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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8화 - 죽음의 돌격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9장 서니오 전투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28화 - 죽음의 돌격 -

개성공단 2020. 4. 30. 17:42

"모두 잘 들어라, 최후의 명령이다"

 

적병에게서 눈을 때지 않으면서, 두 손으로 보검을 움켜 쥔 채 말했다

이상하게도 벌어진 입술이 전보다 상당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전위돌격부대만으로  적진에 급습을 가한다

본군의 보조는 맞출 필요 없다"

 

돌격 신호는 내가 내린다고 말하며, 나는 주위를 살폈다

 

돌격부대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주위에 존재하는 군사만으로도

눈을 굳히고, 입술을 멍청하게 여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었다

역시 명량하게 웃는 녀석은 없는 건가

 

그것도 그럴 것이, 이건 그냥 자살선언 이였다

 

본군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즉, 주변 일대의 수십명의 돌격병으로

아직도 수에서 앞서고 있을 대성교의

배를 물어뜯으러 간다고 하는 소리였다

 

본군을 벗어날 정도로 돌출하면

비록 적군의 전선이 흔들리고 있다 하더라도

큰 피해는 면할 수 없는 것이였다

그 돌격의 끝에는 전멸이라는 단어가 싸늘하게 솟아있었다

 

분명 지금 병사들의 가슴속에는

죽응에 대한 불안과 나에 대한 불신감이 감돌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들에게는 지금 바로 대성교군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그런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야 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

 

다시 전쟁터 앞을 응시했다

무너지려는 적병이 유인하려는 듯

느릿느릿 철창을 들고 있었다

 

"억지로 따르라고는 하지 않겠다

히지만 적은 여력을 충분히 남기고 있다

지금 그것들을 죽이지 않는 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뒤의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자세히 말하거나,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 복병이 있을테니, 본군을 대신해 희생하라는

그런 말을 모두의 앞에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문장교 전군은 앞에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고

후퇴는 커녕 걸음을 멈추기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적들은 불현듯 발을 내대딘 

아군을 꼬치꼬치 꿰어 넣을 궁리를 하고 있겠지

 

이제 아무런 피해없이 견뎌내자는 것은 무리다

세계란 그런 쉬운 것이 아니기에

 

그래서 최소한의 피해로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먼저 적의 의도를 파헤쳐야 했다

먼저 나서서 표적의 될 존재가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이제 내가 그 표적이 되어야 한다

 

복병은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용했다

복병으로 인해 본군이 피해를 입지 않으면

나중에는 억지로라도 밀어 넣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의 한계이며

 

카리아나 마티아라면 다른 수단을 생각했겠지만

나에겐 이게 최선이야

 

"우리가 적의 여력을 끌어내는거다

그렇게 힘을 다한 적군을 본군이 죽인다

그게 제일 나은 선택지이며,

모두가 죽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으로 움켜쥔 보검을

오른쪽 어깨 앞에 세우고,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동시에 얼마간의 군사가 나를 따라서

발을 내디딘 것을 알 수 있엇다

 

모든 병사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일은 없었고

얼마간은 내 말에 넘어간 사람이 있어준 것 같앗다

 

안식과 동시에 자기혐오의 덩굴이 나의 목을 졸라 죽을 것 같았다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여야 적성이 풀리는 걸까

순간 아주 잠깐 눈을 내리깔고, 앞니를 입술에 강하게 찔렀다

 

그리고 다음에 얼굴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전방의 적군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지금부터 바보같은 일을 하러 가는데

묘하게 머리는 맑아왔던 것이다

 

하는 일은 간단하다

다만 앞으로 나가 적을 무찌르고

마지막엔 쇠를 이 몸을 삼키는 것 뿐이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좋다

후회스러운 것은 마음에 일절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죽기 쉬운 일이라곤 들었습니다만

루기스 님까지 죽어도 되는 겁니까?"

 

내 바로 옆에서 창을 겨누는 남자가 말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이 메었나 싶을 만큼 칼칼한 목소리였다

틀림없이 어젯밤에 실컷 술을 들이 마셨겠지

전선으로 가는 군사에겐 그만한 돈이 주어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좋잖아"

 

그러면서 나는 칼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보라색 선과 철이 얽히고, 그것들은 한 순간의 접합 후에

철이 양단되는 결과로 끝났다

마치 보검은 기쁨에 빛나는 것처럼, 그 날을 빛냈다

 

대량의 피가 적병의 찌그러진 머리위에서 튀어,

지면에 화장을 해 가는 것이 보였다

 

진실을 말하면, 성녀 마티아나 라르그도안 으로부턴

영웅으로서, 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으로 좋은 것이라고 들었었다

 

"당신이 죽는 것이 무엇보다 위험합니다

영웅은 모두의 사기의 상징이니까요"

 

아마 마티아가 이런 말을 했었지

 

정론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상징이 영웅이 죽으면 사기는 떨어지고

병사들의 허리는 약해진다

보이는 곳에서 소리만 질러도, 사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영웅이 아니야

내가 가슴을 애태우고 동경했던 영웅이 아니란 말이다

 

영웅이란 누구보다 강하게 앞서서 걷고

누구보다 열광을 지르며

그렇게 누구보다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놈이다

비록 그것이 죽음을 재촉하는 결정을 내릴지라도...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그 속도를 조금 앞당겼다

 

"루기스 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딸랑딸랑한 목소리를 가진 한 남자가 말했다

발하는 말은 편안함을 느끼는 듯 했지만

역시 어딘가 딱딱함을 띠고 있는 목소리였다

이제부터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고 있는데

가벼운 어조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말을 재촉했다

남자의 거칠고 탁한 목소리는 고함이 울러 펴지는 전쟁터 속에서

요란스레 지나쳐 귀를 울렸다

 

"만약 루기스 님도, 저도 살아있다면, 저 좀 출세시켜주세요

저 빈농 출신이여서, 잘 난체 좀 하고 싶다구요"

 

그 남자는 볼을 일그러뜨리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쟁터 안에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농담을 하는 것은

병정이라는 것이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아니였다

 

얼마든지 마티아에게 말을 해주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그것은 단지 완만한 진군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무리하게 적진을 향해 돌격하기 위한 발걸음

 

마음이 설레고, 볼이 일그러졌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만, 내 가슴은 일이 이지경에 이르러야만

두근거림을 띠는 것 같았다

주변의 상황은 나에게 죽으라고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리고 그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어 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체념이니 기도니 하는 건 가슴에 돋아나지 않았고

오직 하나의 애타는 감정만이 가슴에 떠오르고 있었다

 

아아, 동경하던 지평이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느 일찍이 카리아가 말했던 대로

만용주의자이며, 모험주의자이며, 어리석은

 그 당시 그대로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동화속의 영웅이 되어보자

동경하고 애타게 그리던 그 모습을 그려보는 거야

 

"지금부터 우리는 적 중앙부를 뚫고,

적 본진에 정면으로 기습을 감행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마라, 내가 정면에 설 것이다

가라!!!!"

 

그렇게 말하고는, 돌격을 알리는 신호를 올렸다

보라빛이 하늘을 어루만지며 피를 끓게 했다

확연히 돌격 속도가 변모한 문장교군에 대해

대성교 병사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조금만, 잠까이면 돼

적이 예상치 못했다고 생각해 준다면

그것으로 상관없다

그 결과로 적진을 뚫고, 본진까지 달려들어

그렇게 복병만 꾀어낼 수 있다면 말이다

 

설령 그 끝에 내가 말을 못하는 몸이 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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