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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5화 - 보내온 군사(軍使)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5화 - 보내온 군사(軍使)

개성공단 2020. 4. 27. 14:48

유사시 군사라는 역할은 일을 어떻게 성공시켜도

공적을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음유시인의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험만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높으니

단적으로 말하면, 상당히 수지 맞지 않는 임무였다

 

왜냐하면 군사라는 것은 전령처럼 자기편으로만 단순히 일을 고하는 것만 아닌

적군 속에 단신으로 무장없이 다니며, 

그리고 자군의 의도를 오해 없이 전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일 수도 있을 것이고

최악의 서신을 보낸 것만으로도, 본보기로 가슴에 칼을 꽂힐 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전장에 나가 창을 휘두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는다면,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알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지 한 통 보내고 죽는다면,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대성교군에서 문장교군으로 서신을 안고 달려간 군사는

끝없이 그런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수지가 안맞아. 다소간 보수를 받을 수 있다곤 하지만

죽으면 그것도 그냥 푼돈이야

가족이 있다고 해도, 과연 가족에게 이 돈이 갈 수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어

그래서 군사라는 위험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가족도 연인도 없는 나 같은 외로운 제비 같은 무리 뿐인거지

 

군사가 품은 그 마음은 문장교 진지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더욱 크게 부풀었다

문장교의 진지 내에는 묘하게 귀가 길고

간과는 어딘가 다른 외모를 가진 엘프들이  우글우글 지나가고 있었다

문장교에 엘프가 끼어있다곤 들었지만, 이토록 자유롭게 돌아다닐 줄이야

 

무엇이든 엘프라는 패거리는 사람을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심장을 먹는다던가, 사람에 저주를 내려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거나

어느 것도 섬뜩한 이야기 뿐이였다. 발끝이 아무래도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에 나는 서신을 전하려고 온 것이였다

군사는 심장이 묘하게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역자, 악덕을 좋아하는 자, 배신자 루기스

 

문장교의 거두인 마녀 마티아와 통렬하게 회자되는

악의 상징인 그 남자

 

서장의 내용에 짜증을 내기라도 하면

그 칼날이 자신을 내려칠 것이 뻔하기에

부디 분노의 화살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군사는 가슴 속에서 대성교의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

 

 

 

 

언쟁이 서로 가치 있기를 바란다, 대대장 리처드 퍼밀리스

 

서장의 맨 끝, 마치 휘갈기듯이 새겨져 있던 그 서명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가만히, 몇 번이나 잉크 얼룩을 응시했디

 

철자가 틀린게 아닐까, 아니면 동명의 다른 사람

아니면, 생이별한 형제라든가

그런 바보 같은 망상을 머리에 떠올린 채

서명의 한글자, 한글자를 씹듯이 응시해 갔다

 

안돼, 아무리 나를 속이려고 해도

이 난잡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서몀은 낯이 익어

이런 글씨체를 즐겨서 쓰는 리처드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 밖에 없어

 

그러나 성을 썼던 것을 오랫동안 싫어했었는데

이제와서 마음이 변심한 것인가?

 

"리처드 할아범인가.... 그리운 이름이군"

 

나는 대천막 속에서 나지막하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떤 장수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

서신을 받아든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묘하게 내 목소리만 천막에서 울리고 말았다

 

성녀 마티아나 문장교군의 장성들이 군의탁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성교의 서신을 받은 것이였다

서신을 받은 연락병이 손안에 단단한 양피지를 들고 헐떡이며 

대천막으로 들어 왔을때, 적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큰 일이라도 벌어진 듯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딱히 별 말은 없었다

대성교군 장수가 군사를 통해 서신을 보내왔다는 것

근데 그 배송지가 왜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뭐 연락병이 다소 동요하는 것도 이해할 만 했다

군사가 일부러 찾아와서 편지를 전하러 왔다는 것은

그만큼 적군이 가까이 있다는 증거였기에 말이다

이제 서로의 군세가 그 사이에 기어들고 있다는 무엇보다 좋은 증거였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적이 가까이 있다는 실감이

어떤 형태로 주어지든 간에, 나의 심장에 묘한 통증을 주었다

하물며 전장에 익숙하지 않을 신병에게

그것은 동요하지 말라기엔 충분히 무리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야, 루기스?"

 

곁에 앉아 있는 엘디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말했다

커다란 눈동자가 흥미로워보이는 색을 띠고 있었다

 

"아는 사람? ....아, 나의 스승이야, 어린 시절 여러모로 신세를 졌어"

 

근데 그 자가 이제 대성교의 군사를 이끌고 있다니

인과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신세라면 졋었다

마른 개에 지나지 않았던 나에게

뒷골목에서의 생활방법, 식비를 어떻게든 버는 방법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법, 그것을 모두 알려준 것이 이 할아버지다

 

일찍이 갈라이스트 왕국의 어둠 속에서

내가 어떻게든 모험자로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리처드 할아범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임은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가르쳐주었던 내용이 완전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어쨋든 리처드 할아범 자체가 악랄하고 포학을 벗 삼아

약자를 잡아먹는 그런 인간이였다

그런 인간에게서 온전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리가...

 

그러니까 내가 할아범에게서 받은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과연 햇볕이 들지 않는 뒷골목의 예절뿐

듣는 인간에 따라선, 그 자리에 침을 뱉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는 리처드 할아범을 스승으로 삼은 것이 

실수였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바로 과거의 나를 상징하는 그런 인간이였다

 

나는 눈꺼풀을 무겁게 하면서, 과거의 추억에 잠시 잠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문득 대천막 안의 공기가

약간 딱딱하고 무거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기스님, 그 스승님이 뭐라고 전한겁니까?'

 

안이 공기와 마찬가지로 딱딱함을 띤 목소리로 말햇다

표정도 목소리도 어딘가에 이끌리듯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듯한 기색이 있었다

뭐야, 도대체 왜 이래?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약간 주변의 불가사의한 모습에 어깨를 움츠리고

눈섭을 일그러뜨리면서 말을 흘렸다

 

"나랑 얘기하고 싶다는데?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 옛정을 떠올리고 싶다나봐

아무래도 할아범도 나이를 먹어선지 정에 약해진거 같아"

 

목청을 크게 울리며 말했다

 

옛정을 떠올려? 이 할배가 그럴리가 없지

이런 이유로, 적군에 군사를 보낼리는 없을 것이다

 

아, 뭔가 소름이 돋는거 같군

이 악랄한 할배가 움직이려고 한다니...

또 뭔가 좋지 않은 그림이라도 그리려는게 틀림없군

 

리처드 퍼밀리스란 그런 성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였고

질서나 정의라는 말이 놀랄 만큼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였다

그리고 그런 할아범의 성질을, 나는 놀랄만큼 잘 알고 있었다

 

안과 마티아가 내가 구겨 넣은 양피지를 바라보며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방책을 짜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직도 대천막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명령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던 연락병에게 말을 던졌다

 

"연락병, 대성교 군사에게, 이 루기스가 수락했다고 전해주세요

오랜만에 리처드 할아범의 얼굴 좀 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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