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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9화 - 만세의 기록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9화 - 만세의 기록자 -

개성공단 2020. 4. 30. 18:13

보라빛이 불꽃이 되어 전장을 춤추었다

보검이 휘두를 때마다 그 혁혁한 위용이 적병을 물리쳐 갔다

은빛 칼날에 짙은 보라색 선을 그은 '영웅을 죽이는 자'와

조명을 새긴 칼날이 미소짓듯 소리를 냈다

 

훌륭하다, 이것이야말로 영웅이며, 나의 소유자다

아니, 이제 우리는 소유자와 혼합된 존재이므로

우리 소유주, 라고 하는 호칭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뭐, 상관없으려나

 

루기스는 짐승의 먹이를 뜯어먹는 것처럼

주인 루기스는 군사를 참획했다

내 몸이 공중으로 일섬을 그릴 때마다

피와 육신과 뼈가 바람에 노출되었다

 

아아, 참으로 행복하다

이 시간은 행복한 시간임에 틀림없어

우리는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소유자는 자신이 원하는 영웅으로 가는 길을 매진한다

 

만일 그 길이 고난에 덮여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부수어 보이겠어

주인 발밑의 조약돌마저 털어 보이겠다

 

검은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며, 생각했다

주로 경험이 부족하다면, 자기 안에 쌓인 지식을 훌려주면 된다

힘이 부족하다면 자기가 그 손끝을 메우는, 새로운 손가락이 되면 된다

검의 보라빛이 깜박거리듯 빛나며

숨이 막힐 듯한 궤도가 전쟁터에 떠올랐다

 

검은 지금까지 수많은 영웅을 소지자로 삼아왔다

별을 바치는 자, 승리 자체로 불리는 자, 영광을 스스로 버린 자

재주가 다양한 자들이 있었던 수 많은 용사들과 검은 걸음을 함께했다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이 보검을 손에 들고, 그 길을 개척해 온 것이다

 

말하자면 이 몸은, 만세의 기록자

역사의 영웅들과 함깨 해왓으며, 그 재능을 몸에 새긴 물건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자들의 궤적, 재능의 형태가

모두 이 몸안에 있었다

 

주로 필요하다면 일찍이 영웅들이 더듬어 왔던

궤도의 검성을 얼마든지 가르쳐 주겠다

서투른 것이 좀 있겠지만, 억지로 새겨 넣어 주겠다

 

뭐, 지금 나는 소유주 루기스와 함깨 있다

이제 나의 몸은 녹은지 오래이기에, 그가 나도, 내가 그다

 

그의 앞엔 적병이 되게 많아 보였다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소수의 병사로서는

그 모든 것을 헤쳐나가기란 매우 어렵다

소유주의 계책은 너무나도 극단적이며,

보통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선택하지 않는 수단이였다

 

주인은 손을 뻗어, 손가락을 베이고

다리를 가시밭으로 던질 생각인건가

 

하지만, 뭐, 주인 루기스가 선택한거라면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그것을 더 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어짜피 나는 길을 여는 데 사용되는 도구

지금 나는 그 주인 자체이지만,

그 본진을 일찍이 신들, 커다란 마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깎고 만들어낸 도구 일 뿐이다.

그러므로 주인님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이다

 

자신의 힘에 기대려 하지 않았던 주인이

이제 나를 의지하며, 걸음을 옮기려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영웅을 죽이는 자라고 새겨진 이름이

번개를 이끌어서 보랏빛을 흩뿌리는 듯 했다

 

루기스의 몸이 또 한 걸음, 또 한걸음 적진을 찢어나갓다

그것은 뭔가 새로 태어난 짐승이 흉포한 송곳니를

그저 휘두르는 것 같은, 지독한 모양새였다

 

 

 

 

*

 

 

 

 

리처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벌인 것 같은 행동에

역시 녀석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냐고는 물을 필요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전쟁터의 모습을 보면 답은 나왔기에

 

아무리 전선이 무너지고 있다 해도

대성교 병사들은 굽이굽이 훈련을 받은 정규병

설사 보기 흉한 모습이라도

창을 내밀고, 돌진을 반복하는 멧돼지를 물리칠 정도는 되었다

 

저 꼬맹이는 멧돼지 마냥 돌격을 가해 죽을 작정인가

 

"몸 좀 아끼지 그러냐... 저건 대체 누가 가르친거야?"

 

리처드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은 단 한번도 생명을 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을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 한때 명성과 갈채를 받아봤다해서

그저 죽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을 가졌어도, 아무리 무엇을 위해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한결 같은 것

 

그렇다면 목숨을 거는 행위는 어리석기 짝이 없다

손끝을 움직이지 않고, 남을 사지로 내쫒는 대도

이익만을 가슴에 품는. 그런 삶의 방식이 좋을게 뻔하다

 

편향된 생각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리처드 만큼은 그 생각으로 살아왔었고

이제와서 그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봐, 네이마르"

 

리처드는 말 위에 탄 채, 고삐를 잡아당기며 부관을 불렀다

그리고 루기스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흰 수염을 살짝 흔들었다

 

네, 하고 그렇게 말을 되받은 네이마르의 목소리는 상당히 딱딱했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군의 진격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였다

비록 루기스의 자휘행위라고 할 수 있는 돌격이

그렇게 쉽게 자군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모 처럼이니 배우도록 해봐

전쟁터에선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

더 오래 숨을 쉬는 격이니까 말야

이 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게 해주지

 

"어떻게 생각해"

 

네이마르는 그 말에 순간 눈을 깜박이며 침을 삼켰다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은 필사적으로 말을 찾는 듯 했다

 

네이마르는 입술을 흔들며 말했다

 

"좋게 말하면 용맹하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무모한 돌진에 불과합니다"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의 주름을 깊게 했다

허리춤에 매달린 칼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저걸 흉내낼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자기 목숨을 저울질 하는 것은, 성실한 전술의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의 합리이긴 했다

보통은, 설령 그것이 최고의 올바른 선택이라고 해도

자신의 목숨을 잃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었...

아니, 오히려 그러한 선택지를 떠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제자는 그것을 떠올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실행하고 말았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였다

 

안 되겠군

 

리처드는 무게감이 더해진 눈꺼풀을 내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제자의 고함이 그의 귓전을 때린 것 같았다

 

루기스가 나쁜 짓을 하는 재주는 있지만

그 본질은 평범한 인간이였다

노력과 연구를 쌓아도 재능에 미치지 못하는

오히려 필사적으로 그 몸과 정신에 상처를 입히면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고작인, 조금 비뚤어지기만 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인간답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 인간답지 않게 싸우는 방법을 계속하면 어떻게 될까

분명, 미치광이의 행동을 모방한 인간이

역시 미치광이가 되는 것처럼

인외의 행동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그것은 인간이 아니게 된다

 

물론, 보통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기 전에, 정신도, 육체도 모두 덜컹거리며

깨지기 마련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루기스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평범했을 것이다

그 몸도 강인했던 기억이 없다

리처드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면서, 전장을 응시했다

 

"부관, 네이마르, 너의 역할을 주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병사의 지휘를 맡아라

복병은 적 본군의 옆구리를 뚫을 때나,

혹은 자군이 뚫렸을 때의 병사 구출에만 사용하거라"

 

뭐, 부담없이 해봐라, 책임은 져 주겠다

리처드는 그것만을 말하고는 자신의 군마의 고삐를

세게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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