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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0화 - 대악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0화 - 대악 -

개성공단 2020. 4. 30. 19:39

병사의 피와 뼈의 소용돌이 속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갈 때마다, 아군 병사가 목숨을 잃어갔다

내가 한 걸음을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였다

이곳은 지옥 그 자체

 

그러던 중, 늙어 보이는 한 얼굴이

이 쪽으로 루기스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틀리지 않았던 것 같군

적어도 나의 행동은 할아범의 생각 밖에 있었던 거야

 

만약 모든 것이 할아범의 손 안에 돌고 있다면

할아범은 결코 겉으로 얼굴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긴 커녕, 어딘가에서 얼굴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겠지

 

아무튼 할아범이 지금 전선에 모습을 보였다

 

나는 피로 약간 더러워진 시야 속에서, 입술을 뗐다

폐가 움찔움찔한 것처럼, 튕겨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여, 할아범, 목은 좋은 술로 잘 씻고 있었어?"

 

"멍청한 놈, 몇번을 말하냐, 내가 술로 씻는 건 뱃속 뿐이야"

 

적장 리처드는 대성교 병사를 지나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가봇이 해질녘에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솔직히 말하면,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든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이 벽을 넘어가는 일만 남았다

나는 삐걱거리는 다리를 살짝 벌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할아범, 언제까지 당신의 가르침에 막혀 있을 순 없어"

 

그래, 언제까지나 할아범의 가르침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나는 평생동안 나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넘어야 할 것이다. 그것밖에 길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보검을 어깨에 얹듯이 잡고,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도 적은 말 위, 이쪽의 검은 쉽게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여기서 죽여야 한다

장수들의 목이 날라가면, 그것만으로 병사의 사기는 쉽게 꺾일 것이다

잘하면 복병 또한 그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

문장교가 승전보를 얻기 위해선

복병은 물론이고 리처드의 심장을 멈출 필요가 있었다'

 

주위의 대성교병들이 아직 저자세로 창을 겨누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리처드를 죽일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일 것이다

 

나는 무릎에 힘을 주고 한숨을 골랐다

뒷다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그 아픔의 목소리가 새어 나올 것을 어떻게든 누르면서

지그시 눈을 부릅뜨고 덤비는 때를 재었다

 

리처드의 주름이 그림자를 띠면서, 깊고 깊게 새겨졌다

그 표정은 뭔가 걱정마저 감도는 듯 했다

 

"이제서야 길이 막막해진거냐, 루기스"

 

그 리처드가 내뱉은 목소리는 언제나 가볍고 

어딘가 해학적이 느낌이 드는 그런 목소리가 아니였다

왠지 장엄함마저 느끼는 장군으로서, 

그리고 대성교에 임명된 사람으로서의 목소리일 것이다

루기스에겐 처음 듣는 목소리와 말투...

 

주위에 긴장된 분위기가 감도는 걸 알 수 있었다

리처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대죄인 루기스, 

대성당에서 임명한 12대 용사, 리처드 퍼밀리스의 이름 아래

너를 대악으로 판단한다. 이제 네 죄는 씻을 수 조차 없다"

 

리처드는 그 무거운 목소리를 주위 일대에 울리며 말했다

 

"병정들이여, 정의와 신의 가르침은 우리의 검 아래에 있다

두려움 없이 악을 물리치고, 우리가 절대 정의를 증명하리라!"

 

눈이 일그러지네, 젠장할 좋은 전개는 아닌 것 같은 걸

 

리처드의 큰 목소리에 대성교 병사들이 눈동자 속에 

신앙의 열을 돠첮어 버렸다

그들의 창을 쥔 손은 조금 전같은 저자세가 아닌

강한 의지를 띄기 시작했다

'

분명, 리처드의 한마디 명령이 떨어지면

틀림없이 대성교 병사들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덤벼들 것이다

지금 그들이 아직도 그 발을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그저 후퇴를 명령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뿐...

 

나는 깊고, 아주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지금 주위 병사들이 창을 세게 들이받으면

돌출된 돌격부대 수십명은 순식간에 죽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겠지

 

나는 보검을 쥔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주위의 병사들에게 작은 소리로

 

"나에게 5초간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겠어?"

