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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2화 - 머나먼 길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2화 - 머나먼 길 -

개성공단 2020. 5. 1. 13:16

화수를 깜빡해서 231화와 233화 사이를 안 올리고 말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너무 먼 길이 잇었다

길은 뒤틀린 나머지, 짐승도 제대로 갈 수 없는 형편이였다

때론 단절까지 거듭한 길은, 바로 이 곳에 있었다

 

어지럽고 정신없으면서도 걸어온 길

내가 걸어왔지만서도, 기가 막혔던 것이다

 

목은 다 마르고, 손발은 피폐한 끝에

지금 나는 분명히 그 길 끝에 도착했다

 

5초가 지났다, 주위는 전장 특유의 소란스러움을 잃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있었다

 

왼쪽 어깨, 아니 왼쪽 반신의 모든 감각이 저린 듯 둔해졌다

내 피는 자유를 찾아 내 몸 속에서 기어나온 것처럼

주위에 흩날려서 하늘을 더럽혔다

전쟁터 속에서 더 이상 기능하지 않았던 코가 근질거렸다

 

좌우 눈꺼풀은 경련을 일으키며, 공기에 노출시켰고

폐 안쪽에 쌓여잇던 공기는 드디어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순간 왼쪽 팔 전체에 달리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나의 왼쪽 어깨에 리처드 퍼밀리스의 검은 검이 빛나고 있었다

살이 터진 내 어깨엔 끝없이 흐르는 핏물결이 휘몰아치듯

어깻죽지를 휘몰아쳤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이 시체로 변하는 듯한 모습

이렇게도 심한 상황이라면, 자신의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게도 되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보다 나은 결말이였다

 

원래 리처드 퍼밀리스가 날린 검은 검의 일격은

나의 심장을 물어 죽일 것이였다

어깨뼈등을 쉽게 접으며, 힘줄을 끊어버리고, 나의 반신을 찢어놓았으리라

 

상대는 리처드 퍼밀리스

나의 악랄한 스승은 그정도 일은 숨쉬듯 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 이유가 있겠지

 

시야가 검붉은 색으로 얼룩진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듯 보라빛이 번쩍거렸다

 

보검, 영웅을 죽이는 자의 이름을 가진 그 검의 시야의 끝에서

리처드 퍼밀리스의 창자를 찢고 있었다

마치 그의 왼쪽 배 자체를 가르는 듯한 모습이였다

 

리처드 퍼밀리스의 옆구리에서 징그러운 소리를 내며

피 덩어리가 떨어져 갔다

 

"처음이야, 할아범, 검이 도착한 것은...

그 동안 멀고 돌기만 하는 길이였는 데 말야"

 

나는 입안에 흘러넘친 핏덩이를 토해내면서 말했다

이상하게도, 왼쪽 어깨를 베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잘 움직였고, 힘이 빠져나가는 일도 없었다

 

눈 앞에서, 깊은 주름이 새겨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적당한 나이를 먹었을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엘프의 저주... 게다가 마법식인가... 바보같은 길을 걷다니..."

 

리처드 퍼밀리스가 내뱉듯이 말했다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보통 우리 몸은 아무리 의지를 담했어도

혼신의 힘을 다해도, 생명을 위협하는 강격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육체는 경직된다

 

칼로 적을 베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고 해도

자신의 몸에 칼날이 박혀버리면, 손은 저리면서

사고도 의지도 날아가 공격따위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원래 나의 심장을 도려낼 예정이였던

리처드 퍼밀리스의 일격도, 보검의 참격을 베에 받아 들인 것 때문에

고작 나의 어깨를 다치게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왼쪽 어깨의 검은 검의 강격을 받고도

또한 리처드 퍼밀리스에게 보검을 날릴 수 잇었다

 

분명히 뭔가 이상하다

세계의 이치라는 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과연 이것이 엘프의 저주다, 마법식이다, 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자신에겐 기억이 없지만....

 

눈을 굳게 뜨고 입술에서 축 눌어진 핏빛 감촉을 느끼며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보검을 뽑아냈다

축 처지는 이상한 감촉이, 수중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리처드 퍼밀리스도 그의 왼쪽 어깨에서 검은 검을 집어들었다

 

두 사람의 피가 다시 튀면서, 대지를 더렵혔다

눈 앞에서는 주름진 입술이 일그러지며 신음을 토했다

 

주위는 묘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대성교병도 문장교병도 서로 침을 삼키며

눈을 깜박이는 듯한 그런 기색이 있었다

 

"그동안 은혜가 있었으니, 편안하게 죽게 해줄께"

 

나는 왼쪽 어깨에서 피를 흘린 채, 오른손으로 보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제 리처드 퍼밀리스에게는 흑검을 뿌리칠 만한 여력은 없었다

아무리 강인한 육체를 유지한다지만, 그가 노령임에는 틀림없었다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기만 해도, 체력은 떨어지기에 마련이였다

 

게다가 배를 갈랐다

힘을 주면 줄 수록, 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올 것이다

이젠 움직이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겠지

그래서 그 머리를 보검으로 두드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도 할아범은 피폐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코웃음 치듯이 말했다

 

"하하핳... 너도, 저 녀석도, 왜 내 밑에 도착하는 녀석은

바보 뿐인거야? 미학의 파편이 있을 수가 없군"

 

노인은 배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고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는 순간...

 

주위 적 본진에서 고함이 크게 울러펴지고 있었다

틀림없이, 정리된 병정 덩어리가 돌격을 개시하는 신호

군이 존재하는 그 이유 그 자체가 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묘하게 생기가 넘쳤기에

새로운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창을 든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나오는 병사는 어디의 본군인건가

 

저건 복병이다

지금 이 때 대성교군을 지휘하는 사람이 누군인지는 몰라도

그 누군가가 지금, 복병을 꺼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목적은 리처드 퍼밀리스의 궁지를 구하기 위한 것

 

하지만 바보 같은 그런 일이 가능할까

 

나와 리처드 퍼밀리스의 공방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그 상황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뿐 아니라, 그 장면에 대해

복병을 즉시 투입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눈앞의 노장군 말고도 그런 식으로 군사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기보단

그냥 우연히 복병을 투입한 인간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은건가?

 

아무튼 그 복병의 등장 때문에

리처드 퍼밀리스와의 공방에 숨을 삼키던

주변의 병사들이 시선을 되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장군이 상처받은 동요가 병 전체에 남아있다

나는 나의 허약함을 되찾기 시작했고

동시에 목적까지 달성했다

지금이라면 본군과 합류할 수 있다

 

나는 검은 검을 들면서도 몸을 굽히고 있는 스승을 앞에 두고

눈을 가늘게 덨다

순간 생각을 휙 머리속으로 돌리며

입술을 일그러뜨린채 말을 뱉었다

 

"이번엔 내가 이겨도 괜찮겠어, 할아범?"

 

마치, 일찍이 술집에서 주고 받은 것 같은 말투로

그렇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묘하게 전장 안에서 울려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빌어먹을, 이번엔 양보해주마"

 

할아범은 분명 상처의 고통을 느낄텐데도

허리 옆에 차고 있던 술병을 내게 던지며,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깨를 가볍게 들면서 경의를 표하고, 전장에 목소리를 울렸다

 

"목적은 달성했다, 본군과 합류를 단행하자, 후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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