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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1화 - 5초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1화 - 5초 -

개성공단 2020. 4. 30. 20:17

용기있는 자, 무엇보다도 강하며,

약한 자를 도와 불량한 자를 부수는 자

신의 총애를 받은 자

 

할아범은 분명 그 칭호를 받았다

그 칭호는 대성교의 세례를 받은 자 만이

받을 수 있었던 두 번째의 이름이였다

 

분명 대성교가 마지막으로 용사를 배출한 것이 수십 년 전이었을까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할아범, 리처드 퍼밀리스가

일찍이 용사로서의 칭호를 부여받은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나이도 얼추 맞긴 한데, 믿고 싶진 않앗다

 

일단 용사로 뽑히는 자는 도덕과 정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리처드 퍼밀리스라는 사람을 보면, 상당히 정반대의 인간이였다

과거 대성교사제나 교황의 눈은 이상했던 것일까

 

아니면 리처드 퍼밀리스도 예전엔

그렇게 불릴 정도로 선량 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게다가 지금은 리처드 퍼밀리스가 용자이건, 상관없다

어떻게 발버둥치든 그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고

여기서 그 목을 베어야 한다는 사실만이 전쟁터에 있었다

 

적병이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세로

창을 내밀고 이쪽으로 돌진을 거듭했다

은빛 창끝이 반짝이는 살의를 풍기며, 노을의 붉은 색을 반사했다

 

금세 주위의 문장교 두 세명이 시체로 바뀌었다

그들이 창을 그 배에서 꽉 껴안으며

심장의 고동을 멈춰나가는 기색이 있었다

 

그 농밀한 냄새 속에서 창살을 헤쳐가며, 

발을 내딛기 위해 대지를 쳤다

 

문장교병의 희생을 뒤로하고

양손으로 보검을 움켜쥔 채, 리처드 퍼밀리스의 발 밑으로 뛰어올랐다

아직 적은 말 위에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보검을 휘두른다 해도

도저히 닿는 것이 아니였기에

 

5초, 5초안에 모든 것을 끝내지 못하면 죽는다

아무런 보람도 없이,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죽는 것이다

 

보검의 검끝을, 일찍이 보았던 궤도 상으로 올렸다

 

카리아가 일찍이 갈라이스트 왕국에서

마상병을 양단했던 그 일격

나는 그녀의 일격을 그대로 배꼈다..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대강 그 궤도를 간신히 따라할 정도라면

오랜시간, 동경해왔던 그녀의 궤도를 따라할 수 있다면...!

 

보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손끝이 신음소리를 냈다

온몸을 관통하는 등뼈가 확연히 뒤틀려 있었다

근육 일부가 튀는 광경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보라색 검이 반짝였다

검 끝의 궤도는 카리아의 세련되고 아름다운 일섬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일섬은 과거의 카리아처럼 말머리를 양단하는 게 아닌

단지 말의 목뼈를 삐걱삐걱하고 비뚤어진 방향으로

구부리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뼈가 부러지는 불쾌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군마가 꿈틀거리면서 피를 뿜어댔다

 

1초

 

군마가 절규를 울리며 쓰러지고

나는 리처드 퍼밀리가 있을 곳으로 혼심의 힘을 다해 내리쳤다

 

시야는 말의 피에 젖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직감과, 하나의 확신만을 믿고 검을 휘둘렀다

 

리처드 퍼밀리스, 녀석이라면 말 따위를 내패애치고

이 쪽으로 칼을 휘두르고 잇을 것이다

 

'키이이잉'
 

쇠와 쇠가 딱딱하게 접합하는 소리가 났다

불꽃이 섬광이 되어 멸명했고

내가 치켜든 검을 받아 들이 듯이

검은 검이 피투성이의 시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초

 

회색 갑옷을 입고, 큰 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검은 검을

가볍게 다루는 모습이, 벌써 살의의 덩어리가 된 채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거기에 있었군

