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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3화 - 성녀의 영웅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33화 - 성녀의 영웅 -

개성공단 2020. 4. 30. 20:56

나는 대성교병 무리를 빠져나가면서

문장교 본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적에게 등을 돌리면서 발을 움직인다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이 아니였다

정신은 긴장되고 피폐해지면서,

뇌는 삶아진 듯 흔들거렸다

과연 내가 무사한건지, 어쩐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적진 철수란 자칫 이런 것이다

죽을 때는 모두 꿈속에서 죽어갈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

솔직히 후퇴라는건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상관없다. 

어쨌든 목숨은 달성했으니 말이다

 

적의 복병은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쪽의 배를 뚫는 일은 쉽게 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적장 리처드 퍼밀리스 역시 무너졌다

더 이상 전장에서 양양하게 지휘하는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적으로 무서웠던 것은, 단 한 명

나의 스승뿐이였으니까

 

"괜찮겠습니까, 루기스 님"

 

옆에서 어깨를 겨우 들며, 숨을 쉬고 있는 병사가 중얼거렸다

적장의 심장을 가져가지 않느냐고, 묻는 눈치였다

 

나는 괜찮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리처드 퍼밀리스의 목을 벨 수는 있었다

단지 보검을 똑바로 내리치면, 그것만으로 할아범의 명은 다 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틀림없이, 할아범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또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성교 병사들이 동요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장군인 리처드 퍼밀리스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적을 공격해야 하는 건가, 부상당한 병사들을 데리고 철수 시켜야 하는 건가

 

그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병사는 거의 없다

군대란 본래, 스스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판단해 움직일 수 있고

또 우수한 인간을 길러내려고 한다면

눈코 뜰 쌔 없이,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대성교군 병사들은 적어도 그런 병사들이 아니였기애

곤혹 속에 스스로 발을 내딛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발을 내딛지 않고, 그대로 머문 것은

어디까지나 가슴속에 굳은 망설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거기서 리처드 퍼밀리스의 목을 베었다면

이제 그들에겐 당황도 망설임도 없어진 채

가슴속에 타는 분노만 존재할 뿐이였다

 

그렇게 되면, 나도, 함께 돌격을 가했던 병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리처드 퍼밀리스의 목을 꺾지 않았던 것은'

옳바른 선택이였다고, 그렇게 믿는다

 

게다가, 말이다

또 하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아범의 목을 비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감정적이긴 한데

 

과거 대재앙이라는 재앙이 세계를 덮쳤다

신분도 빈부도 가르지 않은 채, 모두를 죽였었다

 

그것은 할아범도 마찬가지

할아범도 대재해에 휩쓸려 목숨을 땅에 떨어뜨렸다

 

최후의 상황에서, 이형의 마수들이 몰려오는 가운데

할아범은 나를 감싸는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는 죽어버렸다

 

그것은, 이제 나 이외의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

정작 리처드 퍼밀리스 본인 조차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기에,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할아범은 분명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미처 기억할 수 없었다

 

아마도 예전에 할아범이 나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는게 아닐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할아범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싼 것은 아니였다

 

그래도, 지금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감상적인 동기라는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문장교의 깃발로 향해 달렸다

 

옆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병사도

출세시켜 달라고 했던 병사도 어느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뭐, 그래도, 대다수가 상처를 몸에 지면서

무사히 본군을 향해 도착했다

 

엄지 발가락이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쉰 목소리로 남은 병사에게 말했다

 

"본군에 합류하면, 너희들은 후방으로 내려가라

군사들로 둘러싸인 전쟁터이지만

소수의 인간이 끼어들 여지는 있을 것이다

내 전령이라고 하든지 말이다"

 

나를 따르던 병사의 표정 또한 생기가 넘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지쳐 있어서 몸은 상처가 없는 곳이

어딘지 모르게 될 정도였다

 

그래도 모두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만은

분명 그 눈동자 속에 빛나고 있었다

군사 중 한 명이 함께 살아 돌아가자고 말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천막은 커녕, 갈루아마리아의 방으로 돌아가

상등한 술을 기울이며, 목을 축이고 싶단 말이다

우드나 그의 여동생 셀레알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걸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병사가 아니라, 무슨 실수인지 지휘관이 됬고

게다가 영웅이라는 두 이름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을 것이다

제멋대로 사람을 사지로 끌고 가서

자신이 위험해지면 뒤로 물러나는 창피한 짓은 할 수 없다

그런 짓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마른 입술을 움직이며 목소리를 내었다

 

"난 아직 괜찮아, 아직 다리도 손도 모두 움직여

그러니 물러설 수는 없어"

 

그러면서 손발을 설레설레 흔들어 보았다

왼쪽 어깨에 난 상처가 지리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다

 

나의 말에 병사가 입술을 삐죽거림과 동시에

마치 주위의 고함을 찢는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요, 이제 당신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후방으로 내려가도록 하세요, 루기스"

 

나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병사가

모두 그 목소리의 정체에 경탄의 모습을 나타냈다

 

다시 한번 그 목소리가 전쟁터에 울렸다

 

"당신들도 잘 해냈어요, 당신들 같은 동료들을 가질 수 있어서

저는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말 위에 앉아, 주위를 자애하는 미소와

빛나는 얼굴을 보이는 그 모습

 

성녀 마티아, 문장교의 심장, 신앙의 상징 그 자체

 

근데 누구도 전쟁터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을

성녀 마티아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루기스, 당신도 할 말이 있겠죠, 저도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하지만"

 

마티아는 일순간 목소리를 낮추고, 그 음색에 딱딱한 것을 섞어가면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뭔가 불만이라도 호소하는 듯한 시선이얐다

 

적장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왔는데

우리 성녀님은 뭐가 그렇게 또 못마땅한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시선을 돌렸다

 

마티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지만, 단지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역시, 나의 검, 나의 영웅"

 

마티아는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뺨이 노을의 빛에 그슬려서 마치 빛날 것만 같았다

 

뭐야, 솔직히 정면에서 칭찬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정말 쑥스럽기만 하잖아

 

"원해서 한 일이잖습니까, 성녀님"

 

그래서 나도 상투적인 말을 허공에 뱉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꼬리를 감고 도망가는 것 같은 그런 말이였다

 

마티아는 살짝 쓴 웃음을 뺨에 띄우고

이번에는 주위에 울러 퍼지게 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우리 영웅의 모습을 보라!

적은 무너지고 길은 너희 앞에 펼쳐졌다!"

 

마티아는 주위 병사들에게 들리도록,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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