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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5화 - 강한 황금, 약한 납덩이 - 본문
- 강한 황금, 약한 납덩이
'지이이이이잉'
"뭐야... 지금 것은?"
순간 요란한 굉음이 빈민굴 전체에 울러 퍼졌다.
이따금 빈민굴에 울려퍼지는 그 음색은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너도나도 무슨 일인지 작은 창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고,
시끄러웠던 노점가가 잠시나마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적의 이유가 이 뿐만인 것은 아니였다.
평상시에 갈루아마리아 시내를 돌아보아할 위병대가
빈민굴에 나타났기 때문 이엿다.
"부대장님. 죄송합니다.
도둑은 빈민굴의 뒷골목으로 도망쳣습니다.
하지만, 협력자로 간주된 사람은 확보 했습니다."
부대장으로 불리는 사람은 호리호리한 체구이긴 하지만,
그 몸은 허약하기 보다는 예리함을 느끼게 했다.
대원이 데려온 것은 어린 소녀 였다.
깔끔하게 다듬긴 했지만, 옷차림이나 살이 붙어 있는 정도로 볼 때,
영락없는 빈민굴 사람이었다.
부대장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그 소녀를 업신여기는 듯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이 도둑을 도와준게 사실이냐?"
그 물음에 소녀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무 겁을 먹어서 그런지 말을 할 수 없는 듯 했다.
눈망울을 굴리며 남자는 그 소녀의 눈을 응시했다.
그 소녀의 눈동자는 아직도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사내는 소녀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았고,
거기서 검은 점, 아니.. 문신을 발견했다.
그 문신은 전과자임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식 이였다.
"말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
부대장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도둑의 일당이라면, 소녀라고 해도 봐주는 것은 없다.
법대로 이 소녀의 오른팔을 베어라"
지시를 받은 대원 중 한 명이
주저 없이 대검을 뽑았다.
푸른 칼이 반짝이며 햇빛을 반사했다.
소녀의 겁먹은 눈동자가 한순간에 펼처졌고,
등줄기에는 식은 땀과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 눈동자는 도움을 청하듯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에 반해 위병단은 부대장을 포함해서 5명.
아무리 정예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 버린다면
얼마든지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도 소녀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불평이라도 했다간 그들의 팔,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판이였다.
그러니 그 누가 말할 수 있었을까?
상대는 성벽의 인간이였고, 자신들은 성밖의 벌레들이였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든, 짓밟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졌고,
아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치없는 돌멩이라고 자신들을 평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였다.
소녀는 홀로 입술을 깨물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자신의 목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녀가 목소리만 낼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저주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 소원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
일찍이 내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달려와 주었던 오빠는,
이제는 겁에 질려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는다면,
용감했던 과거의 오빠가 다시 살아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대검이 푸른 빛을 감싼 채 내려갔다.
이제는 늦었다.
그 갸날픈 오른팔은 잘려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겹쳤다
*
"저... 루기스... 저.... 듣고 있는 거지?"
빠른 걸음으로 어둠을 달리는 가운데,
뒤에서 피에르트가 시원찮게 중얼거렸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눈가 근처까지 후드를 쓰고 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에르트의 모습 이였다.
쉼 없이 빈민굴을 뛰어다녀서 그런지
그녀는 몹시 지친 모습 이였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피에르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 나한테 화난 거야?"
그녀의 말투는 묘하게 나약했다.
출발 전에 들은 말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 말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피에르트는 지난 세계에서는 저런 여자가 아니였는데
내가 무슨 감정을 보이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왜 이러는 거지?
"아... 역시 나는 민폐였구나...
나 따위가 뭘 할 수 있을리가 없지...
근데 혼자 남으면, 내가 필요 없는 존재구나 느껴버리기도 하고..."
내가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피에르트는 가슴속의 감정을 흘리는 그런 불평이 계속되었다.
나는 뒤를 돌아 볼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이제까지 그녀가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되면,
왠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눈 앞에, 빛이 보였다.
이제 곧 큰길로 나설 것이다.
"아.. 알고 있어... 나도 스스로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거, 하지만..."
꼭 두고 갔어야만 했냐고
... 그녀는 그렇게 삐진 듯이 중얼거렸다.
"누가 너를 필요없다고 했어?
아니야, 사실 나도 다시 생각해보니까
나 혼자 가기에는 무리인것 같아"
눈 앞의 광경을 보게 되자,
머리 속에서 피에르트에게 대답할 말을
단숨에 생각나게 했다
그 광경은
대검을 뽑는 위병단의 모습,
그것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는 빈민굴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붙잡혀 있는 우드의 여동생 셀레알의 모습
시간 안에 가지 못 갈거 같다
내가 아무리 전력으로 뛰어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이상,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모든 결말은 세계의 이치대로 흘러갈 거야
소녀의 오른팔은 떨어지게 될 것이고,
빈민굴 사람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인 채,
위병단에게 짓밟히는 인생을 살게 될거야
그런 일은 한번 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저 곳에 닿을 수 없었다
"부탁할께 피에르트.
너의 도움으로 저기까지 빠르게 도착하게 해줘"
억지로 여유를 보이고 미소를 보인 채,
피에르트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무척 바보같은 모습 이였다.
하지만, 피에르트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검은 눈동자를 키우며 나에게 말했다.
"응, 걱정하지마. 조금도 오차없이 보내줄 테니,
그리고 너를 주조하는 것은 바로 나니까"
그 모습은 자신이 넘쳐나는 모습 이였다.
틀림없이, 일찍이 내가 이 눈동자로 본,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모습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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