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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0화 - 그 날 밤부터 오늘까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1장 순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0화 - 그 날 밤부터 오늘까지 -

개성공단 2020. 5. 9. 08:57

"루기스를 방해하진 못 할거에요, 난 그의 공범자니까

 

그 말을 듣고 눈 앞의 성녀가 작게 미소 짓는 것을

피에르트는 볼 수 있었다

아니, 웃었다기보다는 입술을 치켜올리듯 일그러뜨렸다고

말하는 편이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표졍은 분명 자애의 미소 그 자체

성녀다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황금색의 눈만은 달랐다

 

마치 찬란하게 빛나듯, 그녀의 눈동자는 크게 펼쳐져 잇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전에

마치 뺨에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피에르트에게 느끼게 하고 잇었다

 

적어도 대륙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의

성당 기사가 순식간에 몸이 조각상으로 바뀌었는데

겁나는 표정 하나 짓지 않다니

 

피에르트는 허벅지가 약간 경련된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반보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에 담긴 것은, 여기에서 물러설 생각은 조각만큼도 없다는 의지

마법을 발하기 위한 거리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피에르트의 마음은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알류에노는 양양하게 입술을 열었다

 

"......공범자 인가, 어짜피 루기스가 꺼낸 얘기겠지

그 답다고 하면 그럴 것 같은데, 이거 곤란한걸"

 

그 말투는 마치 시시한 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알류에노는 자신의 입술에 손을 대었다

 

피에르트에게 있어선, 그 말은 그대로 가슴속의

허를 찌르는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말하는 내용도 의도가 잘 읽히지 않는 데다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하튼 이전에 베르페인에서 만났을 때

자신은 루기스의 추격자라고 그렇게 말했었지만

이제와서 그 상대가 공범자라고 말하니

그녀로서는 적잖이 경악스럽고 의심 또한 갈 것이다

 

그러나 알류에노의 모습은 도저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왜, 무슨 일이냐, 그런 것을 묻지 않은 채

그녀는 담담하게 하늘을 향해 말을 뱉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걸요

그래서 돌아올 때는 으레 상처를 입곤 했죠

위험해서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어요"

 

그 말에, 피에르트가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알류에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핏 보면 천진난만한 기색까지 느껴졌지만

이 자리에서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은 전쟁터다, 일찌감치 미소를 지을 자리가 아니다

 

피에르트는 알류에노가 하는 그 말을, 도저히 그저 넘길 순 없었다

그녀는 많은 위화감을 가진 채, 

스스로의 입술을 찡그리면서, 느긋하게 입술을 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온 얼굴처럼 말하내, 성녀님"

 

혼란스럽기까지 한 머리속에서

피에르트는 필사적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검은 눈이 조금 흔들렸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림을 가속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본래 그녀가 머물고 있을 영리한 사고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다,

밟으면 안되는 것을 밟아 버렸다고, 그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알류에노는 그런 피에르트의 모습 따위는, 신경 쓴 기색도 없이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묘하게 연극조의 어조로 말했다

 

"당연하죠, 왜냐면 저와 루기스는, 태어나서부터의, 소꿉친구 인걸요"

 

성녀의 목소리가 피에르트의 머릿속으로 울러펴졌다

 

 

 

 

 

*

 

 

 

 

 

 

알류에노는 검은 눈을 응시하면서

발밑의 돌을 세게 짓밟았다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용병도시 베르페인에서 그 모습을 보았을때는

대죄인 루기스의 추격자라는 입장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공범자라니...

 

그 후, 그에게 빌붙은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에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인가

 

루기스가 자신 이외의 대상에게 구원을 찾아내고

그렇게 그녀에게 기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알류에노의 가슴속은 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다

루기스는 대성당의 가혹한 생활에 있어, 틀림없는 자신의 구원이였다

 

고귀한 신분이니, 자신도 고귀할 것이라고 말하는 귀족들

학원을 나왔으니, 스스로가 박학다식하다고 착각한 명사들

값비싼 것을 입고, 스스로를 고상하도 생각하는 자제들

 

그런 인간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루기스는 쭉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루기스의 구원에 손길을 잡지 못했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곤경에 처해, 지금은 그 살을 도려내

스스로의 살 길을 만들지 않은 상황이였다

눈 앞의 검투를 하는 모습이 시야 끝에 확실히 비치고 있다

 

너무나 보람없어

저주할 수 만있다면, 나 자신을 저주해버리고 싶어

그것은 알류에노의 진심에서 나온 말이며

가슴속에 깃든 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감정이였다

 

그렇기에 그럴 것이다

지금 알류에노의 가슴속에는 그와 비견될 정도의 불꽃이

신음을 내며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공범자? 누구와 누가?

 

알류에노의 뺨에 경련이 났다

눈은 저리고 있었고, 심장은 스스로 겁이 날 정도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틀림 없어,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눈동자가 비추는 색

그리고 루기스를 얘기할 때마다, 바뀌는 목소리의 톤

 

적어도 거기에 깃든 것은

경멸이니 업신여김이니 하는 것은 아니다

알류에노는 가슴 밑바닥에서 정체 모를 둔탁한 것이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녀도 같은 부류인 샘인가

 

차가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가슴속은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웠고

그 정체는 틀림없이 분노라는 이름의 감정이였다

 

용서 할 수 없어

그렇게 쉽게, 그의 옆에 눌러앉아 버리다니

알류에노는 이것이 청렴하지 못한 감정이란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 피에르트 볼고그라드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루기스의 곁에 있을 문장교의 인간들 

그리고 그 외에 유사한 인간들 전부

 

이 모든 것이 알류에노에게 분개할 만한 대상인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욕하고, 어리석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당신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어릴 때부터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존엄도, 내일도, 돈도, 지혜도,

그것들을 얻기 위한 길도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지 우물에 던져넣어진 고아에게 그런 것이 어딨겠는가

그러니 이 손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없었고

언젠가 팔린다는 선택지 외에는 없었다

 

그렇게 오늘만 보고 사는, 그런 삶이 계속되는 와중에

 

루기스는 나와 같은 처지이면서도

함께 미래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날 밤하늘 아래에서, 어린 나를 향해서

 

그래서 나도 그것을 믿고 싶었다

그 미래와 함깨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흙탕물을 받으며 살아왔다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입에서 피를 토해낼 만큼 버텨왔다

 

아주 청렴결백한 성녀라고는 할 수 없고

매우 고상한 본연의 자세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난 최악의 최악이겠지

 

그래도 알류에노는 자신이 루기스 곁에 적합하다고 믿었다

그 덕분에, 오늘의 그녀가 있을 수 잇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알류에노는 눈 앞의 피에르트를 허용할 수 없었다

몇 년 같이 있었던 정도이면서도, 

그녀는 마치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그 옆에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 온 줄 아는가

 

이제 알류에노의 가슴속에는 허용이나 이해 따윈 없었고

단지 모든 것을 불태울 만한 열만이 있었다

 

"당신이 루기스의 소꿉친구? 질 나쁜 농담이내"

 

피에르트는 알류에노를 조롱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안심하세요,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알류에노는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원망하는 듯한 분위기로 말했다

 

"제 말이 농담이든 아니든

귀하의 미래는 여기서 정해져 버렸습니다

당신에게, 훌륭한 구원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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