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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7화 - 소년의 동경과 최후의 명령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7화 - 소년의 동경과 최후의 명령 -

개성공단 2020. 4. 30. 16:23

전장의 중앙부, 그 최전선

해질녘의 붉은 빛으로 볼을 태우며

문장교 병사들은 발을 또 한 걸음 내딛었다

전선이 자신들의 가슴에 있을 수 없는 상쾌감을 만드는 것에

가슴을 녹일 정도의 쾌락을 만들어냈다

 

생명의 위기를 옆에 두면서

남의 생명을 해치는 이 쾌감

전쟁터의 매력이란 곧 이것일 것이다

힘으로 해서 미운 적을 굴복시키는 행복감...

 

문장교의 최전방, 그 중에서도 돌출적으로 적에게 송곳니를 세우는 인간은

병중에서도 스스로 지원한 자들이였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나이를 먹은 사람도 있었다

타오르는 종교적 사명감으로 지원한 자, 돈을 더 받기 위해 지원한 자

나이도 지원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였다

 

단지 공통점이 단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목숨이 전쟁터 속에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맹세한 자들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년병이라고 해도 무방할 

어린 나이를 가진 헤이스라는 소년도 지원자 중 하나였다

 

소년병이라 해도, 처음으로 창을 잡아 본 것은 아니였다

어린 나이에 문장교 병사의 수습책으로

산적을 몰거나, 거리에서 폭행을 일으킨

주정꾼을 진압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일을 해내도, 아직 수습이라 큰 돈이 들어온 적은 없었고

본업인 병사로서는 비웃을 법한 하급직 이였지만

헤이스에겐 충분한 경험으로, 병사로서는 조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기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그에게 처음 잇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이 서니오 전투에서 헤이스는 사람을 처음 죽였다

 

철창이 사람을 관통하는 감촉이란 것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기분 나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감촉도, 세번째가 되엇을 무렵에는 익숙해졌다

 

철창이 전우를 쉽게 잡아먹는 광경에

몇 번인가 사타구니 아레에 액체를 쏟았었지만

그 감각에도 곧 익숙해지고 말았다

코를 찌르는 철의 감촉에도, 눈 앞에 전우의 살이 튀기는 일도

뼈를 짓밟는 소리도 모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분명, 이러한 광경과 감촉에 익숙해지지 않은 자들만이

죽어가는 것임을, 헤이스는 그런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익숙해지는게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이 제정상인지 미친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하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헤이스는 계속해서 창을 휘둘었고

다시 부드러운 것을 관통하는 섬뜩한 감각이 팔을 덮었다

 

소년병 헤이스가 최전방을 자원한 이유는

돈도 명예도 아닌, 단순한 소망 때문이였다

 

영웅과 그렇게 불리는 자는 

과연 어떠 존재인가, 그 모습을 한눈에 보고 싶었다

 

어짜피 전쟁터에서 죽게 비참하게 될 거

죽기전에 한번 쯤이라도, 동화책, 전설 속에서 나오는

빛나는 영웅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적대적인 것 모두들 부수고 내동댕이 치는 강인함

백성을 이끌고, 모두를 사로잡아 버리는 인망

눈부신 영광...

 

헤이스는 어린 시절에 그 모두를 가진 영웅이

언젠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것임을 문장교였던 부모에게 들었다

소년은 그러한 전설을 여러번 들으면서

어느새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헤이스의 부모는 영웅에게 구원받는 것은 물론

영웅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고

나중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영웅을

저주하고 욕하며 개처럼 죽고 말았다

 

그런 부모와 달리 운이 좋았던 걸까

헤이스의 앞에 마침내 영웅이 나타났다

 

영웅 루기스, 교역도시 갈루아마리아, 공중정원 가자리아

용병도시 베르페인을 함락시키고, 성녀 마티아에게 황금문장을 받은 영웅

술집에서도 거리에서도 그는 영웅임에 틀림없다고 불리고 있다

 