나의 악랄한 스승, 리처드 퍼밀리스

서로 검이 맞닿을 만한 사이에 있었군

 

더 이상 할 말은 없었고, 심지어 숨을 내쉴 여유도 없었다

숨을 내쉬려는 그 짤막한 시간에 승패와 생사가 갈릴 것임을

누구도 말할 것 없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보검과 흑검이 겹쳐진 채, 서로의 날을 깨물었다

칼날을 맞대고 시간은 없다. 시간은 갈 수록 적의 편이 될 것이다

리처드 퍼밀리스도 시간벌기를 노리겠지

 

손목을 비틀어 검의 맞물린 상태를 풀었다

나와 리처드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겨났다

 

그 사이에 발을 디디려고 하는 순간

왼쪽 눈에 파열되는 듯한, 격통이 떠올라서

상체를 뒤로 젖히고 말았다

 

3초

 

'퍼억'

 

리처드 퍼밀리스의 오른 주먹이 내 얼굴에 박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은 채, 약간의 신음을 흘렸다

시야는 흔들렸고, 머리 자체를 흔드는 듯한 충격에,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버티지 않으면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머리가 부서진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런 한순간의 틈을, 우리 스승이 용서할리도 없이

흔들려서 뿌옇게 보이는 시야 끝에

검은 검을 휘두르는 리처드 퍼밀리스의 모습이 있었다

 

과연, 저쪽도 굳이 시간을 벌려고 하는 마음은 전혀 없는 건가

그 눈에 담긴 살의대로 이쪽의 심장을 끊을 생각만 한다는 거군

 

일체 지체도 없이 바로 죽인다

용사다운 행동이라서 훌륭하다

내가 동경하던 용사 본연의 자세야

 

아아, 가슴속이 환희에 떨리는 군

도저히 손길이 닿지 않던 곳에 있던 내 스승, 리처드 퍼밀리스가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나를 죽이러 와주다니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

 

이 세상에 리처드 퍼밀리스를 욕하는 인간은 분명히, 셀 수 없이 많았다

속은 자거나 모함당한 자, 버림받은 자 등등

할아범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할아범은 나에게 틀림없는 영웅이였다

진흙 바닥에서 나를 구해주며

어쩔 수 없던 시궁쥐였던 나에게 지혜를 주었다

분명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동경에 가슴을 태우는 일 조차 없이

단지 진흙투성이가 되어 죽어있었을 거야

 

아, 그러니까..

루기스는 두 손으로 보검을 굳게 쥐었다

보검의 칼날에서 보랏빛의 섬광이 떠올랐다

'영웅을 죽이는 자'의 이름이 신음하듯 빛났다

 

4초

 

그러니까, 여기서 죽어 줘

우리 인생의 스승으로서, 커다란 벽 그 자체야

 

리처드 퍼밀리스의 검은 검이, 나의 왼쪽을 겨누고

그대로 심장을 양단하기 위해 땅과 하늘을 갈랐다

땅을 향하고 잇는 나의 보검은

도저히 그것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나에게도 없었다

 

직감이, 고하고 있었다

나는 스승을 넘을 수 없다

리처드 퍼밀리스는 넘을 수 잇을 만큼, 만만한 인간은 아니기에

 

검은 검이 공기를 파열하는 감촉을 느끼며

땅으로 향한 보검을 혼신의 힘으로, 오른쪽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렸다

그것은 결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단지, 리처드 퍼밀리스의 몸을 양단하기 위한 것

 

죽어도 상관없어, 자신의 스승 하나 넘을 수 없다면

이 사지가 있는 의미도, 심장이 띄는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모든 의미를 잃고, 무엇 하나 못했던 그때로 돌아가느니

그냥 죽는게 나을거야

 

검은 색과 보라빛의 섬광이

전장안에 매끄러운 선을 그었다

그리고...

 

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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