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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7화 - 신화의 발소리와 기원주술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2장 신령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7화 - 신화의 발소리와 기원주술 -

개성공단 2020. 5. 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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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조차도 절규를 지를 법한 거인의 압력이 여기에 있었다

 

하늘을 덮는 덮개는 무너지고, 허공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그 기세에 찢겼다

산맥을 부수고도 또 남아있다고 생각되었던 대망치가, 이계에서 내리쳐졌다

 

그 대상은 단 한 명

큰 망치와 비교하면 모래알만 한 것 같은 사람의 몸에

시조의 거인의 전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혼신의 한 수 그 자체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이 내던져지면

그 시점에서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부서지는 것도, 꺽여지는 것도 아닌, 사라지는 것이다

살도 뼈도 피 한 방울도 남지 않는다

마법도 잔재주도 통하지 않는, 단지 압도적인 원시의 위력이 여기에 있었다

 

그 앞에, 사람 모양의 황금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말했다

 

"저 큰 망치가 진짜라면 몰라도, 그저 환상이야

너무 터무니 없는게 아닐까, 거인의 왕, 대마 프리슬란트?"

 

그녀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사람 같은 목소리를 냈다

신체의 소유자인 알류에노의 분위기도, 의지도 전혀 없이

그저 형형한 등불을 떠올리게 하는 신령의 모습이 있었다

 

영혼에 새겨진 윤곽이 거인의 위세에 감화된 듯, 표층으로 올라왔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이미 사람이 아닌

다만 선명하고 노출된 마성 그 자체였다

 

거인은 마성의 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에 대한 적의를 가지고 짖어댈 뿐

 

'고오오오오오오오'

 

그야말로 하늘 높이, 땅바닥까지 올리듯이, 망치를 뿌리치며 말이다

 

 

 

 

 

 

*

 

 

 

 

 

 

카리아의 은빛 눈동자가 대신전 제단을 훑어봤을 때

언뜻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했다

어둑어둑하게 앞은 구름처럼 뿌였고, 

소리도 없이, 사람이 있는 분위기조차 느낄 수 없었다

 

본래라면, 이런 장소 빨리 떠나서, 빨리 사람을 찾으러 가야 했다

그 남자는 눈을 뗀 틈에 뭘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온몸의 피가, 상당히 기묘한 감촉을 전하고 있었다

 

강하게 피가 안쪽에서 물어오는 것 같은,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촉이, 피부를 화끈거리게 하고, 한숨을 거칠게 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태는 한 번도 된 적이 없었다

마치 몸 속에 흐르는 피란 피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피가 말하는 것이다

이 앞에, 그 남자, 루기스가 있다고

 

뭔가 싫은 예감이 들었다

카리아의 심장이 더 크게 뛰었고, 볼을 핥은 땀이 묘하게 뜨거웠다

피가 가리키는 장소는 아직도 어두웠다. 그래도 뭔가 보이는 듯 했다

 

잔잔한 바다 밑을 보는 생각에, 카리아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은색이 떨림을 동반해 반짝였다

 

거기엔 분명히 그의 모습이 있었다

초록색 군복을 검은 피로 물들여

자신의 살에 시퍼런 칼날을 묻은 모습으로,...

 

반사적으로 호흡이 멈추었다

순간 카리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손끝은 망설인 듯 흔들리고, 발밑은 휘청거렸다

머리 속은 하얗게 되어 생각 끝의 고상한 것은 사라졌다

 

싫은 예감이 드는 상상이 머리 안쪽에 찰싹 달라붙어 갔다

 

카리아는 그것들을 모두 떨쳐버려듯이 하고, 그 옆의 육체로 달려갔다

뺨을 만져보면, 마치 얼음판 만큼 매우 차가웠다

 

단순히 차갑다는 말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 있어야 할 열이라는 것이 모두 송두리째 없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카리아의 목에 침이 넘어갔다

 

루기스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아무리 상태가 좋아도, 영혼은 이미 상실 될 것이다

그런 확신이 카리아에게 있었다

 

카리아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자신의 어깨에 난 상처를

은검으로 들고, 다시 한번 도려냈다

피가 끓듯이 튀었다

 

누가 보면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그 광경

카리아 자신조차, 그것이 제정신적인 행동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눈에 명멸한 정도의 강력한 통증이 흐르고

엄청난 양의 피가 의지를 가졌듯이 몸에서 튀어 나왔다

그것들은 어느새 어깨에서 흘러나와 카리아의 손가락에 흘러들어갔다

 