정말 그럴까

헤이스에게는 아무래도 루기스란 인간이

영웅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했다

그 어린 눈에는 회의적을 가진 눈이 짙게 배어 있었다

 

사실 그 감정은 회의라기 보단 화풀이에 가까웠지만

 

진정으로 모든 것을 구원하는 영웅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주는 빛나는 자라면

왜 자기 부모가 죽기 전에 와주지 않았을까

비참하게 죽은 부모는 영웅에게 버림당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너무 불쌍하다

 

헤이스의 가슴속에는 영웅에 대한 회의와

루기스가 이뤄낸 위업에 대한 동경

그 두 가지 감정이 지금도 파도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서 그 존재를 보고 싶었다

 

최전방 말에서 내려서 바로 근처에서

보라빛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 영웅 루기스의 모습

가까이 보면 볼 수록, 루기스의 행동 하나하나는

헤이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날카로웠다

 

그 보랏빛의 불빛에 대성교 군세는 겁먹은 듯, 뒷발로 물러섰다

 

그 때였다

 

"너, 꽤 젊구나"

 

영웅 루기스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헤이스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울러 펴지는 만성 속에서, 그 말은 묘하게 귀에 남았다

 

순간 그 목소리가 누구를 자칭하는지 헤이스는 당황했지만

곧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짜피 소년병은 자신 외엔 없었으니까

 

루기스는 뺨에 묻은 피를 닦는 일조차 없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앞으로 시선을 던지며,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헤이스는 당연히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필사적으로 찾아 해멨지만

혼란스러운 머리에선 재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그저 네,하고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가슴속에는 묘한 민망함과 희색의 감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루기스는 진정이라고 영웅일까, 라고 의심하고 있었지만

헤이스 속에는 루기스가 해낸 위업에 대한 동경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소년의 마음 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루기스는 헤이스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짧게 말하고는

소년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헤이스는 입술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헤이스, 부탁인데 전령을 맡아줘

본진의 마티아에게 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잇어"

 

 

 

 

*

 

 

 

 

 

루기스는 그 소년병의 모습이 멀어지는 기색을 느끼며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바보같아도 유분수지

지금까지 산산히 사람을 보내놓고, 사지로 향하게 했을 텐데

그 소년이라고 해도, 전쟁터에 나간 이상 죽을 각오조차 했을 텐데...

 

그런데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나게 하자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무 의미도 없는 자기 만족이거나

혹은 자기도취자의 폼잡기라는 거겠지

 

내장이 조여질 정도의 자기혐오에 눈이 가늘어지고, 뺨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어찌됐든 전령은 필요했다

가까운 군사를 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고

문제가 있다면, 다소 자의적인 선발이 있었던 것 뿐...

 

나는 다리를 달리게 하고, 공중에 원을 그리며, 적병의 손목과 배를 갈랐다

검붉에 물든 시야 끝에 해질녘 햇빛에 비친 적 본진이 보였다

몇 번인가 적군의 배를 가르면, 손에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꿈깥은 이야기가 아닌, 확실히 손에 닿을 만한 장소에, 있었다

 

그곳은 영락없는 사지임은 틀림없었다

발을 디디면, 복병이 희희낙락하게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사지

해질녘의 붉은 빛에 비친 적본진은 묘하게 예뻐 보였다

 

"적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루기스 님?"

 

내 주변에 붙어 있던 병정 중 한명이 그렇게 말했다

아직 죽을지도 모르는 지평에 있는데

그 목소리는 묘하게 들뜬 것처럼 들렸다

전쟁터의 열이나 광기라는 녀석은 악주 이상으로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할 일은 그 열을 식지 않게 해 주는 것 뿐인가

 

숨을 작게 한번 내쉬고, 눈을 강하게 떴다

내 주위에 붙은 고작 백명의 병사

죽어도 상관없다고 최전방에 배치되는 돌격부대에

지원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모두 잘 듣거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명령이다!"

 

나의 입술이 무너지고 일그러지면서

뺨에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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