 

그것은 그들에게 곧 죽으라고 하는 말과 같았다

자신들의 몸을 내놓고 시간을 벌어달라고 하는 것

왠지 이기적이고 자기혐오마저 생길 것 같은 말이였지만

설령 지금 아군의 등에 창을 찔러도

나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병사들은 내 말에 삼켜진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창과 검을 겨누었더

너나없이 그 몸에 상처와 더러움을 짊어지고 있었고

무사한 것들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었다

 

신기한 일이다

어찌 이리도 모두 자기 목숨을 내팽개칠 수 있는건가

나도 포함해서, 아무래도 이유를 모르겠어

 

나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적병이 우리에게 덤벼들기 직전을 노렸다

리처드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루기스, 여기서 인간대로 죽어라

전병력, 대악 루기스의 목을 베어라!"

 

병사의 포효로 울려퍼지는 전장에

나 또한 다리를 휘저으며,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의 눈은 그저 나의 스승, 리처드만을 포착하고 있었다

 

 

 

 

 

*

 

 

 

 

문장교 본진의 대천막 

성녀 마티아는 필사적으로 손가락 끝의 떨림을 억제하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 앞에는 피폐한 나머지 무릎을 꿇은 전령병의 모습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은 마음껏 휴식을 취하세요

전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물과 입에 넣을 것을..."

 

그러면서도 아직도 눈에 전쟁터의 광기를 머금은

소년병에게 휴식을 명했다

그냥 뒀다간 그 경련된 손끝을 안은 채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버릴 것 같았으니까

 

소년병과 파수병들이 대천막을 떠난 것을 보고

비로소 마티아는 이를 크게 달달 떨었다

등뼈에 불꽃이라도 걸린 줄 알 정도의 감정이

마티아의 전신을 달구고 있었다

 

그래, 알고 있었어, 그는 그런 사람이였으니까

 

소년병이 가져온 정보는 간단하게 전선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리고 루기스가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전한 것

단지 상황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도, 어떻게 하라는 것도 아니였다

그것이 불필요하게 마티아의 배 밑바닥을 타오르게 했다

 

긴급하다면, 도움이라도 청하면 될 텐데

루기스의 태도는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듯

조금은, 의지하는 것을 기억하겠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면, 이것밖애 취할 수단이 없었다는 건가

 

마티아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것은 화나거나 분개하는 것이 아닌

그저 아쉬움과 자성이 입술에 묻어날 뿐이였다

 

그 루기스의 성질을 생각하면, 최전선에 닿았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위급한 일이 일어난다면, 분명 그는 목숨조차 내 던지고 말 것이다

그럴 위험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전선에 두어야 했다니

마티아는 그러한 사실 때문에, 눈을 일그러뜨렸다

만약 자신이 성녀로 성숙해서, 마음것 힘을 떨쳣더라면

그에게 과대한 부담을 주지 않았을텐데

자신이 더 좋은 계책을 짰다면, 그를 위험 속에 처넣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아, 분하다, 이건 모두 나의 역부족한 탓이야

분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마티아의 심장을 두드린 것은

하나의 자학심

 

게다가 나는 그에게 어리광부리고 있던 것 같아

혼자서 사지에 임하는 듯한, 제멋대로를 용서해버리다니

 

마티아는 루기스가 전장에 향할 때마다, 세세하게 지시사항을 내려놓았다

특히, 결코 목숨을 잃을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무모하다고 판단된다면, 병사를 물러나는 것 조차 선택에 넣어두는 것

몇 번이나 그에게 확인 시켰을 터였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잡으면서, 몇번이나 몇번이나...

 

그런데도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

마티아의 가슴속에는 루기스의 안부를 걱정하는 초조함과

동시에 형연할 수 없는 열이 그슬리고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마티아 자신조차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안, 역시 저도 전쟁터에 나가겠습니다

말을 준비하도록 하세요"

 

전쟁터에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뿔뿔이 주위의 반항을 받아

대천막 안에서 몸을 밀어넣고 있던, 문장교의 심장 마티아

 

그녀의 귀에 잘 남는 목소리가, 문장교 진지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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