카리아는 정중하다고 할 수 있는 손놀림으로 루기스의 입술을 열었다

그녀의 손을 타고 피가 그대로 루기스의 입가로 흘러들었다

 

카리아에게 적대적인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말로는 말하기 어려운 예감만 있을 뿐

 

혈맥교합, 일찍이 루기스의 입에 적신 자신의 피

그것이 아직도 루기스의 신체에 눌러앉아 있다

 

그리고 그 피 만큼은 그의 차가워지는 몸 속에서

나에게 응하는 것처럼, 열이 나고, 맥박이 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도, 자신의 피 덕분 일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피로서 루기스에게 열을 나누어 줄 수도 잇을 것이다

그런 멍청하다고 할 수 있는 정신은, 

카리아가 자해를 하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게다가 말이다

어짜피 다른 것은 할 수 없었기에 말이다

 

어짜피 검밖에 휘두르지 못하는 몸

베팅할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걸어야지

카리아는 온몸을 둘러싼 통증조차 잊고, 볼을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루기스에게 말을 걸도록 하며 말했다

 

"뭐, 안 되면 함께 죽어 주마, 안심해 루기스"

 

그것은 루기스에게 타이르는 것 같고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이 돌아오는 것 따위, 기대하지 않는 그런 말...

 

그러나 응한 말이 있었다

귓속을 훌쩍이는 듯한 특징적인 목소리가 제전에 울려퍼졌다

 

"미치겠내, 그렇게 울상인 표정 짓지 말라고

포기란 우리가 포기한 무리들이 만들어 낸거야"

 

벽안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어둑어둑하게 떠올랐다

엘프의 여왕 엘디스는 마치 루기스를 흉내낸 듯한 

가벼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안색은 전혀 그 어조에 어울리지 않았다

피부는 창백했고, 원래보다 뽀얀 뺨이 더 희게 비쳐보였다

표정도 굳이 말해, 무사하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였다

 

엘디스는 바로 옆에서 웅크리며, 카리아의 손에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말했다

카리아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상복제인가, 거인의 핏줄로 일어나다니, 드문 일이야

그렇지만, 엘프의 정령술과는 궁합이 좋겠지"

 

그렇게 엘프는 만들어지니까, 하고

엘프는 자조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가지며 말했다

 

엘디스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루기스의 몸에 손을 기며

정령술의 인과를 기동시켰다

 

온몸을 축축한 술식이 기어다니며, 엘디스의 피부를 쓰다듬어 갔다

그것은 고형화된 술식이며, 현현한 저주였다

그것은 그대로 느긋하게 피부를 타고, 갈아타는 것처럼

루기스의 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것은 이미 기원주술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

정령의 애자가 인간 전부가 아니라, 

오직 한 개인에게 저주를 바쳤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였다

 

아아, 사랑스럽고 얄미워라. 그러므로 저주해버리자

그러니까 묶어 버리자, 그런 감정이 엘디스의 체내를 훑어갔다

 

엘디스는 생각했다

루기스의 몸은 지금 열을 잃었고, 그렇게 영혼이 없어지고 있다

카리아가 가진 거인의 피를 가지고 해본다면, 

그 신체에 열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별개다

한번 몸에서 박리된 영혼은 쉽게 저승사자의 손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더듬을 수 있는 것은, 신이나 악마의 손이다

 

엘디스는 신도 악마도 아니다

영혼을 수중에 두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리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주를 주어, 꽁꽁히 묶어두는 것 뿐...

 

그래, 그렇다면 묶어서 가둬 버리면 된다

 

루기스는 엘디스가 정령을 담은 정령구장에 아직도 몸을 싸고 있었다

그것은 정령술, 다시 말해 엘디스의 주술을 몸에 두른 것과 같다

그리하여 주술에 흘린 육체는, 저주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새로운 술식으로 루기스의 영혼을

육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가두는 것도 쉬울 것이다

그저 그 몸을 저주에 의해 꿰메버리면 된다

루기스의 몸 자체에 피와 마찬가지로, 저루를 들려주면 된다

 

엘디스는 핏기가 가시는 자신의 몸을 아무런 걱정없이

자신의 술식에 재주를 쏟아붇었다

일체의 태만함도 잘못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랬다간 루기스의 영혼은 끝이나 버릴테니까

 

엘디스는 뺨을 치켜 올리듯 웃었다

 

여하튼 우리는 다짐까지 주고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살을 깎아내더라도 그것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엘디스는 뇌 속에 예전에 들었던 루기스의 말을 떠올렸다

 

루기스는 엘디스를 놓치지 않겠다고

 

그래, 나 또한 놓치지 않겠어, 죽음이 방해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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