 직접 펜을 잡으시는 겁니까?'

 

그 말을 하자마자, 사무관의 얼굴엔 아차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현대의 필로스는 자신이 행하는 일에

다른 사람이 간섭하는 것을 특별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말을 던졌다가는, 또 다른 질책을 받을 수 있었기에

사무관의 눈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사무관의 말도 당연했다

 

영주가 직접 펜을 들고 양피지에 잉크를 돌리게 하는 짓은

스스로 보다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그야말로 상위 귀족들이나 왕족들에게 행해지는 것이였다

 

그런데 일국의 장수에게 직접 편지를 쓰다니

그것은 보래 사무관의 일이였다

영주는 기껏 내용에 참견하는 정도...

 

주뼛주뼛하는 사무관은 필로스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하얀 한쪽 눈은 아무런 감정도 띄지 않고 있었다

 

"대성교의 군이라고 해도, 요점은 갈라이스트 왕국의 군입니다

대륙의 한 대국이고, 자치도시 필로스도 원래 갈라이스트의 영지

그렇다면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겠지요?"

 

그것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다는 듯 

필로스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사무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가볍게 절을 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역시, 어딘지 납득이 가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 같은 것이, 사무관의 가슴속엔 계속 남아잇었다

 

 

 

 

*

 

 

 

 

대성교 선발대를 이끄는 노장 리처드는 천막에서 허리를 추스리며

두 가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름진 뺨이 살짝 그림자를 띠고 있었다

 

이제 며칠만 행군을 계속하면 전쟁터에 걸맞은 평야가 나온다

문장교의 군세도 분명 수적으로 열세인 이상, 그곳으로 나오겠지...

하지만 리처드는 어떤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

평야로부터 조금 떨어진 가도 근처에 진을 치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약간의 술을 입술에 부팅고 있으면

군인 특유의 조용한 발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마, 소식의 하나는 도달한 것 같군

 

"리처드 대대장, 자치도시 필로스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부관 네이마르의 변함없는 차가움을 느끼는 목소리에

리처드는 목청을 울리며 양피지를 받아들였다

 

문면은 매우 담백했다

적어도 리처드에겐 이상하게 예의가 갖춰진 문장보다

호감이 가는 글씨였다

 

내용은 상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성교의 군을 환영하지만, 협력에 대해선 회담을 실시하고 싶다는

이 쪽의 요구를 어떻게든 덜 받으려는 그런 내용...

 

아무 문제 없군

오히려 갈라이스트 왕국과 자치도시 필로스의 과거를 생각하면

빌붙일 셈도 없이 반발할 우려도 있었는데 말야

이 정도 내용이라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이다

 

오히려 영주가 직접 글을 썼음을 

보여주는 도장까지 찍힌 것은 예상 이상이엿다

하얀 턱수염이 흔들리며, 리처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주가 글을 보내다니 의외군

고작 대장격인데 말이야

 

리처드은 손아귀에서 술병을 놓으며, 주름을 깊게 했다

그 표정은 글쎄, 이 서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표정이였다

옆에서 부관 네이마르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눈꺼풀을 깜박이고 있었다

 

갈라이스트 왕국의 군사기구는

상위와 하위, 크게 두 조직으로 나뉜다

 

상위 조직에 속하는 것은, 상류 귀족의 인간들이 그 몸을 두는 군대

이들에게는 호국관이나 집행관의 칭호를 자칭하는게 허락됬고

상응하는 권한과 국가가 길러낸 정예를 거느릴 만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에 비해 하위조직에 속하는 것은

하급귀족이나 서민 출신들이 소속된 부대였다

이 하위조직에 속하는 자른 비록 엄청난 공적을 올리려고

영웅과 같은 빛을 발하려고 해도, 대장격 이상으로 임명되지 않아다

 

거느릴 수 있는 병사들도

국가의 정예가 아닌, 신병부대나 용병같은 자들...

 

마찬가지로 기사단 역시 그 품격에 따라

상위 조직이나 하위 조직 중 하나로 분류 되었다

 

군 내부에 상위, 하위간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는 탓에

대대장이라는 계급을 얻어도, 하위조직에 속하는 탓에

업신여기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필로스의 영주는 어쩐 일인지, 

그런 대장 상대로 친필 편지를 보내왔다

리처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입 속에서 가다듬었다

 

"부관, 서기를 불러라

당장 서면 한 통... 아니, 두 통을 쓰도록 하겠다

이제 녀석들도 가까울 테니 말이야"

 

네이마르는 그 말을 듣고 심히 지겹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당신의 몸종이 아닙니다만, 리처드 대대장"

 

네이마르의 눈은 가늘어지고, 목소리는 천천히 새고 있었다

음색은 정중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자네는 부관이지 않나?

네이마르, 부관은 부장의 말을 듣는 거야"

 

리처드는 네이마르의 모습을 어딘가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귀에는 아까 네이마르의 발소리와는 정반대인

어딘가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아마도 기다리던 두 번째 소식도 겨우 도달한 것 같았다

리처드의 눈이 유쾌한 듯 일그러졌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