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4화 - 기도와 소원 - 본문
느닷없이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온몸의 뼈와 근육을 삐걱거리는 충격과 혈류가
사지와 체구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몸은 날듯이 던져진 것과
대신전의 제전, 그 마루에 내팽겨쳐진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부릅떠지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금니를 깨물며, 몸을 비틀어도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젠장할, 전신에서 치명적인 무엇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군
살도 아닌 영혼에 가까운 무언가가...
몸에는 헤르트 스탠리의 시퍼런 칼날이 꽂힌 채
나의 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억지로 잡은 보검도, 이젠 내 의지 밖이였다
나를 튕겨버린 그것은, 이제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내색으로
시선 조차 굴리지 않고 말했다
어둑어둑한 어둠 속에서 낯익은 황금 눈동자만이
혼미한 광채를 띠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프리슬란트 대신전인가, 그리운 장소까지 오게 됬구나
자꾸 이 곳에서는 안 좋은 일만 생긴단 말이지"
그것은 마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알류에노의 형태를 이룬 무언가는 입술을 담담히 움직이며
한 손으로 헤르트 스탠리의 목을 잡고, 몸을 들어올렸다
그 또한 이상한 광경이였다
적어도 알류에노의 가는 팔은
헤르트를 쉽게 들어올릴 만한 힘은 들어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카리아라면 다르겠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일절의 고심조차 보이지 않고
헤르트 스탠리를 잡은 채, 황금의 눈을 빛냈다
알류에노의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알류에노는 아닌 무언가를 본 기억이 있었다
용병도시 베르페인. 모르도 관사에서 본 이형
예전의 압도적인 마성을 발하던 지금 그녀가 있었다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그것만으로 신경을 직접 감는 아픔이 업습해서
살을 그대로 도려내는 감촉이 있었다
죽는다, 틀림없이 나는 없어진다
나는 마지막 등불에서 나는 의식을 잃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깨달았다
"신기하군, 헤르트 스탠리는 본래 구세주가 되어야 할 자
대영웅의 혼을 가진 자일텐데"
그게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는 꼴이 되다니, 이상해
이형은 대단한 감화가 깃들지 않은 듯 그렇게 말했다
황금의 눈이 살짝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땅에 엎드린 귀찮은 들쥐 한마리라도 봅는 것 같은...
입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이 거칠었다
여전히 몸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그저 그 말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심하라구,
너의 영혼은 내 손안 에 있으니
각본대로 있어야 할 목숨을, 다시 주기로 하겠다
그야말로 온갖 구원과 이 세상 모든 행복을 위해..."
심장이 다시 한번 세게 띠었다
당장이라도 몸은 차가워지고, 의식이란 놈은 다 없어질 것만 같았는데
유독 심장에만 열이 차 있었다
또한 눈동자 만큼은, 눈 앞의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놈, 여전히 싼 말을 좋아하는 구나?
적어도 네놈의 정체 정도는 드러냈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남의 얼굴을 빌려야 한 마디 낼 수 있는 것이냐?"
목소리는 이제 갸날픈 목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심한 것도 정도가 있지, 소꿉친구 형태의 영락없는 적이 있는데 말야
이왕이면 여기서 엎드린 채, 조용히 죽어가는 편이 훨씬 행복할지 몰라
여하튼, 그렇게 해놓으면
적어도 척수를 꼿꼿이 뚫을 것 같은 모진 적의에는
노출되지 않았을테니까
알류에노의 형태를 한 채로, 그 놈은 말했다
"너 말야... 묘하게 미워...
