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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89화 - 신에 가까운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1장 순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89화 - 신에 가까운 자 -

개성공단 2020. 5. 9. 08:21

헤르트 스탠리

일찍이 학우이기도 했던 그가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에

무심코 피에르트 볼고그라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머릿속 안에는 조금의 자랑스러움과 일말의 쓸쓸함이 떠올랐다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의 학원에 있을 무렵

헤르트 스탠리는 저런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발길을 멈추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유유히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던 것이, 그의 모습이였다

 

그 끝없는 재주를 가지고 모든 것을 엎드리게 하는 태양

그것이 헤르트 스탠리라는 이름의 황금이라는 본질이였다

 

가까이 가면 피부가 타고, 눈을 짓눌리고, 의지는 부서진다

그래서 학원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자기와 같은 줄에 두지 않았고

그 등에 매달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 태양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보여주면서까지

혼신의 검을 휘두르고 있다

때로 근육을 찢고, 뼈를 삐걱거리면서 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이였다

그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문장교의 영웅

일찍이 피에르트가 황금으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맹세해서

주조한 자, 루기스

 

자신과 같은 평범한 자이며

세계는 그를 가리켜 평범한 납 또는 구리류라고 말했을 것이다

도저히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도 단언했을 것이다

참으로 역겨워

 

이제 아무런 그런 말은 못하게 하겠어

그런 행동은 용서 못해

 

나는 일찍이 맹세했었다

자신의 이상 그 자체로, 몸을 썩이는 한이 있어서라도

영웅으로 손을 뻗는 루기스를, 황금으로 만들어보이겠다고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서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루기스와 헤르트가 서로 치고받는 광경은

피에르트에게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광경이였다

자신의 공범자이자, 자신이 주조한 그가 지금

태양을 앞에 두고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과거 갈루아마리아에서 보엿던 검투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날 밤의 1막에서는 헤르트가 하늘을 가를 때마다

루기스는 그 살과 피를 토해냈었다

 

아직도 평범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몸으로

단 하나의 목숨까지 걸며, 그에게 맞서고 있던 것이다

나는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심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잇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그저 정면으로 저 황금과 자웅을 다투고 있다

피에르트는 보고만 있음에도, 황홀한 생각까지 떠올릴 정도였다

 

아아, 너무 자랑스러워

그는 나의 공범자이며, 내가 조형한 영웅이야

그 안에 눌러앉은 자신의 마력은 틀림없이 그것을 전하고 잇었다

설사 앞으로 누가 무엇을 하든, 그것만은 결코 변하지 않겟지

 

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계속 바라보고 싶어

그 행동을, 그 본연의 자세를, 하지만 그건 루기스에게 실례겠지

 

그는 나를 믿어주었고, 그는 나를 신뢰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단지 루기스의 싸움을 보고 잇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순수한 간섭을 들이지 않는 것 뿐

 

피에르트의 검은 눈이 얼어붙을 것처럼 긴장하면서

눈 앞의 무언가를 응시했다

 

반짝이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황금 머리카락

틀림없이 의지의 등불을 형형히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는 두 눈

예리하기까지 한 미모를 담고 있는

성녀 알류에노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 난폭자를 지칭하는 말은 뜻밖이군요

이래도 나는 성녀로서 적합하지 않은 행동은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알류에노는 피에르트의 말에 답하며,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물결쳤다

 

그 움직임은 일찍이 보았을 때와 같이

손끝의 행동 하나조차 닦여진 것 같았다

표정이나 목소리 또한 어딘가 우아한 느낌을 주었기에

성녀 임을 떠올릴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나 목소리는

피에르트의 머리에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가슴속 밑바닥에서 뭔가 정체 모를 겁 같은 것이

전신을 좀 먹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세 자체는 다소나마 예전보다 시간이 흘러

그 행동이 더욱 성녀답다고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를 구성하는 질만은 별개였다

 

이제 그것은 귀를 틀어막든 말든

그대로 머릿속까지 손을 뻗어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마치 진짜 인간의 것인지 의심하게 될 정도

피에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일그러뜨렸다

 

전에는 목소리든 분위기든 좀 더 인간다움이 드러났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게 없었다

 

피에르트의 목에 침이 서서히 내려갔다

 

"그냥, 달이나 나무처럼 가만히 있어주면 좋을텐데 말야"

 

알류에노는 피에르트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그건 성녀된 자의 행동이 아니잖습니까

성녀는 구원의 손길입니다. 설령 짆흙이라도 손대야 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피에르트는 직감했다

 

베르페인에서 말을 나누던 때도

영주의 목소리도, 카리아의 말투도 튕겨내고

자신의 의지를 보이며, 그녀는 결코 물러서는 듯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었다

 

알류에노는 성녀라는 칭호에 비해

도저히 온화한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

 

말하자면, 어딘지 루기스와 닮은 구석마저 보이게 하는 그런 여자

피에르트는 손끝에 힘을 주면서, 시야를 넓혔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알류에노 곁에 있던 성당 기사 두명이

 눈깜짝할 사이에 검과 방패를 갖추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이쪽이 마법사라는 것을 간파하고

마법저항이 담긴 방패를 치켜세우고, 달려오는 거겠지

 

하지만 피에르트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치 벌레 잡듯이, 손끝을 가볍게 흔들었다

 

마법저항, 문자 그대로 마법을 억제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마법만을 억제하는 것

그 범위 밖의 것에 저항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루기스는 나에게 기존의 종이를 찢으라고 말했다

피에르트에 있어서, 루기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만이 진실이며

그 말이 틀렸다고 한다면, 세계가 틀린 것일 것이다

 

그래서 얇은 종이를 찢을 정도의 가벼움으로

피에르트는 입속에서 마법을 부렸다

 

검은 눈이 흔들거렸다

 

"미안하지만..."

 

피에르트는 손가락 끝으로 허공에 글자를 그렷다

두 명의 성당 기사는 아직도 칼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몇 순간만 있으면, 자신의 두개를 관통할 것 같았지만

 

그 전의 순간, 세계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뭔가가 터지거나, 피가 흘리는 등의 일은 없었지만

 

성당 기사는 마치 얼어죽은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고, 호흡도 눈 깜빡임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검을 치켜든 채, 조각처럼 자리를 굳혀버렸다

 

이제 그들은 살아있지 않다...

아니, 움직이지 못할 뿐,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어붙은 것은 육체 뿐, 영혼은 아직 살아 있는 그대로여서

육체는 썩지도 못한 채, 오열 하나 못 터뜨리고, 그들은 그렇게 남겨질 것이다

 

"루기스를 방해하진 못할거에요, 난 그의 공범자니까"

 

그러면서 검은 눈동자는

성녀로 불리는 소녀만을 응시했다

피에르트의 뺨에는 황홀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성녀는 자신의 눈앞을 가로막는 마법사를 보고

입술을 나지막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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