오우후르와 닮은 탓일지도 모르겠내"
담담하고, 어디까지나 목소리서의 무게나 실감이라는 게 없었다
단지 소리가 겹쳐있을 뿐, 그 소리는 귓전을 떼리고, 공포로 사지를 덮어갔다
목은 말라서 의지를 날려 버릴 것 같았다
황금이 허공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열었다
"나는 신령 아르티우스
세계 위에 앉아, 그대들에게 손을 뻗는 자
자, 만족스러운가, 인간 루기스"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신령 아르티우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온몸이 준동하는 듯한 감촉이 있었다
대성교가 내세우는 유일한 신이며, 구제신이라고도 불리는 신의 이름
그것이 지금 알류에노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잇는 것의 정체이며
나에게 적을 둘러싸고 있는 놈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너무 심한 농담 아니야?
하느님 따위가 변변치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왕이면 좀 성실한 놈으로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그야말로 적어도 말이 통하고 제정신이 있는 녀석을...
어쨌든, 지금 내 눈 앞에 서서, 제멋대로 소리를 휘두르고 있는 녀석 눈에는
마치 제정신인 것 같은 것이 없는 것이였다
무엇을 보고 잇는 지도 모르겠군
인간과 신은 보는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
그냥,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만 있으면 좋을 텐데
알류에노의 모습을 한 그 아르티우스는
경쾌한 발소리를 내면서,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운 모습이 곁에 있는데도, 등줄기에는 오한이 돋았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머릿속은 어서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바로 옆에 그 발이 보였다
"루기스, 자네에게 기회를 주겠내"
그것은 불쾌한 소리를 내며,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 말을 했다
마음 탓인지 색채가 없는 아르티우스의 목소리가
어딘가 유쾌한 울림마저 가지고 잇는 듯 보였다
"자네는 얼마 안가 죽을 것이다
불쌍하게도, 어리석게 구원도 행복도 없이 죽어간다"
그건 틀림없는 확실한 일
심장은 약간의 열을 울리고 있다 해도
아직도 전신에서는 피가 흘러나오는 감각은 멈추지 않고
신경이 완전히 끊어진 감촉도 그대로였다
죽는다, 틀림없이 죽음이 거기에 있다
저승사자가 분명 마중을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자네에게 기회를 주겠내
구원이나 행복을 원하면, 나에게 기도를 하면 좋겠어
너에게 영락없는 구원을 주마, 지금의 너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자, 하고 손을 내밀어, 라고 신은 말했다
어려운 일 없이, 그저 한 마디만 하면
기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그렇게 빌면
신기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쾌해 보였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묘한 온기로 귓구멍에 들어왔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한숨이 이상할 정도로 거칠어 졌다
아르티우스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재촉하듯 부드럽게 전해졋따
그것은 소꿉친구인
알류에노를 생각나게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
나는 입술을 벌렸다
내가 할 말은 사실 이미 정해졌었다
이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
"까먹었어? 아르티우스
내가 반한 여자는 말이야,
너 만큼 싼 말을 내뱉는 녀석이 아니라고 했잖아"
목소리는 굉장히 약해져 있었지만
일단 그것은 알 바가 아니였다
아직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기에
뺨을 찌그러뜨리고,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열심히 움직였다
"글고, 헤르트 스탠리를 폄하하진 말라고
그는 용사다, 그리고 내가 애태우고 내가 죽인 영웅이야
그걸 써 먹기 좋은 것처럼, 말을 막 하다니
너 신 맞긴 하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후의 일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였다
상관없다, 아무튼 이 몸은 이제 완전히 썩을 수 밖에 없다
그새 와서 새삼스럽게 기도라도 하겠는가
내 소원은 나만의 것이고,
신에게 바칠 만한 것은 조각만큼도 준비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거는 말은 이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말하고, 눈동자만 위로 향하자
아르티우스의 무표정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감정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군
분노냐, 굴욕이냐, 낙담이냐 인지...
단지 하나, 재미 없을 것 같다는 것은 알 수 있겠군
희고 가는 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다만, 카리아나 피에르트, 엘디스는 무사할까
그런 생각만이 가슴을 스치고 잇었다
그리고 그 손이 내 눈에 닿는 순간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대신전 자체를 부숴버릴 것 같은,
거대한 고함소리가 제전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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